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속에 납작하게 죽어 있던 기후 위기가 살아났다. “북극곰이 죽어가요”, “지구가 울고 있어요” 같은 책 속 문구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지구온난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산불, 가뭄, 폭우 등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위장환경주의’가 시동을 걸었다. ‘그린워싱(Greenwashing)’, 말 그대로 녹색으로 씻어낸다는 뜻이다. 가짜 친환경 홍보로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환경에 이로운 것처럼 포장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말한다. 1980년 제이 웨스터벨트가 이 단어를 처음 제시했을 때만 해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린워싱이 해를 거듭할수록 이토록 교묘하게 진화하리란 것을. 기업들이 외치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코 프렌들리’, ‘동물 복지’는 흐린 눈으로 언뜻 보면 마치 초록빛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친환경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광고 기업 크리테오의 한국 지사가 2019년 4분기에 진행한 설문 결과를 보면 소비자 2명 중 한 명은 가격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사겠다고 응답했다. 친환경 산업의 일환인 비건&클린 뷰티 시장은 세계적으로 매년 6.3%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2020년 17조 규모이던 시장은 2025년까지 23조 규모가 될 전망이다. 자본주의 때문에 환경이 망가졌는데 환경으로 또다시 돈벌이를 한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그린워싱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진짜 친환경’과 ‘짝퉁 친환경’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위장환경주의 제품 가운데 ‘찐환경’ 제품을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 경우는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음 3가지를 유념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제품 광고에 동물이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일단 경각심을 갖자. 기후 위기 세상에서 동물이 웃을 리 없다. 마치 돼지고기 파는 집에서 웃는 돼지 마스코트를 간판에 그려놓는 것 같은 잔인한 행위가 만연하다. 세계적인 탄산음료 브랜드 C사의 광고에는 새하얀 북극곰이 꼬물거리는 새끼와 함께 빙하 위를 오간다. C사는 “World Without Waste(쓰레기 없는 세상)”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거나 재활용할 거라고 매해 약속한다. 하지만 C사가 배출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2020년 기준 연간 290만 톤으로, 세계 페트병 생산량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매출을 자랑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쓰레기 배출량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기억할 것은, 당신이 ‘라벨 없는 C사의 탄산음료’를 마셨다면 다른 탄산음료를 샀을 때보다 라벨 한 장 덜 버린 것일 뿐, 여전히 당신은 500년 동안 썩지 않을 페트병을 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참치캔이다. 수많은 참치캔에는 종류별로 ‘Dolphin Safe(돌고래가 안전합니다)’ 마크가 박혀 있다. 그런데 돌고래가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촘촘한 어망으로 수만 마리의 어류를 끌어올리면서, 어떻게 ‘돌고래가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한 어선에서는 참치 8마리를 잡는 과정에서 돌고래 45마리가 잡혀 죽었다. 그 어선을 소유한 참치캔 회사 로고에는 건강한 돌고래 모습과 함께 ‘Dolphin Safe’ 마크가 있다(이런 건 블루워싱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동물의 행복과 얼굴,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 의심 가는 기업이 있다면 기업 이름 뒤에 ‘그린워싱’을 붙여 검색해보자. 대체로 당신이 마음 놓을 수 있는 동물 마스코트는 비건&크루얼티 프리 인증원에서 주로 쓰는 ‘Leaping Bunny’라는 토끼 마스코트뿐이다.
「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와 로고가 있다?
