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미래

2021년의 트렌드 키워드는 브이노믹스(V-nomics).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꾸게 될 경제’라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엎은 혼란한 세상과 다양한 이슈 속에서 우리의 노동 시장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BYCOSMOPOLITAN2021.01.06
 
그간 회사는 무릇 충성을 바쳐야 하는 곳이었다.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기준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닌, 우리가 온종일 회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가’였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방탄소년단이 무대를 위해 갈아입은 수많은 의상 수만큼, 노동의 세계도 엄청난 변화를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회사원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기업들 역시 예상치 못한 이 사태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또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하향세를 타거나 문을 닫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실정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 충격은 사업가부터 노동자, 사회의 취약 계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뜨겁게 달궜다. 이제 감히 “회사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릴까?”라는 푸념은 못 하게 됐지만, 장기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사무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좀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영국의 노동자 경험 플랫폼 서비스 ‘플렉스 어필(Flex Appeal)’의 설립자 애나 화이트하우스 역시 변화가 긍정적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는 무려 2015년부터 탄력 근무제 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펼쳐왔다. 세상의 모든 노동자가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행복하게 일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계는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있다. “탄력 근무는 기업의 우려와 달리 노동자들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아요. 오히려 업무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죠”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많은 기업이 오랫동안 탄력 근무 시스템을 취하는 ‘척’했죠. 한 달에 몇 번 시험 실시해보고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노동자들을 회사로 밀어 넣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기술적 한계 등을 운운하는 게 먹히지 않게 된 거죠. 코로나19 때문에 강제적으로 재택근무 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기업들도 못 이기는 척 장기 재택근무 체제가 가능하다는 걸 인정한 거예요.” 
 
탄력 근무는 비효율적이라는 편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트위터는 직원들이 원하면 원격 근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발표하며 이 편견에 맞섰으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한국 정보기술(IT) 기업이 세운 재택·원격 근무 관련 새로운 표준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기업이 최근 순환 근무에서 전사 재택근무로 돌아서는가 하면, 네이버 임직원의 재택근무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택근무 활용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 효율이 높아졌냐는 질문에 인사 담당자의 60% 가까이 “그런 편이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답변을 내놓은 이는 겨우 4%였다. 최근 구인·구직 서비스 ‘사람인’에서 직장인 1925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직장 생활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발맞춰 넥슨, 엔씨소프트 등 한국의 대표 IT 기업도 재택근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런 문화가 모든 직장에 반영된다면 어떨까? 모든 노동자가 단순히 자유롭게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평등을 누리게 될 것이다. 탄력·원격 근무제는 곧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직접적인 방법일 수 있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사라지면 주거 환경과 거주지 선택에서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재택근무의 장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수많은 변화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그대로 유지될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컨설팅 회사 중 하나인 ‘미래 연구소(The Future Laboratory)’와 국내 재택근무 경험자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다.
 
복장 규정부터 아침 9시가 기본인 출근 시각, 거기다 야근까지, 회사 생활로 우리의 사생활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전까지는 말이다. 수십 년간 유지돼왔던 이 노동 문화가 변화를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실은 한참 전에 바뀌는 게 맞았겠지만.
 

