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파리올림픽은 모두의 올림픽이었는가?
불평등한 세상에서 평등한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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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뿐 아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라. 히틀러 정권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려 혈안이 됐다. 냉전 시대엔 미국과 소련의 금메달 각축전이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은 인종차별로 기억되는 올림픽이다. 남자 200m 달리기에서 1, 3위를 차지한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추모와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뜻으로 검은 장갑을 끼고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묘목을 손에 든 채 시상식에 임했다. 그러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며 이들을 선수촌에서 쫓아냈고, 그들은 평생 백인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과거의 올림픽이 국가와 인종과 민족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축제였다면,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그런 파시즘의 흔적은 말끔히 씻어졌을까? 국가, 인종, 성별과 무관하게 모두의 축제였는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선 한국 여성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여자 양궁은 단체전 금메달 10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고, 금메달 3관왕인 임시현은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배드민턴에선 안세영이 부상에도 금메달을 따내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포효했다. 사격에선 양지인·반효진·오예진이, 태권도에선 김유진이 금메달을 움켜쥐는 한편, 은메달을 딴 사격 김예지는 “영화 속 주인공 같다”는 SNS 영상이 수십만 번 공유되며 급기야 일론 머스크의 ‘샤라웃’을 받았다. 귀화해 한국 대표로 출전한 유도 허미미는 아쉬운 심판 판정으로 금메달 같은 은메달을 땄으며, 복싱 임애지는 한국 여자 복싱 사상 최초이자 남녀 통틀어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확보했고, 탁구 신유빈은 동메달을 목에 걸며 어리지만 씩씩한 모습으로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여성 메달리스트가 더 많은 올림픽이었다.
눈부신 활약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다 함께 축제를 즐기기도 모자랄 시간에, 일부 한국 남성들은 세계적 밈이 된 사격 선수 김예지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박탈감을 드러냈다. “외국 기사에서 김예지 신드롬은 남성 중심적 올림픽이 여성 중심으로 전환되는 사건이라던데, 그렇게까지 얘기해야 하나? 페미니즘의 부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이 시대 남성들에 대한 위로도 필요한 게 아닐까 함.” “남자는 경쟁심과 서열욕이 강한데 미디어에서 능력 있는 여성을 부각할수록 남성들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르게 돼 있음. 여성한테 밀려서 남성성을 풀 데 없어진 남자들이 의존할 곳은 술이나 성매매 같은 말초적 자극일 수밖에 없음.” 엄청난 논리를 비약적으로 전개하는 이 의견들은 놀랍게도 김예지 선수를 일론 머스크가 ‘샤라웃’했다는 기사에 달린 무수한 악성 댓글 중 일부다. 모든 선수단에 한 명 이상의 여성 선수가 포함된 지 1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단지 여성 선수가 활약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마치 자기가 딴 메달을 빼앗긴 듯이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로 배척받는 이들 또한 있다. 알제리의 여성 복싱 선수 이만 칼리프와 대만의 여성 복싱 선수 린위팅은 염색체 검사에서 XY염색체가 나왔다는 의혹을 받으며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 혹은 간성(염색체, 생식샘, 성호르몬, 성기 등에서 전형적인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에 규정되지 않는 성징을 가진 이를 뜻하는 말)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공격은 러시아와의 유착 문제로 IOC 공인 자격이 정지된 국제복싱협회가 주최한 여성 챔피언십에서 칼리프가 러시아 여성 복서를 이기자 실격 처리한 문제로부터 비롯됐다. 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는 검사 결과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그 검사가 무슨 프로토콜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없고, 그 검사를 믿어도 되는지도 알 수 없다”라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칼리프는 여자라고 축구에 끼워주지 않는 남자아이들을 때려주다가 자신이 복싱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고, 여자에게 복싱을 배우게 할 수 없다는 아버지 때문에 고철을 주워 버스비를 마련해 옆 마을로 가서 복싱을 배웠다. 린위팅은 아버지에게 맞는 어머니를 지키려 복싱을 시작했다. 인류의 1.7%가 XXY 염색체를 가졌거나, 질과 자궁이 있지만 염색체는 XY거나, XX지만 불완전한 음경이 있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간성으로 태어나며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성을 선택한다. 그들이 생물학적 간성으로 태어났다 한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법적 여성의 삶을 살아온 그들은 이미 여성인 것이다. 늘 그렇듯 작가 조앤 롤링은 칼리프와 린위팅의 올림픽 출전을 “남성 권리 운동”, “여성을 주먹으로 때리는 걸 즐기는 여성 혐오”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이어 한 X 유저가 “조앤 롤링은 술 한 병만 더 마셨다간 아예 백인들만 여성이 될 수 있다고 할걸?”이라고 한 포스팅이 수십만 번 공유됐다(국제인권감시기구는 여성 선수에 대한 성별 논란이 높은 비율로 유색인 여성을 향해서만 이뤄져왔다고 지적한다). 세계의사회와 유엔인권위원회는 테스토스테론 검사는 여성과 남성 개개인의 편차를 무시한다고 말해왔다. 일반 여성에게도 부신피질이 테스토스테론 등 남성 호르몬을 과잉 생성해 체모가 증가하고 생리통이 도지고 여드름이 나는 일들은 종종 일어난다. 그렇다면 그 순간에 여성은 남성이 되는가? 호르몬 수치만으로 여성과 남성을 판가름할 수 있겠는가? 어떤 신도 어떤 과학도 그것을 정의 내리지 못했는데, 개인적인 의견과 기분으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국가로, 인종으로, 성별로 줄을 세우는 일이란 필연적으로 편향과 배제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인 예로 갖춰진 시설에서 훈련해야 하고 타고난 피지컬이 중요하기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단연 앞서는 스포츠인 수상 종목은 금메달 개수만 49개다. 올림픽은 어떤 경지에 오른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국가, 인종, 성별에 따라 인간의 급을 매기고 줄을 세우며 동시에 배제하는 숭고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IOC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국적 ‘난민 대표팀’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난민은 1억 명에 이르며, 파리 올림픽에서는 이들을 대표해 12개 종목 36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한편으로는 축제를 앞둔 시기에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18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선수와 스포츠 관계자가 죽었고, 그 죽음의 한복판에서 목숨을 건진 8명의 선수만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여전히 전쟁과 불평등이 가득한 세계에서 국가별로 금과 은을 가려낸다는 것은 선진국들만의 잔치일지도, 끔찍한 세계를 외면한 채 눈을 감고 오락을 즐기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불평등에 시달리고, 전쟁을 치르고, 각자가 지닌 것을 빼앗으려는 게 인간사 만고불변의 이치라면, 그걸 잠깐 잊는 올림픽이라는 축제에 너무 엄격하게 구는 것이라면, 적어도 잃지 말았으면 하는 몇 가지. 여성이 메달을 땄다고 남성이 박탈감을 느껴서도, 생물학적 성이란 허상에 누군가를 배제해서도, 민족의 우월성이 주는 달콤함에 눈이 멀어도 곤란하다. 세계가 불평등하더라도 스포츠는 평등하길 바란다. 현실에서는 지는 자도 스포츠에선 승리하길 바란다. 그것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어떤 경계로도 나뉠 수 없는 우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잠시의 기쁨일 테니.
Writer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윤리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Credit
- Editor 이예지
- Writer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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