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이것은 커플 비즈니스인가, 비즈니스 커플인가

어쩌다 우리는 연애 콘텐츠 홍수 속에 살게 됐을까?

BYCOSMOPOLITAN2021.11.11
 
연예인이 친근해지면 옆집 친구 같다더니, 요즘 내가 딱 그렇다. 최근 사귄 친구의 이름은 유깻잎. 그를 알게 된 건 〈우리 이혼했어요〉(이하 〈우이혼〉) 때문이었다. 연예인이 나 혼자 살고, 배우자와 동상이몽으로 살고, 부모 눈에 미운 우리 새끼로 사는 관찰 예능은 이미 식상했고, 연예인끼리 혹은 ‘갓반인’끼리 썸을 타는 각종 데이트 프로그램 역시 어느 순간 그게 그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혼 리얼리티’라니! 활동 기간을 합치면 80년이 넘는 두 중년 연예인(이영하, 선우은숙)이 이혼한 지 14년 만에 출연한 것도 놀라운데, 풋풋한 연애 리얼리티에 어울릴 듯한 청춘 남녀의 등장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누구냐 너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이혼 6개월 차 유튜버. 나는 영화 〈연애의 온도〉와 드라마 〈연애시대〉의 현실 버전 같은 둘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주변에도 이 방송을 챙겨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아, 일부 카톡방의 대화는 실시간 채팅방 같았다. “이혼한 남녀 보는데 설레는 이 기분 무엇?”, “둘이 다시 잘됐으면 좋겠다”, “시아버지 무서운 거 못 봤어? 난 반댈세!” 같은 대화가 오갔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유깻잎에게 과몰입했고, 그의 전남편인 최고기와 합동 방송을 하는 싱글맘 유튜버 나탈리(배수진)를 내 절친의 애인을 뒤흔든 나쁜 계집애처럼 경계했다. 그러고 보니 〈하트시그널〉의 성공 이후 일반인이 출연하는 연애 예능이 많아도 너무  많다. 〈돌싱글즈〉 〈나는 솔로〉 〈체인지 데이즈〉 〈환승연애〉 등등. 하나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본 사람은 없는 듯하다. 공중파를 벗어나 케이블 채널과 OTT 플랫폼에서 자유로워진 방송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넘치는 콘셉트를 보여준다.
 
하긴, 21세기 초에 남성 연예인들이 일반인 여성에게 구애하던 〈애정만세〉 〈산장미팅〉과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며 설레어 하던 ‘라떼’ 세대는 이제 결혼한 연예인의 집을 구석구석 들여다봐도 심드렁하다. 반면 타인의 일상을 브이로그와 유튜브로 들여다보는 게 익숙한 세대는 일반인 커플의 꽁냥꽁냥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연애를 지켜보는 것이 친숙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 제작자들은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연애 관찰 예능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고, 동영상 플랫폼에는 연애 관련 콘텐츠가 넘쳐난다. 자연스럽게 연애 리얼리티 출연진엔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인터넷 방송인이나 인플루언서 같은 ‘연반인’이 포함된다.


