나도 '아트테크' 가능할까?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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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트테크' 가능할까?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 작품을 집에 걸어두고 보는 사람, 그리고 투자를 위해 작품을 굴리는 사람.

김예린 BY 김예린 2021.11.25
미술관에 말없이 걸려 있는 줄만 알았던 ‘아트’가 시장에서 요동치고 있다. 아트테크 시장이다. 현재 한 옥션 사이트에서 열리는 온라인 경매에는 1970년대생 작가의 석판화(lithograph)가 시작가 50만원에, 1952년 생산된 롤렉스 시계가 시작가 2천5백만원에 나란히 출품돼 있다. 앱 화면을 스크롤해 작품을 구경하고, 24개월 할부로 작품을 구입하고, 그것을 SNS에 ‘인증’한 뒤 다시 2배 값으로 경매에 올리는 과정은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를 10만원에 사서 20만원에 되파는 리세일 문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을지로에서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는 정성갑 대표는 “전에는 작품을 사러 온 사람들도 막상 가격을 문의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며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방문하자마자 ‘이거 얼마예요?’라고 묻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어요”라고 말한다.
 
아트 컬렉팅이 사치로 여겨지던 때는 다들 그 사실을 쉬쉬하며 숨겼잖아요. 돈세탁이니, 검은 돈이니 하면서요. 요즘은 자기가 어떤 작품을 샀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다 공유해요. 미술품 구매와 소장 문화가 양지로 나왔다고 할까요?
얼마 전 한남동에 아시아 첫 지점을 연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의 아시아 디렉터 황규진의 말이다. “갤러리들도 이제는 현금 영수증까지 받아요. (아트 컬렉팅이) 젊은 층에게 건강한 취미가 된 것 같아요.” 현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이 주식과 비트코인, 부동산 투자를 거쳐 미술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도 또렷한 흐름 중 하나다. 양재동에서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A씨는 “소위 말하는 ‘부동산 리딩방’ 있잖아요. 여기 상주하시던 분 중 하나가 미술품 투자로 노선을 바꾼 뒤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들였어요. 이후 “◦◦◦작가 작품 하나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20명씩 몰려오기 시작했죠”라고 증언했다.
 
미술 시장이 투자 시장으로 바뀐 건 개인적으로 김창열 작가 붐의 영향이 크다고 봐요. 작가님이 지난 1월 작고하시면서 작품 가격이 단숨에 2배로 뛰었거든요.
 
‘거장’의 작품이 옥션에 쏟아져 나오면서 매출 지표도 껑충 뛰어올랐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발표한 ‘2021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상반기 결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총 거래액은 약 1천4백38억원으로, 2020년 약 4백90억원, 2019년 약 8백26억원, 2018년 약 1천30억원에 비해 상당히 큰 폭으로 늘어났다. 출품 즉시 낙찰돼 ‘경매 5대장’으로 불리는 마스터급 작가들 외에 젊은 작가들의 약진도 만만치 않다. 지난 8월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문형태 작가의 2018년 작 ‘Diamond’가 4백50만원에서 4천만원에 낙찰되는가 하면, ‘도도새 시리즈’로 알려진 김선우 작가의 ‘모리셔스 섬의 비극’이라는 작품은 1천만원에 시작해 최종 7천9백만원에 낙찰됐다. 최근 아트 시장에서 가장 입소문을 많이 타고 있는 젊은 작가, 우국원의 작품은 3천만원에 시작해 1억2백만원에 낙찰됐다.
 
저는 이 흐름을 누군가 (고의로) 주도했다고 보진 않아요. 세계적으로 비슷합니다. 외국도 지금 미술 시장이 활황이에요.
 
익명을 요구한 어느 미술 관계자 B씨의 말이다. “미술 시장도 거시적인 경제 흐름 안에서 같이 움직이는 시장이에요. 2006~2007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글로벌 자금 유동성이 전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죠. 당시 미술계 기사를 훑어보면 지금과 놀라우리만치 내용이 흡사해요. 사람들의 여유 자금이 주식, 채권, 부동산을 거쳐 미술 시장으로 흘러오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려요. 2020년 5월 금리가 0%대를 찍으면서 올해 초 미술 시장이 그 덕을 본 거죠.” 케이옥션 손이천 이사는 오히려 덤덤했다. 시장의 흐름도 흐름이지만, 국내 미술 시장이 갑자기 ‘불장’이 된 건 확실히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황규진 디렉터는 홍콩 대신 서울이 아시아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세계 유수의 아트 페어가 줄줄이 취소되던 상황에서 올해 아트부산이 히트를 친 거예요. 훌륭한 방역 덕분이었죠.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단색화 열풍을 이끈 거장들, 백남준과 그 밖에 실험 미술 작가들의 역사가 깊어요. 타데우스 로팍의 말로는 중국이나 홍콩 등지의 작가와 달리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1940~50년대부터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의 작가들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역사를 자랑하는 공공 미술관의 존재도 한몫하고요.” 손이천 이사는 이제야 우리나라 시장이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미술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요. 해외 OECD 국가들은 GDP 대비 미술 시장 규모가 최소 0.1%에서 0.4%인데, 우리나라는 0.01% 정도죠.” 판교에서 갤러리 에이치 컨템포러리를 운영하는 한동민 대표는 “내년에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로 꼽히는) ‘프리즈’ 서울이 예정돼 있고, 또 다른 유명 아트 페어가 한국을 노크하고 있다”라고 귀띔한다.
 
