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2025 젠지들의 연애법, 생각보다 더 오글거린다?

유치하고 오글거릴수록 좋다! 젠지는 아날로그 연애 방식에 빠졌으니까!

프로필 by 김미나 2025.03.22

연인에게 푸-욱 빠져 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게 요즘 연애 트렌드다. 쿨하게 연애하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셀레나 고메즈와 베니 블랑코의 사랑스러운 약혼 발표나, 테일러 스위프트와 트래비스 켈시의 거침없는 스킨십, 파리 에펠탑 앞에서 포착된 두아 리파와 칼럼 터너의 로맨틱한 데이트 모습, 찰리 XCX가 <Brat> 앨범에서 약혼자 조지 다니엘의 존재를 드러낸 것만 봐도 그렇다. 스타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같은 비연예인도 이제는 점점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연애를 하고 있다. 데이팅 앱 ‘범블(Bumble)’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57%의 응답자가 사랑에 있어 사려 깊은 면이나 열정, 배려심, 애정과 같은 자질을 중요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로맨틱한 사람이라 자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Z세대는 특히 더 사랑에 적극적이다. 재미있는 점은 해당 설문조사에서 Z세대 응답자의 38%가 깜짝 선물, 이마에 키스하기, 손 편지 등 고전적인 이벤트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여성 응답자 5명 중 3명(60%)은 자신이 진심을 다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러버 걸’ 타입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진부한 사랑 표현으로 여기던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함께 춤추기, 꽃다발 선물하기, 손 편지 쓰기 등. 사실 두 세대 전만 해도 연애할 때 일반적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러한 애정 표현은 구시대적이거나 촌스러운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장미 열두 송이를 앞에 두고 저녁 식사를 하는 대신, 페이스북 연애 상태를 ‘연애 중’으로 바꾸는 것이 새로운 ‘힙’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습적인 연애와 결혼에 지친 많은 여성이 비혼을 선택했고, 연애를 하고 싶으면 데이팅 앱을 통해 새로운 상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이 쉽고 편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커플’이 된다는 것은 그리 멋있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대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쿨한 연애’나 ‘밀당’보다는 적극적인 연애 태도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것. 요즘 세대는 애정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손 편지나 깜짝 선물 등 자칫 유치하다고 생각될 법한 이벤트를 재밌어한다. 게다가 공공장소에서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고 이를 SNS에 전시하기도 한다. 연애 트렌드도 패션처럼 돌고 도는 것일까? 아니라면, 왜 요즘 세대는 과거 연애 방식이 ‘힙’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실은 이렇다!