“관찰 카메라는 우리 식으로 순화된 표현이지만 본래는 서구의 ‘리얼리티 쇼’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정서상 (〈투 핫!〉 같은) 섹슈얼한 사생활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대신, 가장 가능한 자극으로 연애나 결혼 관계를 되도록 사실적으로 담는 거죠.”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요즘처럼 대중이 일반인의 연애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의 관찰 카메라 역시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자극에 익숙해지고 그 내밀함도 과거에 비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남녀가 처음 만나 연애를 매칭하는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헤어진 커플들이 한 공간에서 연애를 하거나 돌싱이나 이혼한 커플이 같이 지내는 모습을 관찰하는 방송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반인 커플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연예인보다 일상의 공감대가 큰 일반인의 면면을 보고 싶은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에요. 연예인은 프로 방송인이다 보니 서로 짜고 치는 방송일 가능성이 높고, 일반인들과 사뭇 다른 그들의 사생활 또한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동영상 플랫폼에 올라오는 연애 관련 게시물 중에는 그저 멍하니 보게 되는 순정만화 재질의 영상도 많지만, 높은 조회수와 구독자를 모으는 건 역시나 금기시된 연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영상이다. 특히 깜짝 놀라게 하거나 질투심을 유발하며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몰래카메라’ 콘텐츠가 인기다. 커플 유튜버 수입 1위, 구독자 206만의 개그맨 출신 커플 크리에이터 ‘엔조이커플’은 헤어질 각오하고 하는 장난, 일명 ‘헤각장’ 콘텐츠로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사례다. ‘외롭다고 소개팅 앱 깔았더니 남친 반응’, ‘게임 하는 남친 모니터 꺼버리기’, ‘존잘 남사친이 대놓고 선 넘는다면?’, ‘여친 집에서 샤워한 남자가 나온다면’ 등 내가 하기엔 헤어질까 봐 겁나지만 남이 한다면 기꺼이 들여다보고 싶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남자 친구와 〈영평TV〉 채널을 운영하는 개그맨 이세영은 ‘여자 친구가 (H컵) 가슴 수술을 하고 온다면 일본인 남자 친구의 반응은’, ‘남친이 다른 여자랑 침대에서 자고 있을 때 여친 리액션’ 같은 19금 터치의 몰카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인구 주택 총조사 광고 영상을 찍었을 만큼 인지도가 높은 ‘연스커플’은 ‘남자 친구 차에서 생리대가 나왔다면’ 몰카가 순식간에 100만 뷰를 기록하며 급부상했다. ‘엔조이커플’은 방송에서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를 “둘 다 무명 개그맨이라 돈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 발악으로”라고 말했는데, 요즘 이들의 한 달 수입은 많게는 외제차 한 대값(적게는 국산 중고차값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몇 년간 친구 사이였다가 스킨십 한 방(?)에 연인이 된 케이스로, 최근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왓챠의 연애 관찰 리얼리티 〈러브&조이〉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야말로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커플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다. 부러운 한편 그렇게 쓸데없다고 하는 (연예인) 걱정도 든다.
 
이렇게 다정하고도 은밀하며, 때때로 추해지는 둘만의 관계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해도 괜찮은 걸까? 만약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결별 후 둘의 비즈니스는?
괜한 걱정 같지만 얼마 전 107만 구독자를 보유한 ‘성수커플’이 5년의 연애를 끝내며 4년간 운영하던 채널의 모든 게시물을 삭제한 일, 역시 사실적인 ‘커플 몰카’ 콘텐츠로 승승장구하던 ‘만자’, ‘근돌’ 커플의 〈양장피TV〉 채널이 이 기사를 작성하는 와중에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걸 고려하면 앞일은 누구도 모르기에 일종의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엔조이커플’의 경우 채널을 오픈할 당시 ‘이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이별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모든 것을 양도하고 떠난다’가 그 내용. 상도덕 특약으로 ‘헤어진 후 1년 동안 동종 업계 커플 채널 개설 금지’ 조항도 있다.
 