#1 기업, 직원의 ‘진짜’ 니즈를 파악하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기업, 특히나 스타트업 기업이 활기찬 내부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왔다. 공짜 조식, 언제든 따라 마실 수 있는 공짜 맥주, 누구나 쓸 수 있는 게임기는 물론 회사 내 이벤트를 기획하며 말이다. 놀이터를 연상케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무실 인테리어 역시 한때 큰 유행이었다. 그러나 미래 연구소의 홀리 프렌드는 “사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큰 효과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오히려 직원들에겐 이런 문화가 압박으로 다가왔을 수 있어요. 마치 이걸 즐기지 않으면 ‘내가 이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걸까?’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죠.” 한때 공유 오피스 위워크에서 1년간 근무했던 한석준(가명) 씨도 이에 동의했다. “너무 피상적인 문화였어요. 오히려 직원들을 산만하게 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죠.” 최근 눈치 빠른 기업은 직원들의 정신 건강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제 심심치 않게 많은 회사가 심리 상담이나 다양한 종류의 테라피 프로그램을 진행할 거예요. 진짜 중요한 건 직원들의 ‘멘탈’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실제로 롯데, 에듀윌 등 많은 국내 기업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하는 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심리 프로그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2 사무실 NO! 가상공간에서의 업무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사라지고, 회사는 가상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이미 잘 알려진 ‘슬랙’, ‘카카오워크’와 같은 업무용 메신저 툴을 비롯해 업무용 협업 문서 도구인 ‘노션’ 등이 한국 기업 문화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에서 ‘노션’은 2019년 대비 사용자가 263%나 증가했다. 최근 NHN의 ‘두레이’, KT의 ‘KT웍스’ 등 한국 IT 기업들도 앞다퉈 업무용 메신저와 협업 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제 사무실 내에서 파티션 너머로 주고받았던 동료와의 쓸데없는 수다, 점심시간이면 귀에 피가 나도록 듣곤 했던 상사의 사적인 질문, 사담이 절반 이상인 형식적 회의는 사라지고 오직 업무에 관련된 대화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노동자, 그러니까 우리의 사생활이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소통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은 아니에요.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협업 툴은 업무 문서에 자신의 의견을 댓글처럼 자유롭게 덧붙일 수 있는 형태죠. 화상회의 서비스나 업무용 메신저도 마찬가지고요. 마치 모바일 게임 〈심즈〉를 하는 것처럼 가상현실 속에서 일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죠”라고 프렌드는 말한다.
 

#3 회사가 ‘다’는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우리는 과도기를 겪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없이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된 몸으로 그저 침대에 드러누워 다음 날 출근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그런 시대는 끝난 것이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 ‘스톱’을 외치게 되면서 바쁜 상태를 무조건 선호하는 문화가 약화하고 있어요. 번아웃 증후군으로 지속적인 사회적 문제가 누적됐던 과거에 대한 반동이죠. 승진 사다리를 타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보다 개인적인 만족감과 성취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올 거예요”라고 프렌드는 말한다. “재택근무를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이전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업무 실적, 승진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했거든요. 물론 끊임없이 고민한 덕에 업무 실력이 향상되긴 했지만, 건강하지 못한 삶이란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제 개인적인 시간과 행복이 우선이죠”라고 스타트업의 종사자 문이슬(가명) 씨는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회사가 제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재택근무로 회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보니, 회사는 그저 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죠.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도 줄었고요”라고 문이슬 씨는 덧붙였다.
 
도시에 있을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거죠. 교외나 한적한 곳에 거주하며 삶의 질이 향상될 수도 있고요.
 

#4 사라질 도시의 개념

재택근무의 여러 제약을 감안해 개인의 사무 공간을 좀 더 유연하게 확장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원격 근무다. 대부분의 기업이 ‘일시적 재택근무’가 아닌 원격 근무를 시행하게 되면, 아마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사라질 것이다. 사무실 임대 및 운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많은 기업이 정기적인 방역과 소독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다. “원격 근무가 시행된다면, 많은 노동자가 시골로 대규모 이동을 할 수도 있어요”라고 프렌드는 주장한다. “도시에 있을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거죠.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교외나 한적한 곳에 거주하며 삶의 질이 향상될 수도 있고요.”
 

#5 장기근속? N잡러!

장기근속은 이제 옛말이 될 것이다. 2020년은 직업과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재택근무 덕에 직업이 N개로 늘어났다고 한석준(가명) 씨는 이야기한다. “하루의 절반을 사무실에서 보냈기 때문에 ‘투잡’을 뛰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잠깐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체력적인 한계는 물론 야근이 가장 큰 문제였죠.” 그런 그가 지금은 재택근무와 동시에 2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작곡 강의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니 창작할 여유가 생겼죠. 덕분에 유튜브 채널에 음악과 영상을 편집해 올리며 용돈 벌이도 하고 있고요.” 물론 한석준 씨의 본업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웹 디자이너다. 취미로 해왔던 음악이 이제는 또 다른 커리어가 된 것이다. “커리어를 위해 매일 코딩 공부도 따로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느라 꿈도 못 꿨는데 말이에요”라고 한석준 씨는 덧붙였다. 이처럼 재택·원격 근무는 수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직업, 혹은 이를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노동 시장의 한 부품이 아닌 ‘내가 뭘 잘하고, 뭘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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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lancer Editor 이소미
  • Art Designer 안정은
  • Photo by GettyImagesBank
  • 기사등록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