사실 우리는 썸처럼 ‘사귀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관계’를 말하는 ‘시츄에이션십(Situationship)’이나, ‘성관계만 즐기는 사이’를 의미하는 ‘FWB(Friends with Benefit)’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여러 패턴의 유사 연애 관계를 경험한 세대다. 심지어 최근에는 다자 연애, 섹스 파티, 성적 실험의 시대까지 열렸으니 두말하면 입 아픈 정도. 실제로 <코스모폴리탄 UK>가 최근 실시한 섹스 관련 설문조사의 응답자 중 25%는 당사자 간 합의가 됐다면 다자간 연애(Polyamory)에 열려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우리 중 대다수는 여전히 마음 한편에 관습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폴리아모리에 열려 있는 25% 역시 유의미한 수치지만 응답자의 84%는 여전히 독점적인 일대일 연애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사랑과 성, 관계 철학을 가르치는 강사이자 ‘온라인에서 윤리적 연애’ 연구 네트워크를 공동으로 이끌고 있는 루크 브러닝 박사는 지난 15년 동안 연애 추세가 변해온 것에 대한 직접적인 반작용으로 전통과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그는 <코스모폴리탄 UK>에서 “온라인 데이트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라고 인터뷰했다. “연애할 땐 자신감 넘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연애를 하는 이유는 연애가 자기만족감을 주는 동시에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서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상대방과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압박감이 있다. 그 압박감의 중심에는 너무 매달려서는 안 된다, 즉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정의하던 ‘건강하고 건전한 연애’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이고, 의존할 수 있는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오글거리는 연애가 부활했다는 건, 사람들이 이런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는 의미가 아닐까? 브러닝 박사는 “어쩌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예전 연애관에서 벗어나, 안심이 되는 로맨틱한 행동들을 찾게 된 것일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많은 20~30대에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시절의 연애 방식은 낯설다. 게다가 요즘은 데이팅 앱으로 일생일대의 사랑을 만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나를 좋아해주고, 내가 좋아할 만한 누군가를 찾기 위해 온갖 모르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열람하고, 하루에 몇십 개의 사진을 스와이프하는 것으로 로맨틱한 감성이 충족되지는 않는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일반적이었던 연애 방식, 두 사람이 데이팅 앱이나 주선자 같은 중간 다리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은 요즘 세대에게 꿈이자 영화 같은 일이 됐고, 옛날의 연애 방식을 연애 판타지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데이팅 앱 ‘힌지(Hinge)’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30% 더 높은 비율로 밀레니얼 세대보다 Z세대가 세상에 단 한 명의 소울메이트가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를 로맨틱한 이상주의자로 생각하는 비율 역시 밀레니얼 세대에 비해 39% 더 높았다. 이 결과는 미국 젊은 여성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사라 J. 마스의 판타지 로맨스 소설 <A Court of Thorns and Roses(가시와 장미의 정원)>의 인기와도 부합한다. 따분하고 시시한 데이팅 앱 세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싶다는 여성 독자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로맨스 소설에 수많은 여성 독자가 빠져드는 건, 그만큼 소설처럼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지표다. 데이팅 앱 세대 두 여성, 수진(34세)과 주현(24세) 역시 자신의 연애 스타일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다. 수진의 경우, 과거에는 오글거린다고 느꼈을 만한 연애 행동들을 기꺼이 하게 되면서 파트너와의 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 데이트를 할 때 거실을 누비며 춤을 추죠. 좋아하는 곡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이 플레이리스트를 위해 우리의 이니셜이 들어간 앨범 커버 아트도 만들었어요.” 한편 주현은 “남자 친구와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을 점점 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과는 하지 않을 로맨틱한 애정 표현이 그와의 관계를 다른 이들과의 관계와 구분 짓는 특별한 행동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짧은 연애만 해오다 최근 장기 연애의 기준인 ‘3년’을 통과한 소연(28세)은 이전 연애 때는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던 커플 룩을 지금의 남자 친구와 맞췄다. “옷뿐만 아니라 반지, 팔찌, 신발, 파자마, 폰 케이스 등 자주 쓰는 아이템들을 ‘커플템’으로 맞췄죠. 예전에는 다른 커플들이 하는 걸 보고 ‘진짜 좋아서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었는데, 진짜 좋아서 하는 게 맞더라고요. 커플 아이템을 쓰면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보여주기식은 아닐까?

로맨틱한 순간들은 주로 화면 밖, 실제 세상에서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래야만 진정한 로맨스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타인의 로맨틱한 순간들을 온라인에서 보고, 공유한다. 그리고 그런 콘텐츠들은 늘 흥행한다. 틱톡 셀러브리티 중 다수가 ‘커플 인플루언서’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Nathan and Grace’(@nathanandgrace), ‘Rosie and Harry’(@itsrosieandharry), ‘Liv & Tom’(@itslivandtom)과 같은 인기 있는 커플 인플루언서들은 대체로 공동 계정을 통해 자신들의 연애 모습을 온라인에 공유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6~7년간 연애 프로그램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으며, 현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예능인 <솔로지옥> <환승연애> <커플팰리스>도 모두 연애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런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맺어진 커플들이 방영 이후에도 SNS에서 예쁘게 연애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MZ에게 가장 큰 화두는 ‘연애’ 그 자체라는 것을.

하지만 SNS에 연애하는 모습을 게시하는 것이 단지 보여주기 위함이라면 그 연애의 결말은 좋지 않을 것이다. 브러닝 박사는 “상대방이 실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상대방이 이런 로맨틱한 행동들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로맨틱한 행동들을 하려는 이유가 개인적으로 상대방을 알아가고 싶고 또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어서인지, 혹은 정확히 그것을 피하기 위해 로맨틱한 행동들로 대신하려는 것인지” 말이다. 상아(25세)는 지금의 파트너를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알콩달콩한 면을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영화나 SNS에서 보는 로맨틱한 행동들이 오그라들고 민망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후에는 저 역시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됐고, 저도 그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모두가 로맨틱한 성향을 가진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로맨스를 탐구하고, 민망하다고 느껴 하지 못했던 애정 표현들을 마음 가는 대로 해본다면, 이는 당신의 연애를 특별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혀 짧은 말투나 애교, 혹은 과도한 스킨십이 애정 표현의 방식이라면 그냥 한번 해보는 거다. 인생을 함께하기로 선택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쿨한 척할 필요도 없다. 연애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소통’과 ‘솔직함’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자. 좀 오그라들면 어떤가. 그게 나와 우리 커플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그거면 된 거다.

— writer 앨리스 포터(코스모폴리탄 UK 에디터)

Credit

  • Editor 김미나
  • Illustration By 민지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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