45만 구독자를 보유한 ‘푸들커플’은 ‘소속사 커플 유튜버가 헤어졌다고 한다면’이라는 내용으로 에이전시 매니저를 상대로 몰카를 찍었는데, 당장 계약 해지 서류를 달라는 두 사람에게 매니저가 채널을 정리할 시간을 위해 “연기라도 해달라”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쯤 되면 의구심이 든다. 그나저나 너희 진짜 커플 맞지? 연기하는 거 아니지? 인기 좀 있다 하는 유튜버 커플은 ‘비즈니스 커플 의혹’에 해명하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한국 남자와 러시아 여자의 결혼 생활을 보여주며 224만 구독자를 모은 ‘인터내셔널 커플’은 ‘둘이 같이 살지 않는데 돈을 벌기 위해 연기한다’는 의혹에 주민등록등본을 뽑아서 보여줬고, ‘푸들커플’의 경우 SNS상에 떠도는 “저 남자애 친동생이랑 내 친구랑 아는데 둘이 비즈니스래”란 댓글에 반박하기 위해 남자 쪽에서 ‘자신은 친동생이 없는 외동아들’이라며 가족관계 증명서를 제시한 일도 있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비연예인을 향한 비즈니스 커플 의혹에 대해 이제는 누구나 익숙할 정도로 영상 콘텐츠가 일상화됐으며, 모두가 ‘영상이 돈이 된다’는 걸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를 소비하는 일반인도 영상에 익숙하기는 마찬가지라 더 예민하게 영상의 진정성을 들여다보죠.” 또한 ‘관찰 카메라’를 ‘완전한 진짜’라고 여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촬영하고 편집하고 자막을 붙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예 기획된 영상을 찍어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관찰의 대상이 되는 이들 역시 카메라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일종의 연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관찰 카메라의 기획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우이혼〉의 경우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는, 이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게 기획 의도인데, 지나치게 재결합을 부추기는 듯한 시선이나 자극적인 포인트는 기획 의도를 벗어나 제작자의 욕망이 들어가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아는 (것 같은) 친구 유깻잎으로 돌아와서, 그와 최고기의 관계는 방송이 끝난 후에도 뉴스거리가 됐다. 최고기가 여자 친구 사진을 공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방송의 작가라는 사실이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밝혀진 것. 방송 내내 전처와 잘해보고 싶어 하는 그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정성에 발목을 잡는 논란이었다. 최고기는 여자 친구가 본인 담당 작가가 아니었으며 프로그램 종영 후 가까워졌다 해명하고, 자신의 연애를 응원해주는 전처와의 대화를 캡처해 올리는가 하면, 무분별한 악플은 수집 중이며 선처 없이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연애도사〉에 출연한 유깻잎은 (굳이 할리우드 스타일로) 남편의 연애 소식에 박수 치는 이모지 댓글을 단 것에 대해 “전남편이 시청자들에게 질타당할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질타를 당했다”며 공개적으로 응원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종영된 이혼 남녀 로맨스 〈돌싱글즈〉에 출연한 배수진은 〈우이혼〉 출연 당시 박힌 미운 털을 뽑고 기저귀 가방으로도 화제에 오르는 ‘셀렙’의 길을 걷고 있다.
 
어느새 나는 유깻잎의 이혼 전후를 다 지켜본 절친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최근 이 친구는 안면 지방 이식과 가슴 수술 후기로 나를 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그저 이혼한 두 사람의 일상과 감정이 궁금했을 뿐인데, 어쩌다 가슴 수술을 고려하고 있는 거지? 친구 하나는 요즘 〈체인지 데이즈〉 출연자 이상미에게 빠져 있다. 그가 방송에 입고 나온 옷 하나하나가 다 예쁘다며, 남자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린다. 이상미와 남자 친구는 결혼과 결별 사이에서 고민하는 10년 차 장수 커플로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둘은 헤어지지 않았고, 남은 건 쇼핑몰과 유튜브 홍보 효과였다.
 
친구는 두 사람이 운영하는 쇼핑몰을 들여다보면서 구시렁거렸다. “어차피 헤어질 생각도 없으면서 방송에 나온 게 아닐까? 근데 이거 예쁘지? 이거 살까?”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친구도 이들을 보기 시작한 건 연애 세포 자극이라 믿었건만, 결말은 소비 자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방송이 끝난 후 그들은 돈과 인기를 얻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느낌이랄까? 광고 청정 지대 영상물을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요즘, 연애 콘텐츠라고 다를 건 없을 것이다.
 
대중이 열광하는 ‘연반인’ 커플 중 누군가는 돈과 인기를 위해 가짜 커플 연기를 하거나 헤어져도 잘 사귀는 척 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즈니스 커플’이 존재한다면 그만큼 그 두 사람이 커플 연기로 얻는 이익이 크다는 반증일 테고. 뻔한 결말이지만 판단은 보는 우리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질문. 연애 리얼리티 방송과 연애 콘텐츠 영상은 커플 비즈니스의 결과물일까? 아니면 비즈니스 커플의 향연일까? 둘 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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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lancer editor 김가혜
  • photo by Stocksy(메인)/ imdb(<프로포즈>)
  • photo by 공식 홈페이지(<이번 생은 처음이라>)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