물론 미술 시장에 ‘아트테크’ 바람이 불며 어쩔 수 없이 함께 일어나는 부작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쏠림과 과잉 현상이다. 손이천 이사는 “2차 시장에 나오는 작가들의 폭이 너무 좁아요. 거의 0.1%도 안 돼요. 경매에 출품할 작품을 선정하다 보면 아무래도 입지가 뚜렷하고 낙찰이 보장되는 작가를 선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나마 컬렉터의 폭이 넓어져서 우국원, 문형태 같은 젊은 작가들이 조심스럽게 한두 번 출품된 거예요. 그게 결과가 좋으니까 해당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던 사람들이 물밀듯이 위탁을 하고 있는 거고요” 한편 익명의 미술품 컬렉터 C씨는 말한다.


정말 좋은 작품들은 시장에 잘 안 나와요. 작품을 함부로 경매에 내놓는 것이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거나 본인 커리어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요. 거품이 꺼진 다음을 걱정하는 거죠. 지금 국내 젊은 작가들 중에는 ‘대체 왜 이 가격이지?’ 싶은 작가들도 있어요. 얼핏 트렌디해 보이지만 해외에서는 눈에 밟힐 정도로 흔한 스트리트 아트인 경우도 있고요. 가만히 앉아 경매 이야기만 하다 보면 컬렉팅이 돈놀이가 되기 쉬워요. 그렇게 생긴 거품은 언젠가 반드시 꺼진다고 봐요.
 
한동민 대표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트 페어에서 어느 한 작가의 작품에 빨간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사람들은 ‘아, 이 작가 인기가 좋은가 보다’ 생각해요. 완전히 오판이에요. 작품이 팔리는 데는 컬렉터의 취향, 컨디션, 그림을 소장할 공간 여건이 되는지 등 너무 많은 변수가 있거든요. 잘 팔리는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좋을까요? 10개 중에 8개 그림이 팔렸는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남은 2개의 그림을 ‘이상한 작품’이라 생각하기 시작해요. 뭔가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빨간 스티커가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까 봐 걱정스러워요.”
 
2차 시장인 경매에 불이 붙으니 1차 시장인 갤러리에도 당연히 영향이 갈 것. 그러나 갤러리들은 대체로 ‘경매 시장’과 선을 긋는 모양새다. “같은 아트 시장이라도 저희는 2차 시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는 편이에요. 저희가 최근에 박서보 작가 전시를 시작했다고 해서 ‘시기적절하다’ 생각하는 분도 많을 텐데 이런 전시는 보통 1~2년 전부터 작가와 교류하며 진행해온 전시거든요.” 국제갤러리 이승민 디렉터의 말이다.
 
황규진 디렉터는 “1차 시장은 2차 시장을 따라가면 안 돼요. 갤러리는 주변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작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죠”라고 말한다. “옥션을 잘 살펴보면 작품 추정가와 시작가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시장가가 1백만원인 젊은 작가 작품이 30만~40만원에 팔리는 경우가 허다하죠. 다들 김선우·문형태 작가처럼 잘되는 건 아니니까요. 가격이 확 뜬 작가들의 경우에도 이후 작품이 과거 낙찰가에 못 미치면 인식이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거든요.” 젊은 작가를 주로 소개해온 갤러리 대표 A씨는 지금의 이 불장 탓에 공든 탑이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물론 경매 주최 측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다.
 
손이천 이사에 따르면 ‘시작가’는 주로 위탁 판매자가 생각하는 내정가다. “저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품작의 낮은 추정가와 높은 추정가를 산정해요. 대부분 낮은 추정가를 경매 시작가로 권해드리지만, 위탁 판매자가 빠른 ‘처분’을 원할 경우 시작가를 그 이하로 맞춰드리기도 하죠.”
 
갤러리 입장에서는 작가를 보호해야 할 의무도 생긴다. 한동민 대표의 경우 얼마 전 진행한 신진 작가 특별 기획 전시에서 가격표와 빨간 스티커를 과감히 없앴다.
 
여기는 쇼핑하는 곳이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어요. 빨간 스티커는 아주 작은 투명 스티커로 대신했습니다. 작품을 정말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도록요.
 
규모 있는 갤러리만의 방식도 따로 있다. 황규진 디렉터는 “저희 갤러리의 경우 역사가 40년에 달하다 보니 경매시장을 조심스레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 팔았던 구작이 유찰될 위기에 놓인 경우, 저희가 먼저 응찰해 작품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갤러리 역시 경매사의 큰 고객이죠”라고 설명한다. 컬렉터 C씨는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옥션에서 가격 장난을 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사실 우연히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경매에서는 응찰자 2명만 있어도 가격이 굉장히 많이 올라갈 수밖에 없죠. 하지만 미술 시장에서 그 작품의 전체적인 수요가 올라갔느냐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갤러리라고 해서 모두 1차 시장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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