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파트 대신 빌라를 선택한 이유

투자성 높은 아파트 그리고 남향집. 한국인이 ‘좋은 집’을 판단하는 척도지만, 반스 마케팅 매니저 최진수와 IT 회사 포토 프로듀서 정재연 부부는 뻔한 기준을 벗어난 빌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거실과 방으로만 수렴되는 아파트식 생활양식을 벗어나니 ‘내 시간’이 생겼고, 저녁에 해가 잘 드는 서향집에서의 하루는 전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

BYCOSMOPOLITAN2020.11.04
 
지금까지 어떤 주거 형태에서 살아봤나요? 
정재연(이하 ‘정’) 저는 10년 넘게 혼자 살고 있었고, 남편은 부모님이랑 같이 살다 결혼 후 합치게 됐어요.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된 낡은 아파트를 뜯어고쳐 5년 정도 살다가 지난해에 한남동 빌라로 이사했죠. 
 
다들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는 시대다 보니,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이사하는 건 큰 결심이었겠어요. 
우리 사회에 20평 다음에는 30~40평대 아파트로 넘어가는 암묵적인 순서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에게 중요한 건 미래를 위해 재산을 불리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현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둘 다 워낙 친구가 많고,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해 더 넓은 집을 구하고 싶기도 했고요. 이전 집은 한강과 63빌딩이 보이는 멋진 뷰가 있었는데, 한번은 불꽃놀이를 할 때 지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다 보니 20평대의 작은 집에 성인 20여 명이 다글다글 모인 적도 있거든요. 이 집은 가격 대비 평수가 아파트보다 10평 정도 더 효율적으로 넓어요. 발코니도 있고, 파티를 할 수 있는 옥상도 있죠. 아파트에서는 전혀 할 수 없는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일반적인 아파트 구조와 달리 ‘ㄷ’인 집 구조가 특이하더라고요. 동선이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최진수(이하 ‘최’)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 형태에서 살아보자는 결심이 빌라를 물색하게 된 출발점이었죠.  화장실도 하나뿐인 작은 집에 살아 저만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고요. 그런데 이 집은 ‘ㄷ’ 자 구조 덕에 공간마다 확실한 구분이 돼요. 현관을 기준으로 왼쪽은 거실과 주방, 오른쪽엔 방 3개가 다 몰려 있거든요. 씻고 쉬고 노는 공간이 완벽히 분리되는 거예요. 대부분의 한국 집 구조는 거실과 방이 밀접하고 가족이 함께 ‘밍글링’하는 구조다 보니 누구 하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본의 아니게 말다툼을 하고 싸우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각자의 공간이 구분돼 있어 그런지 이사 전보다 훨씬 덜 싸워요. 
 
부부가 각자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다른데, 여기서 엿보이는 취향도 확실히 구분돼요. 거실과 키친이 옆에 붙어 있지만, 바닥 마감재까지 달라 서로 다른 집 같아 보여요. 
대부분의 한국 집은 현관으로 들어가면 바로 거실이 나오고, 거실에는 주로 TV와 소파가 있잖아요. 자연스럽게 그런 공간 배치를 중심으로 TV를 보거나 소파에 누워 생활하기 마련인데, 이 집에선 그런 습관을 탈피해보려 노력했어요. 저는 주로 거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베란다에서 노을을 보며 시간을 보내요. 이사 전부터 좀 더 넓은 집에 가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친구들을 초대해 놀고 싶다는 바람이 있던지라, 이사할 때 대뜸 스피커부터 사고 봤죠. 
거실은 사람들이 뭘 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상상을 시작으로 구상한 공간이기 때문에, 스피커를 기준으로 공간을 꾸몄어요. 이사 올 때 야심 차게 산 JBL 4344 빈티지 스피커의 캘리포니아 블루 색상에 맞는 분위기로 모든 소품과 가구를 골랐어요. 비초에 모듈 수납장도 바이닐을 많이 꽂을 수 있는 구조로 주문했고요. 미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길 만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도 반영했어요. 서핑보드 느낌이 나는 임스 일립티컬 테이블, 직구로 공수한 천장의 팬에서 캘리포니아 분위기가 물씬 풍기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주방이에요. 제 취향대로 화이트와 우드 톤으로 깔끔하게 꾸몄는데, 여기서 매일 과일수도 만들고, 요리하면서 바깥 풍경도 보고, 음악도 듣고, 꽃도 꽂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힐링돼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가족을 챙기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어요. 
 
호스트 공간과 게스트 공간도 철저히 분리된 것 같아요. 게스트 전용 화장실도 있더라고요.
이 집은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해 ‘호스피탈리티’ 문화가 반영된 건지, 화장실도 3개나 있어요. 호스트와 게스트의 공간이 섞이지 않게 철저히 공과 사가 구분되는 구조예요. 사실 게스트 화장실이 우리 집 화장실 중 인테리어 비용이 제일 많이 들어갔어요. 하하. 손님들은 놀러 와서 손 한 번 씻는 게 그만이지만, 세면대 높이나 수도꼭지 모양, 롤타월 위치까지 손님들의 행동반경을 계산해 꾸몄죠. 남을 배려하는 공간이자 내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랄까요. 원래 나 혼자 쓰는 것보다는 공유하는 곳에 취향을 담거나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화장실이나 의자, 꽃병, 찻잔을 보면 굳이 말 안 해도 집주인의 취향이 느껴지잖아요. 우리 집은 놀러 오는 사람이 예쁜 풍경을 보며 위안을 얻고 가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는 마음에 예쁜 꽃병에 꽃도 항상 꽂아둬요.  
 
이곳은 세 가족의 집이기도 한 동시에 ‘사람이 모이는’ 아고라 같아요. 이 공간에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고 싶어요? 
주위에 베이킹, 커피, 요가, 필라테스, 꽃 스타일링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가 많아요. 항상 저를 중심으로 모이는 편이라, 집을 매개로 취미와 공간이 만나는 흥미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어요. 지금도 지인들과 함께 선셋 요가나 꽃꽂이 같은 소규모 모임을 종종 진행해요.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계기도 됐을 것 같아요. 
일을 절대로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신조가 있었는데,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집이 홈 오피스가 되고, 쉬는 공간도 되고, 노는 공간도 됐어요. 예전에는 집은 그저 쉬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경계가 없으니까 집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이 집이 서향집이라 받은 영향도 있어요. 저녁에 노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 노을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는 습관이 생겼거든요. ‘오늘 하늘이 멋있는데, 우리 집에서 보면 더 멋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현관문을 들어오기 전까지 되게 두근거리더라고요. 자연스레 가족과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었어요. 집에 오는 길이 설레요.

Keyword

Credit

  • Editor 하예진 / 류진(freelancer editor)
  • Design 안정은
  • Photo by 이혜련 / 홍경표 / 최별(오느른)
  • 기사등록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