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부터 게더타운, 이프랜드, 그리고 로블록스까지. 메타버스 플랫폼은 점점 더 촘촘하게 다양해지고 있다. 작년 한 해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던 메타버스는 올해 더 몸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각종 기업들은 메타버스, NFT 등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세대를 불문하고 이용자 수도 빠르게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우리의 또 다른 현실로 뿌리내리려면 꽤나 많은 문제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이버 폭력. 사이버 폭력은 인터넷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부터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였지만, 메타버스가 등장한 후 이 문제는 모터를 단 듯 가속화됐다. 서로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빌미 삼아 일삼는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과 아바타 성추행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난 1,2년 간 한 번쯤 접해봤을 뉴스.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기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나치수용소, 섹스룸 등이 등장한 것. 로블록스에서는 이용자 개개인이 각종 게임을 만들고 또 플레이 할 수 있다. 그런 이곳에 등장한 나치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 학살된 아우슈비츠를 본따 제작됐다. 나치 제복을 입은 아바타의 등장은 물론 실행 버튼을 누르면 치명적인 독가스가 방출되도록 설정되어 있다. 섹스룸은 또 어떤가. 이곳은 스트리퍼를 비롯한 다양한 섹스 도구, 의상이 구비되어 있으며 다른 이용자와 성적인 대화는 물론 성관계 동작들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설정상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행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데 문제는 이 플랫폼의 이용자 중엔 미성년자들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물론 로블록스는 해당 사건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 여러 메타버스 이슈들을 미루어 봤을 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상세계에서도 이어진 차별과 혐오의 역사는 비단 로블록스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여년 전, 혐오 발언과 개인 정보 무단 사용으로 인해 논란을 일으켜 서비스가 중단되었던 인공지능 채팅 로봇 ‘이루다’를 기억하는가. 이는 비단 국내에서만, 우연히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알고리즘의 편견〉을 잠깐 보자. 작품에 등장하는 흑인 여성이자, MIT 미디어 랩의 연구원 조이는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자신에겐 반응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이 하얀 가면을 쓰면 반응을 했던 것. 그녀는 이 이유를 찾아나가는과정 속에서 특정 계층(특히나 백인 남성)이 인공지능 개발을 주도하며 무의식적으로 백인, 그리고 남성 위주의 편견과 차별이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과정으로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개발된다면, 차별과 혐오가 정당화되고 더 멀리 나아가서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러한 무의식적인 편견까지도 고스란히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작품에 등장하는 AI의 변명(?)으로 정리된다. ’때론 잘못 분류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 실수는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공지능 채팅 로봇 ‘이루다’는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서비스 시범 운영을 재개하려는 중이다.
신기술, 새로운 플랫폼은 우리네 일상에 정착되기까지 일련의 과도기를 거친다. 메타버스, 인공지능을 비롯해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이제 막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가 열리려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이 세계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천 년간 존재해왔던 아픈 역사와 해묵은 혐오, 그리고 차별이 ‘그 세계’에도 이어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