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애정과 땀과 눈물로 문화재를 환수하고 보존해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영웅들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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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애정과 땀과 눈물로 문화재를 환수하고 보존해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영웅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해외 환수문화재 특별전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던 우리의 문화재를 각고의 노력 끝에 환수해 선보이는 전시다. 무한한 애정과 땀과 눈물로 문화재를 환수하고 보존해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영웅들을 만났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09.05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국외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그간의 환수 문화재 40여 점을 전시하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전이 열리고 있어요. 저는 평일 오전에 방문했는데도 관람객이 꽤 많아 놀랐어요.
남은실(이하 ‘은실’) BTS의 RM이 전시를 방문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라고요.
정자영(이하 ‘자영’) 겸재 정선 화첩을 찍어 갔어요. 워낙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잖아요.
은실 SNS 바이럴을 통해 방문하는 관람객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문화재마다 환수 과정에 대한 짤막한 스토리를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문화재 환수는 어떤 절차를 거치나요?
안민희(이하 ‘민희’) 저는 실태조사부에서 일하고 있어요. 해외 박물관 등의 기관에 연락해 소장된 한국 문화재를 전수 조사해요. 이 과정에서 보존 처리가 필요한 문화재가 발견되면 저희 쪽에서 재단의 보존 처리 지원 사업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해외 기관에서 보존 처리 지원이 들어왔는데 저희가 아직 파악을 못 한 문화재가 있다면 추가적으로 정보를 얻기도 해요.
은실 저는 유통조사부에서 근무하는데, 문화재가 하나의 재화처럼 고미술상이나 경매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늘 어떤 문화재들이 시장에 나와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개인 소장자나 고미술상과 긴밀히 연결고리를 유지해 한국에 꼭 돌아와야 할 주요 문화재나, 불법 반출 혹은 도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하는 업무를 담당해요.
최수민(이하 ‘수민’) 저는 유통조사부에서 온라인 모니터링을 주로 해요. 상시로 어떤 문화재가 나왔는지 살피고 유관 기관에 전달하고요. 재단이 설립된 지 이제 10년째다 보니, 예전에 실태 조사를 했던 기관이라든가, 참여했던 경매사 등을 통해 쌓인 네트워크가 있거든요.
 
해외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문화재를 발견한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없군요.(웃음) 애초에 재단이 설립된 배경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자영 사실 정부가 중심이 돼 국외 문화재 환수를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이유로 갈등이 첨예해지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민간단체에만 환수나 국외 문화재 활용을 맡기기에는 인력이나 재정 문제가 있죠. 그래서 전반적인 사업을 기동성 있게 수행하도록 문화재청에서 특수 법인을 만들게 됐어요.
민희 환수가 반드시 국가 대상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거든요. 원소유주가 개인인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죠.
 
환수가 주요 목적이지만, 해외에 있는 문화재라고 해서 무조건 반환하는 작업만 하는 건 아니라고요.
자영 저는 재단이 생기기 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라는 기관에서 국외 문화재를 조사하는 업무를 했어요. 해외 소장고에 방치된 문화재, 전시를 하고 싶은데 상태가 좋지 않아 보존 처리가 필요한 문화재들에 대해 신청을 받아 내부 전문가들 심사를 거친 뒤에 재정적 지원을 해요. 해외에 있는 문화재들은 당시 한국에서 어떤 기술을 보유했으며 무엇이 유행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죠. 해당 업무가 재단이 생기면서 함께 넘어오게 됐어요.
 
국내로 문화재를 환수할 때는 매입, 기증, 영구 대여 같은 다양한 방식을 거치죠. 어떤 기준을 정해 진행되는지 궁금해요.
은실 가장 중요한 건 이 문화재가 어떻게 한국 밖으로 나가게 됐는지 과정을 파악하는 거예요. 애초에 한국에서 나갈 때 불법 반출된 경우 저희가 유관 기관과 함께 경매 중지를 요청시키기도 하고, 해외에 수사 공조를 요청해 환수하기도 합니다. 반면 반출된 방식에 전혀 문제가 없고 현 소장자도 구입 등의 적법한 방식으로 손에 넣게 된 문화재라면 저희도 마찬가지로 적법한 방식, 즉 구입 혹은 그쪽에 선의로 기증을 제안하기도 하죠
민희 일반적으로 약탈 문화재라든지 도난을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외교적인 교류를 위해 선물로 나간 문화재라든지, 아니면 해외 수집가가 한국 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아 직접 사 갔다든지 하는 경우도 많아요.
 
‘기증’된 문화재도 있지만 ‘영구 대여’한 문화재도 있어요. 한국에 돌아온 건 똑같은데, 뉘앙스가 좀 다르죠.
은실 영구 대여 같은 경우 소유권은 여전히 해외 소장 기관 쪽에 남는 거죠. 아무래도 해당 기관의 희망 사항이 많이 반영되는 부분이에요.
민희 기증 외에 기탁이라는 개념도 있거든요. 개인이 보관하기는 어렵고, 박물관 등에서 활용되면 좋겠으니 일종의 영구 대여 형태로 박물관이나 소장처에 넘기는 거죠. 

은실 기탁을 하다가 아예 기증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국내 사례지만 최근에 ‘세한도’가 그렇게 환수됐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은실 글쎄요. 저는 컬렉션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웃음)
자영 ‘세한도’가 추사 김정희의 유명한 작품이거든요. 소장자가 대를 이어 간직해 오다가 조건 없이 기증한 거라고 알고 있어요.
 
