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트테크를 위한 플랫폼이 있다고?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 작품을 집에 걸어두고 보는 사람, 그리고 투자를 위해 작품을 굴리는 사람.

BY김예린2021.11.26
 
컬렉터 D씨는 작가를 키우는 의미의 1차 시장으로서의 갤러리와, 작품을 떼다 팔기만 하는 이른바 ‘리세일 갤러리’를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미술 시장은 기본적으로 폐쇄적이고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멋모르고 시장에 들어와서 무작정 작품을 구입했다가 ‘뒤통수 맞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갤러리를 비난할 순 없는 거예요. 경매에서 젊은 작가 작품이 낮은 가격에 팔렸다 해서 1차 시장인 갤러리가 가격을 ‘올려 친’ 게 되지 않듯이 말이죠.
익명의 미술 관계자 B씨는 “어느 시장에나 물을 흐리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미술 시장에서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업계 관계자들은 아무런 대비 없이 미술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우려한다. “생각해보세요. 아트테크를 하려면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야 합니다. 미술 시장이 호황일 때는 사는 게 아니라 팔아야 해요. 더군다나 지금은 ‘불장’입니다. 절대 낮은 가격에 살 수 없어요” 손이천 이사의 말이다. “오래된 컬렉터분들은 요즘 응찰을 해도 끝까지 안 갑니다. 경쟁에 휘말려 내가 생각한 금액 이상으로 낙찰되면 나중에 분명 후회한다는 걸 다년의 경험을 통해 아는 거예요.” 컬렉터 C씨는 “저는 주로 해외 경매를 하는데, 메이저 경매 사이트보다 작은 로컬 경매에서 저평가된 작품을 ‘디깅’하는 편이에요. 소장자들이 ‘급처’하는 경우나 여름휴가철 같은 비수기를 노리는 거죠. 초심자에게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게 분명해요”라고 말한다.
 
제가 손해를 보지 않는 건 절대 2차 시장에서 작품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컬렉터 D씨의 말이다. 사람들이 투자에 관해 가장 많이 간과하는 부분이 ‘현금화’ 과정이다. 미술업계 관계자면서 헤비 컬렉터이기도 한 B씨는 “200점 가까이 컬렉팅을 했는데, 그중 작품 가격이 오른 건 10%도 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건 더 적습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가끔 갤러리에 방문해 ‘이 작품이 얼마나 오를 것 같냐’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부동산이나 주식이랑 똑같아요. 작가가 향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할지 보장할 수 없으니까요.” 정성갑 대표의 말이다.
 
자금 유동성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이미 미국 연방준비제도(FOMC)에서 이르면 11월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2008년 리만 사태 당시 미술 시장이 반토막 난 걸 생각해보세요.” 손이천 이사는 내년 상반기, 프리즈 서울이 열릴 때까지는 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일단 이 생태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차분히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5월까지의 통계를 보면 케이옥션 이용자 중 가장 많은 연령층은 40대, 큰돈을 굴리는 건 주로 50대예요. 2007년 무렵에 ‘아트테크’하러 업계에 뛰어들었다가 좋은 경험을 하며 진짜 컬렉터로 성장한 케이스죠. 그런데 40대 이하, 이른바 MZ세대는 회원 수로 봤을 때 유입률이 높아요. 비싼 작품은 못 사더라도 머릿수 자체가 늘어난 거죠. 이렇게 새로운 컬렉터 층이 등장했다는 건 미술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해요”라고 손이천 이사는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최저가에서 시작하는 신진 작가 경매다. 서울옥션의 제로베이스, 케이옥션의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 아트 섹션의 경우 작가들에게 직접 작품을 받아 출품하고, 작가의 작품을 적극 홍보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1차 시장인 갤러리가 해야 할 역할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받았어요. 그러면서도 이걸 하는 이유는 젊은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서예요.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팽창하고 있어도 아직은 컬렉터의 절대적인 숫자가 너무 적어요. 갤러리도 신진 작가 지원 사업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경매로 곧장 유입되는 작가들은 주로 SNS에서 개인적으로 작품을 홍보하거나 전속 갤러리가 없는 경우다. ‘제로 베이스’, 즉 ‘0원’부터 시작하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낙찰될 리스크가 있고 그 때문에 일부 미술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젊은 작가 입장에서는 구매력 있는 컬렉터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요즘 젊은 컬렉터들은 자기에게 효용이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추세예요. 확실히 메이저 작가들만 원하는 건 아닙니다”라고 정성갑 대표는 증언한다. 지금 가장 잘나가는 젊은 작가 군단인 김선우·문형태·우국원의 경우 우리나라 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단색화와 반대인 구상화를 주로 작업한다. 올해 아트부산에서는 팝한 스트리트 아트 108점을 출품한 ‘갤러리 스탠’이 완판을 기록하기도 했다.
 
