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삐빅! 환승입니다

결국 모든 연애는 다 환승이다.

프로필 by 김미나 2024.05.06
최근 시끄러웠던 연예계 환승 연애 소식이 연이어 SNS 피드를 장식했다. 내막은 이러했다. 배우 류준열과 한소희가 사귀게 됐는데, 이전 연인과의 결별 시기와 한소희와의 새 교제 시기가 맞물려 류준열이 이른 바 ‘환승 연애’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에 따라 당사자들 간의 저격과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두 사람의 결별로 이 사건은 2주 만에 허무한 막을 내렸다. 환승 연애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건을 관전하다 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환승인가? 주변인들에게 환승의 기준에 대해 물었더니, 각양각색의 답이 돌아왔다. “사귀는 도중 딴 사람을 걸치면 환승이지”, “들키면 바람이고 안 들키면 환승!”, “전 애인과 헤어졌어도 새로 만난 사람이 헤어지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환승일 가능성이 높지 않아?“, “헤어지고 텀이 한 달도 안 되면 환승이라고 봄”….

저마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헷갈리기 시작했다. 도중에 갈아타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헤어진 관계도 그 기간이나 정도에 따라 환승 연애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A는 X와 2년 넘게 연애했다. 같은 이유로 다툼이 반복되던 어느 날, 관계가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한 둘은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A는 처음 일주일은 힘들고, 2주 차가 되니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다. 3주 차에는 어김없이 또 무너진다. 괜찮다가도 괜찮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한 달 반 정도 지나니 이제는 눈물도 안 나고 제법 멀쩡해진 것도 같다. 이제야 비로소 예전의 나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어느 금요일 밤,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새로운 데이팅 앱에 대해 떠드는 걸 가만히 듣던 A는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이 말한 데이팅 앱을 조심스레 깔아본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도 괜찮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손은 바삐 움직인다. 상대의 프로필을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며 걱정과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 딩동- 매칭이 됐다는 알림 소리가 울린다. A는 프로필이 괜찮아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과 데이트를 즐기다, 손이 가장 예쁘고 목소리가 좋은 K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한다. X와 헤어지고 두 달이 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X와는 확실하게 이별했으므로 A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혼란스럽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환승 연애를 한 것 같은 묘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X와의 연애가 끝나고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기까지의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한 탓이다. K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A지만, 불쑥불쑥 X가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헤어질 만하니까 헤어진 것인데, X는 추억 필터를 끼고 한층 강력해진 형태로 A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K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면서도 때때로 A는 X를 떠올린다. 그런 날이면 K에 대한 죄책감으로 밤잠을 설친다. ‘깨끗하게 정리됐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A는 혼란스럽다. 도대체 사람의 감정이란 뭘까?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J와의 뜨거웠던 연애를 끝내고 최근 9살 어린 연하남 S와 연애를 시작한 친구 W는 은근슬쩍 고백했다. “마치 나는 아직도 J를 만나는데 S와 바람피우는 것 같은 기분이야.”

표면적으로는 9살 어린 연하남에게 완벽하게 환승한 것처럼 보였지만, W의 속사정은 달랐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도 이전 사람을 계속해서 떠올리는 것에 대해 혼란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던 것. A와 W의 경우 환승 연애라고 볼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헤어진 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환승이라고 보긴 어려우나, A와 W는 자신이 환승 연애를 한 것만 같은 감정을 느낀다. A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이별의 애도 기간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W의 경우 이전 관계에 대한 미련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두 관계가 중첩된 탓에 생긴 감정의 혼란이다. 이전 사람에 대한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혼란스러움은 가중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고 이내 덮인다. 헤어지는 일이란 작가 이석원의 말마따나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일”일 뿐이니까. 만나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지금 연애가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 새로운 사람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 어떤 사람들은 환승을 생각한다. 특히 이별이란 감정에 취약하고, 외로움을 쉽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환승 연애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저 스무드하게 이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연애에서만큼은 확실하게 끝맺음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이전 관계에 대한 배려이자,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물론 예외는 있다). 모두가 이별의 애도 기간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음 연애로 넘어가기 전까지 최소한의 유예 기간을 갖는 것이 좋다. 이별의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다시 혼자가 되는 연습을 해야 건강한 상태에서 다음 사람으로 완벽하게 환승할 수 있다(우리는 이미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만났다가 망한 연애를 너무 많이 지켜보지 않았나?). 그렇게 보면 이별의 애도 기간이란 단순히 이전 관계를 위한 애도뿐 아니라, 혼자인 ‘나’를 잘 돌보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이 애도 기간을 통해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성숙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환승 연애라는 말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연애의 생태계에선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단, 건강한 연애를 위해선 이전 관계를 확실하게 매듭짓고 다음 연애로 넘어가야 한다.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건, 그저 바람 내지는 양다리일 뿐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람을 거쳐갈 것이다. A에게서 B에게로, B에게서 C에게로. 어떤 환승은 길고, 어떤 환승은 짧다. 결국 모든 연애는 다 환승이다.

Writer_이봄
낯선 사람과의 산책을 좋아한다. <슈어> <컨셉진> <어반라이크> 등 매거진을 거쳐 현재 부동산 개발 회사에서 인터널 브랜딩 콘텐츠를 만든다.

Credit

  • Editor 김미나
  • Photo by 이호현
  • Writer 이봄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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