요즘 환수 문화재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면서요. 일찍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국가들은 세계적인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을 텐데요.
민희 재단도 초반에는 ‘환수 기관’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해외에서 조사 자체도 꺼려했거든요. ‘수장고에서 뭔가를 털어가려 한다’는 막연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해외 박물관 쪽에서 먼저 조사를 요청하기도 해요. 미국이나 유럽,  특히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나치즘이 큰 이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문화재 출처에 대한 연구를 해요.
자영 2016년까지는 국제환수전문가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어요.  그리스,  터키,  한국,  중국,  캄보디아 등 유물이 해외로 많이 유출된 국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죠.
 
전시에서 해외 문화재 소장 현황표를 보니, 아무래도 국내 문화재는 압도적으로 일본에 많이 반출돼 있더라고요. 역시 식민 지배의 영향일까요?
민희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일본과는 교류가 워낙 많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고려 혹은 백제·신라 시대부터 넘어간 문화재도 많을 수 있거든요. 수집의 역사가 너무 오래된 문화재는 사실상 저희가 소유권을 청구하기도 어려울 수 있죠. 정확한 경로를 파악하지 않는 이상은요.
 
혹시 최근 환수한 문화재 중 기억에 남는 사연을 가진 것이 있나요?
민희 아카이빙 작업을 하던 도중,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실태 조사를 한 적 있어요. 거기에 묘지석이 하나 소장돼 있거든요. 묘지석이라는 게 원래 무덤 안에 같이 매장하는 문화재고 소유주가 너무 분명한 거라 의심스러웠죠. 묘지는 시흥시 향토 문화재로 지정된 묘소 안에 있었는데, 문화재 지정을 해제한 기록이 있고 와중에 묘지석이 분실된 것으로 보이더라고요. 박물관 입장에서는 기증받은 건데 실태 조사를 요청하면 난감할 수 있어 조심스러웠어요. 결국 원소유주의 간절한 반환 요청을 계속 전달하면서 거의 2년 만에 기증이 성사됐어요.
 
문화재 같은 경우 그 중요도나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나요? 이번 전시에는 독일인 신부가 쓴 양봉 기술 책도 있더라고요.
민희 심미적 가치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양봉 기술을 도입해 전파했다는 역사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거죠.
은실 희소성이 높은 것들도 주요 문화재가 되고요. 예를 들어 조선 후기 문화재는 많이 남아 있는 편이지만, 조선 전기만 가도 회화 작품은 국내에 별로 남아 있지 않아요.
 
일종의 멸종위기종 같은 거군요. 국외재단에서 일하는 것도 흔한 직업은 아니에요.(웃음) 네 분은 문화재의 어떤 점이 좋아 이 일을 하고 있나요?
자영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다녔는데, 한국국제교류재단이라는 곳을 통해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파악하는 일을 한 적 있어요. 1999년인가 2000년대 초반인가 그랬는데, 해외 유수 박물관에 중국실이나 일본실은 엄청 크고 컬렉션도 어마어마한데, 한국실은 엄청 작거나 코너처럼 돼 있든가, 혹은 아예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박물관과 협력해 대중에게 문화재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죠.
수민 부모님이 사학과 캠퍼스 커플이셨어요. 집안 내력인 셈인데요.(웃음)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답사를 자주 다니면서  제가 발 딛고 있는 곳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저 역시 사학을 전공했고요. 문화재를 한국에 들여와 수장고에서 포장을 처음 여는 순간 전율을 느껴요. 가끔 전문가 분들이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유물을 연구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씀해주실 때 보람을 느끼고요.
민희 옛날의 문화를 보는 매개체로서 문화재를 존중해요. 요즘 나오는 텀블러가 다 엇비슷하게 생겼잖아요? 그 당대에도 나름의 유행하던 찻잔이나 그릇, 항아리 모양이 다 달랐어요. 청화백자가 많이 나오는 시기가 있고, 나전이 나오는 시기가 있고, 깨끗한 백자가 나오는 시기도 있고요. ‘사람 사는 게 많이 다르지 않다’ 생각해요.
수민 생활용품은 다 똑같이 썼지만, 양반가에서 쓰던 거랑 서민이 모방해 만들어 쓰던 거랑 차이가 크거든요. 예를 들면 비슷한 문양인데 청자로도 있고 분청사기로도 있다거나요. 유행을 좇고 싶지만 그럴 형편은 안 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도 있었던 거죠.

민희 좀 더 생각을 확장하면, 요즘 저희가 쓰는 흔한 생활용품도 100년 뒤에는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죠. 코로나19 시기에 다양한 형태로 출시된 마스크가 중요한 사료가 될 수도 있을 거고요.
자영  저는 부동산 문화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어요.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대표적이죠. 워싱턴 D.C.에 있는데, 조선 말기에 고종이 미국과 손을 잡고 외교활동을 하기 위해 매입한 첫 번째 해외 대사관이죠. 그 건물에 얽힌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아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이 나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혹시 환수 문화재 관련 영화나 소설 등 대중문화 중에 인상 깊게 본 게 있나요?
자영 〈우먼 인 골드〉 〈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이라는 영화가 나치 시대 약탈품을 환수하는 과정에 대한 얘기였죠.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보고 관람객이 어떤 걸 느꼈으면 하나요?
은실 사실 ‘환수’라고 하면 사람들이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등 너무 어두운 기억만 떠올릴까 봐 걱정했어요. 꼭 ‘돌려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나갔고, 다양한 방식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그 여정을 체험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저희 일도 탄력을 받으니까요.

자영 앞으로는 기부도 좀 해주시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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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예린
    photo by 송시영(인물)
    photo by 국외소재문화재재단(나전국화넝쿨무늬합/ 앙부일구)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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