컬렉터 C씨는 “지금이 기점이에요. 팬층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꾸준히 지속하는 작가가 생길 수도 있죠. ‘거장길’을 걷는 작가들과는 다른 루트로요”라고 말한다. ‘1차 시장이냐, 2차 시장이냐’의 문제도 컬렉터 관점에서는 취향 차이에 불과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취향을 가진 작가의 특정 연도나 모티브를 골라서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컬렉터가 갤러리가 아닌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작품을 주로 구입하는 이유다. 손이천 이사는 경매 사이트의 역할에 대해 “미술 시장의 저변 확대”라고 말한다.
 
많은 분이 ‘대중화’라는 말을 쓰는데 아직까지 미술 시장이 ‘대중화’되기는 이른 것 같아요.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가장 큰 차이는 1차는 프라이빗, 2차는 퍼블릭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가 한창인데 VVIP로 방문한 고객들도 작품을 못 사서 많이들 불평한다고 해요. 갤러리는 관계가 깊은 고객이 먼저니까요. 미술품은 명품보다도 희귀하니 그럴 수밖에요. 특히 지금 같은 호황기에는 이미 팔린 작품을 들고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갤러리의 로열한 고객이 아닌 신흥 부자들은 프리미엄을 붙여서라도 2차 시장에서 작품을 산다. “갤러리는 가격뿐 아니라 희소성으로도 작품에 가치를 부여해요. 경매에서 5만 달러에 거래된 작품을 갤러리에서는 3만5천 달러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대신 신뢰감 있는 컬렉터, 기관, 셀렙에게 판매하는 거죠. 한마디로 작품의 소장처를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역할입니다. 컬렉터끼리는 가끔 냉소 섞인 농담을 해요. 그 작품 SNS에 올리지 말라고. 네가 그 작품을 가지고 있다는 게 과연 그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지부터 생각하라고요.” 컬렉터 C씨는 이 말을 하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갤러리가 가격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도 나름의 섭리가 있어요. 미술 시장에서는 가격에 대해 입소문이 도는 걸 경계하죠. 가격이 비싸면 ‘이게 대체 왜?’, 싸면 ‘별로인가 봐’ 하는 반응이죠. 참 재미있어요.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 같달까요.”
 
미술관 나들이를 단지 취미로만 생각했던 감상자 입장에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쇼 비즈니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당신도 이미 이 쇼의 일부다. 컬렉터 C씨는 “마치 〈플란다스의 개〉 속에 나오는 상황 같죠. 성당에 가서 그림을 한 번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감상자들이 전시장에 가서 그 작가의 작품을 많이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드는 거죠”라고 말한다.
 
황규진 디렉터도 감상자 또한 미술 시장의 귀중한 참여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시를 차려놨으면 일단 많은 사람이 와서 보고, SNS에도 후기를 올려주는 게 좋죠.” 미술 시장의 저변 확대를 꿈꾸는 업계 관계자들은 ‘투자’에만 집중한 ‘공동 투자자’들까지 끌어안을 준비가 돼 있다. 계속 보다 보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갖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라나. 경매시장이 유행하면서 최근 ‘프리뷰’를 다녀왔다는 블로그 후기가 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감상을 목적으로 소장했다가 투자 수익까지 얻는 대목이 미술품 경매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참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깜찍한 ‘아트테크 드림’은 오히려 반대의 결말을 맞곤 한다. 컬렉터 C씨만 해도 금융 포트폴리오 일환으로 미술품 구매를 시작했다가 ‘찐’ 컬렉터가 된 케이스다. “사치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이제는 돈이 정말 궁한 게 아닌 이상 내가 가진 컬렉션에서 작품 하나를 파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완벽한 컬렉션에 구멍이 나잖아요.” 물론 이 역시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긴 하다. 그래서 대체 아트테크가 가능하다는 걸까, 아니라는 걸까? 성공 확률은 몇 %나 될까? 업계 관계자들을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관계자들은 종국에는 파이가 커지고, 컬렉터가 다양해지고, 그래서 여러 작가가 마음껏 활동하게 되는 미술 시장을 꿈꾼다. 가격 쏠림이 없어지고 미술관도 좋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제로섬이 아닌 미술 시장. 손이천 이사는 말한다. “저희도 당장 그림이 잘 팔리면 좋죠. 하지만 1~2년 하고 끝낼 건 아니잖아요. 지금 유입된 컬렉터들이 오랫동안 컬렉션을 유지해야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니 물어보면 모두가 같은 답을 내놓을 수밖에.
 
우선 당신 마음에 드는 그림부터 사세요.
 
[관련기사]
나도 '아트테크' 가능할까?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