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어로 ‘눈속임, 착각을 일으킴’을 뜻하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는 실물로 착각할 정도의 사실적 묘사로 그리는 회화 기법을 말한다. 정교한 눈속임을 통해 시각적 환영과 충격을 자극하고자 했던 것. 이것이 후대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겐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수단으로 여겨졌는데, 이 트롱프뢰유 기법을 활용해 가상, 즉 초현실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착시 현상을 유발하는 트롱프뢰유 패션은 바로 이 초현실주의 미술에 기반을 둔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살바도르 달리와 장 콕토의 친구이자 이들과 영감을 주고받았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1927년 눈속임을 일으키는 리본 매듭 패턴 스웨터로 당대 최고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라이벌로 평가되며 세계적 디자이너로 급부상했다. 트롱프뢰유 패션의 시초라 평가되는 그는 이후 손톱 모양의 장식이 더해진 글러브와 슈즈 모양의 해트 등 위트 넘치는 트롱프뢰유 패션을 다채롭게 선보이며 자신만의 독특하고 예술적인 패션 세계를 창조했다. 스키아파렐리의 뒤를 이어 수많은 디자이너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돼온 트롱프뢰유. 그중 에디터의 뇌리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2명의 디자이너가 있으니, 바로 장 폴 고티에와 마틴 마르지엘라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이 두 디자이너는 파워풀하고 해체주의적인 트롱프뢰유 패션을 선보였다. 장 폴 고티에는 그래픽 패턴, 인체나 옷을 촬영한 사진이나 드로잉을 프린트해 착시 효과를 선사했고, 마르지엘라 또한 옷 사진을 프린트하거나 누드 컬러의 보디 슈트에 프린트(에디터는 2007년 마틴 마르지엘라의 브라톱 프린트 보디슈트를 입고 레드 카펫에 오른 배우 장미희의 충격적일 정도로 패셔너블했던 룩을 통해 트롱프뢰유 패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를 더해 마치 맨몸 위에 옷을 입거나 타투를 한 것 같이 보이는, 하나의 모던아트 피스처럼 보이는 룩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인 이 3명의 트롱프뢰유 피스를 공부하며 자라난 오늘날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2022 F/W 시즌과 2023 S/S 시즌 이 패션을 런웨이에 대거 올렸다. 가상 인물이 사람을 대체하고, 사람이 가상 인물처럼 보이는 이 혼란한 시대에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진(물론 그저 디자인적으로만 트롱프뢰유를 다룬 디자이너들도 있겠지만) ‘오늘의 현실’을 패션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진짜와 가짜의 경계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자유분방한 영 제너레이션의 취향을 저격하고 싶었던 걸까?















1990년대와 2000년대 패션을 향한 호기심이 크고, 빈티지 패션을 사랑하는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와 영 디자이너들의 사랑 속에 트롱프뢰유는 오늘날 우리가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빅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 난해한 패션을 어떻게 입느냐는 질문엔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그냥 볼 때는 꽤나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옷의 구성 자체는 굉장히 베이식하니 용기를 내어 꼭 한번 입어보세요!”라고. 눈속임용의 저급한 그림을 그린다며 당대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았던 중세 시대의 트롱프뢰유 화가들처럼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 일도 없지 않은가. 실용적인 구성임에도 강렬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니, 이처럼 가성비 좋은(물론 금액은 그렇지 않겠지만!) 패션도 없다(2008 F/W 돌체앤가바나의 폭스 퍼 패턴 시리즈나 웰던의 2023 S/S 바이커 재킷 프린트 톱처럼 어떠한 룩을 패턴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여러 장점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트롱프뢰유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티셔츠처럼 가벼운 아이템 또는 패턴 프린트와 같은 낮은 레벨부터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베이식한 동시에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비티가 폭발할 수 있는 유일한 패션이자, 가장 실용적인 동시에 가장 초현실적인 패션 트렌드 트롱프뢰유에 당신도 꼭 도전해보길 바란다. 에디터도 와이프로젝트의 트롱프뢰유 티셔츠를 구매해볼 생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