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여성스러운 게 뭔데? 2025 FW 신상 컬렉션으로 본 새로운 여성성

2025 F/W 런웨이는 더 이상 ‘여성스럽다’는 고정관념에 머물지 않았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벗어나 힘, 유연함, 다양성을 드러낸 새로운 여성성의 패션 키워드를 살펴본다.

프로필 by 서지현 2025.09.24
1 MM6 MAISON MARGIELA 2 BLUMARINE 3 GIVENCHY 4 CECILIE BAHNSEN 5 FENDI 6 VERSACE 7 ASHISH 8 TOM FORD 9 GIVENCHY 10 CALVIN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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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복잡하다. 신체적 공통점만으로 이 복잡한 존재를 하나로 묶을 수 없단 걸 모두는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아는데 보고 말할 땐 착각하기 쉬운 그것, 우리는 ‘여성스럽다’는 표현에 때때로 편견을 두곤 한다. 보호하고 싶은 연약한 존재일수록, 가슴이 크고 허리가 잘록할수록, 알고 보면 상냥하고 귀여울수록 ‘여성스럽다’는 수식이 붙어온 시절이 유구하다. 특히 여체를 다루는 패션계에선 이 표현이 클리셰로 작용했다. 섬세한 레이스 소재, 솜사탕처럼 뽀얀 핑크 컬러, 관능적인 보디컨셔스 드레스엔 늘 ‘페미닌’이란 제목이 따라붙었다. 옷 입는 방식으로 담론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주도하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은 점차 여성에 대한 정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2025 F/W 시즌, 여성성(Femininity)은 이 계절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가 됐다.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 & 라프 시몬스 듀오는 컬렉션 전면에 페미니니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여성스럽게 입는 것, 그리고 여성스럽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대화로 시작해 둘은 궁극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형태의 여성을 줄 세웠다. 앞과 뒤가 바뀐 듯한 셔츠, 비율이 왜곡된 코트, PVC 속에 갇힌 퍼 소재, 의도적으로 드러낸 봉제선, 자다 깬 듯 헝클어진 머리카락 등이 그 예다. “여성적 아름다움과 패션의 개념은 너무 자주 ‘제한’으로 귀결된다”라고 한 미우치아 프라다는 ‘Raw Glamour’를 테마로 내걸며 완벽함의 제한을 해제했다. 이 날것의 모습은 고정된 여성성에서 벗어나 페미니니티에 대한 지속적이고 철학적인 대화를 촉발하는 신호탄이 됐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또 다른 세계인 미우미우 역시 이번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여성성을 시각화했다. 복수형을 결합해 ‘Femininities’라 명명한 컬렉션의 대미는 불릿 브라 실루엣. 1950년대 속옷으로 시작해 1980년대 마돈나, 2000년대 레이디 가가의 무대의상으로 탈바꿈하며 성적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 실루엣을 부활시킨 것. 흥미로운 지점은 여린 소재와 포근한 컬러로 덮은 니트웨어에 결합해 사무실에 입고 나가도 어색하지 않을 버전을 만들었단 사실이다. 혁명의 갑옷 같던 인상을 지우고 여성성의 한 단면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패션계를 이끌고 있는 다른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시각도 흥미롭다. 사라 버튼은 지방시 데뷔 컬렉션에서 빈 화장품 케이스를 잔뜩 붙인 드레스를 선보였다. 백스테이지에서 볼 법한 기물을 무대에 앞세운 데서 보이지 않는 여자의 꾸밈 노동을 수면 위로 올린 것 같은 묘한 공감을 느낀 건 비단 에디터뿐만이 아닐 것.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간과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인공처럼 그의 런웨이엔 러프 칼라와 레이스 드레스, 해적과 밀리터리 스타일이 뒤섞인 룩이 쏟아졌다. 디올 하우스의 아이덴티티는 여전했으나, 그 속에서 여성성의 코드를 전복하려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의도는 명확했다. 끌로에를 이끄는 셰미나 카말리는 ‘다면적인 여성’을 기리는 것을 목표라 말하며, 1세대 페미니즘과 여유로움, 자유의 물결이 넘실대던 1970년대 보헤미안을 부활시켰다. ‘맘 파워’의 상징인 스텔라 맥카트니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장’이라는 노트와 함께 남녀 폴댄서와 슈트를 입은 모델들을 무대에 올렸다. 이 밖에도 런웨이 전반엔 같은 부류로 묶을 수 없는 여러 갈래의 트렌드가 등장했다. 지방시, 스텔라 맥카트니, 톰 포드, 빅토리아 베컴, 발렌시아가에선 슈트 웨어가 쏟아졌고, 반대로 생 로랑, 펜디, 구찌, 발렌티노의 무대는 사랑스러운 레이스로 물들었다. 나아가 알투자라, 블루마린, 세실리에 반센과 MM6 메종 마르지엘라는 누드에 가까운 시스루로 관중을 숨죽이게 했고, 존 갈리아노를 소환한 디올의 ‘자도르’ 티셔츠와 아쉬시의 “Not in the Mood(그럴 기분 아니야)”, “Fashion, not Fascism(파시즘이 아닌 패션)” 문구가 적힌 티셔츠는 자기주장이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처럼 양극단을 달리는 트렌드의 혼재는 이번 시즌 더 이상 전통적 페미닌 코드가 자리 잡을 틈이 없음을 시사한다. 주디스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1990)에서 말했듯, 젠더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수행되는 것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카테고리는 이제 본질이 아니라, 사회가 끊임없이 새로 쓰는 수행의 결과다. 이번 시즌 런웨이가 보여준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의 단편들은 바로 구식 이분법을 넘어서는 재분류에 대한 요청과 열망이 활짝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1 MIU MIU 2 SAINT LAURENT 3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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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서지현
  • Photo By Imaxtree.Com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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