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귀여운게 최고! 키덜트 패션의 세계

내 가방은 세일러문, 네 부츠는 아톰. 이런 걸 어떻게 착용하냐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이런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인싸템’! 패션 월드는 왜 추억 속 만화를 현실로 소환했을까?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3.04.04
 
지난 몇 달 사이 수많은 패션 하우스부터 백화점까지 모두 침투한 이것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세일러문> <달려라 하니> <슬램덩크> <그렘린> <스폰지밥>부터 일명 ‘아톰 슈즈’인 미스치프의 빅 레드 부츠, JW 앤더슨의 개구리 클로그까지. 럭셔리함을 뽐내던 쇼윈도가 추억의 캐릭터로 채워졌다. 매일같이 더 귀엽고, 더 재미있어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패션 브랜드들. 마치 얼마 전까지 흠모하던 연상을 뒤로하고 연하남에게 ‘꽂힌’ 친구를 보는 듯 낯설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키덜트 유행은 처음이 아닐진대 올해의 그것은 뭔가 다르다. 이전의 ‘키덜트 룩’이 천진한 아이 같은 스타일에 집중했다면, 현재 트렌드는 특정 작품의 캐릭터, 작품을 활용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패션 브랜드가 이렇게까지 애니메이션 친화적인 적이 있었던가? 2D로만 존재하던 아톰 신발, 세일러문 부츠 같은 것들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체화됐다.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된 것. 로에베의 가죽공예 기술로 가방에 재현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한 장면, JW 앤더슨의 점퍼에 큼직하게 프린트된 ‘하니’의 얼굴, GCDS 니트웨어 곳곳에 나타난 <스폰지밥> 캐릭터처럼!
콧대 높고 진지하던 백화점과 편집숍에서 내 어린 시절의 최애 캐릭터를 만나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수년 만에 중학교 단짝 친구를 만난 것처럼 당시의 기억을 불러오는 건 물론이다. 추억 소환! 그 순간 이 신발, 이 가방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내게 의미 있는 순간을 간직하는 무언가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게다가 어릴 때 엄마는 안 사줬어도, 지금의 나는 ‘내돈내산’이 가능한 성인이잖아? 트렌드보다 강력한 추억의 힘에 다 큰 어른이들의 지갑이 줄지어 열린다. ‘이 캐릭터가 내 최애였지’ 떠올리면서! 추억의 힘이 그렇게 강력하냐고? 대답은 YES!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팬데믹 이후 시들했던 극장가를 북적이게 만들더니, 더현대 서울과 대구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오픈런 행렬까지 만들었다는 사실. 게다가 이번 시즌 주인공이 된 작품들과 함께 성장한 세대는 구매력 빵빵한 30~40대가 됐고, 레트로 트렌드에 관심 많은 20대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커피 한 잔, 배달 음식 한 번… 소비를 꽁꽁 걸어 잠그는 불경기에도 가슴 설레는 ‘팬심’, ‘덕심’만큼은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파한, 패션 브랜드의 영리함이란!
 

음~ 이 맛이야, 패션 MSG

천연 재료로 만든 집 떡볶이에도 MSG 한 꼬집이 필요하듯, 패션에도 어떤 ‘킥’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유튜브에서 섬네일로 ‘어그로’ 끄는 콘텐츠가 결국 조회 수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셀렙과 일반인의 경계 없이,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을 SNS로 ‘셀프 바이럴’하는 시대. 이런 때 ‘만찢템’은 흥행이 눈앞에 그려지는 확실한 선택지다. 몇 분 만에 완판, 리셀가 폭등, 그것도 모자라 ‘착용하고 사진 찍는 데 20달러’ 같은 호객 행위까지 이어지는 미스치프의 더 레드 부츠를 보라. 착용하는 순간 시선 집중, 어떻게 찍어도 포인트가 되는 마법 같은 효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신발 보소ㅋㅋㅋ @친구” 태그를, “신발 정보 좀요” 댓글을 불러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 이펙트. 미스치프의 빅 레드 부츠가 대히트를 기록하자 레드윙에서도 ‘마리오 부츠’를 선보였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극장 개봉을 기념한 것이라고! SNS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싶다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용기와 키덜트 아이템이다. 걸음걸음 사람들이 쳐다보고, 단 한 번 신은 부츠가 벗겨지지 않아 몇 명이 달려들어 벗겨야 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이 일반적인 아이템으로는 얻기 힘든 콘텐츠가 된다. 그뿐인가? 국내외 패션 뉴스 계정에 소개(또는 ‘박제’)될 가능성도 한껏 높아질 것이니.
 
 

귀여운 것의 치유력

알록달록 귀여운 캐릭터들은 곁에 두는 것만으로 큰 기쁨을 준다. 자기 전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을 보고, 석촌호수의 거대 러버덕과 젤리곰을 찾아 ‘힐링’하던 사람들을 보라. 지난 몇 년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불확실성의 시대를 겪으며 지친 마음에 이보다 즉각적이고 확실한 위안이 또 있을까? 이제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귀여운 것들을 찾아 향유한다. 뉴진스가 다섯 토끼가 돼 OMG를 추고, 제니의 샤넬 백, 지수의 디올 백에 고양이 인형 키 링이 달랑거린다. 아이돌뿐인가? <달려라 하니> 저지를 입은 수지, 가방에 인형 키 링을 즐겨 다는 차정원, 심슨 티셔츠를 입고 파리 출국길에 오른 이동휘처럼 배우들의 패션에도 장난스러운 캐릭터 아이템이 침투해 있다. 귀여운 것, 추억의 캐릭터 유행이 반가운 점 중 하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작은 스티커부터 토트백, 코트에 이르기까지 선택지가 넓어져 특유의 ‘힐링’ 효과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작고 간단한 것으로 ‘귀여움 수집’을 시작하다 보면 점점 과감한 아이템으로 발전하곤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조카 선물이 됐을 인형 가방 같은 것들이 이제는 나를 위한 아이템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도 뭐 어떤가? 내가 즐거우면 되는걸. 바라보고, 착용했을 때 미소가 지어지고, 즐거운 기억을 꺼내게 되는 것으로 키덜트 아이템은 제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걸!
 

Credit

  • Freelance Editor 이영우
  • photo by Spotlight/ instagram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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