」 많은 위장환경주의 상품 뒷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나 영어와 숫자 조합, 혹은 그마저도 아닌 특정 기관의 인증표가 마패처럼 붙어 있다. ‘뭔진 모르겠지만 전문적인 용어니까 안심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할 뻔했다면,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많은 ‘친환경 산업’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친환경 가구다. 가구는 가공된 목재나 부품의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에 따라 친환경 자재 등급이 구분된다. 포름알데히드는 1급 발암물질이다. 친환경 목재 등급 중 E1은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해 전혀 ‘친환경’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많은 가구 회사에서는 ‘E1 등급을 받은 친환경 가구’라는 모순적인 조합으로 마케팅 문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그저 등급 분류 기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이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 없이 숫자나 영어, 전문 용어 등으로 ‘친환경’이라고 주장하는 회사라면 해당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환경부의 ‘환경표지제도’, ‘환경부 인증마크’, ‘환경성적마크’, ‘탄소발자국 인증마크’, ‘에너지 절약마크’, 농림축산식품부의 ‘유기농’, ‘무농약’, ‘무항생제’, ‘동물복지’ 마크를 사용한다. 나름대로 깐깐하게 살펴보는 소비자였다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개별 마크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친환경에 기여하는지는 마크만 보고선 속 시원한 정답을 찾을 수 없다. 휴대폰 화면을 켜고 검색할 수밖에. 공식 인증 마크의 해석마저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니 ‘그럼 어쩌라는 거야’ 하며 화도 나고 허무하기도 할 것이다. 그 허무감과 분노를 싹싹 모아 공정거래위원회로 향하자. ‘그린워싱’은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 허위·과장·기만 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에 필수적인 정보 제공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소비자의 권리를 다하면 된다.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두자.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일회용품은 없다. 어느 기업이 만든 생분해 봉투 겉면에는 ‘Goodbye! Plastic!’ 하고 속 시원히 안녕을 고한다. 광고에선 생분해 친환경 비닐봉지를 마음 편히 구매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생분해 제품이 실제로 ‘생분해’되는지를 따지기 전에, ‘친환경’과 ‘일회용품’ 이 2가지가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인지 살펴보자. 백번 양보해 ‘친환경 성분’으로 만든 비닐봉지는 딱 한 번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봉지’로서 제 역할을 했다 자연으로 완벽하게 사라지기 위해 수많은 화학적·물리적 실험 단계가 필요하다. 해당 제품이 사용하기 좋게 개별 포장되고, 전 세계 곳곳의 마트 진열대에 오르기까지 나오는 탄소 배출도 상당하다. 제대로 ‘생분해’가 되는지, 폐기 과정에서 어떤 새의 발목을 묶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지향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나, 그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많은 소비를 이끌어내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미 잘못된 것이다. 유명 비건 뷰티 브랜드 A사에서는 최근 행사를 진행했다. 비건 섀도 팔레트를 구매하면 비건 브로우 테이머를 증정한다는 것이다.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제품을 판매한다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길지 모르는 사은 행사를 한다? 제아무리 종이 포장재와 종이 테이프로 ‘위장’했어도, 환경에 대한 진정성을 장삿속에 이용하려는 수는 너무 얕고 뻔하다. 한편 새벽 배송을 앞세운 M사는 ‘올페이퍼 챌린지 (All Paper Challenge)’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친환경 마케팅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는 동안 이마트 쓱배송(SSG), 쿠팡, 헬로네이처 등 유통업계는 다회 용기를 택했다. 다회용 가방에 소비자가 주문한 물건을 담아 배달하고, 소비자는 물건만 가져간 뒤 다회용 가방을 문 밖에 두는 식으로 작은 순환 경제를 실현한 것이다. M사에서 ‘종이’라는 이름의 ‘친환경’ 쓰레기가 주문마다 쏟아져 나오는 동안에 말이다.
물론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사회문제를 개인의 양심과 소비 습관에만 기대어 해결할 순 없다. 다만 “어차피 텀블러 1천 번 이상 못 쓸 텐데 그냥 일회용품 쓰는 게 낫지 않아?”라는 합리화나 “기업이 안 바뀌는데 우리가 어쩔 수 있겠어?”라는 방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건 여전히 중요한 개인의 몫이다. 의심하는 근육을 한번 만들어두면 다음과 같은 생각의 전개도 충분히 가능하다. ‘종이컵이니까 친환경이라고? 종이는 물만 닿아도 흐물흐물해지는데, 그럼 이 종이컵은 진짜 종이컵인 걸까? 친환경 전기 자동차? 단단하고 안전한 철제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오염은 없는 걸까? 석유보다 전기가 친환경이긴 하겠지만, 전기를 만드는 과정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걸까?’ 자본주의의 원리는 너무나 견고해서, 어떤 물건이든 마음 놓고 이용하는 순간 친환경이 아니게 된다. 가장 좋은 팁은 “당장 꼭 필요한 게 아닌 이상 사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좋은 제로 웨이스트 물건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에코백, 텀블러, 다회용 장바구니 등 그 자체는 친환경이 될 수 없다. “이 옷을 사지 마세요”라고 광고하는 파타고니아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할 수 없겠지만, 꼭 옷을 사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꼭 ‘새 옷’이어야 하겠다면 국내의 새활용 브랜드에서 옷을 사는 것이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친환경’ 소비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친환경’이라고 덮어두고 사기 시작하면 우리는 환경 난민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두 페이지 기사에 그린워싱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었기에 다음과 같은 콘텐츠를 추천한다. 카트린 하르트만 〈위장환경주의〉 “더 많이 구매하면 바다를 살릴 수 있다”라고 말하는 대기업의 ‘녹색칠’을 낱낱이 비판한다. 다국적 기업이 자신들의 행동을 위장하기 위해 어떻게 환경을 이용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엿볼 수 있다.
김병규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파타고니아부터 이케아까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진실하게 노력하는 기업과 마케팅 차원으로 환경문제를 이용하는 기업을 더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EBS 다큐멘터리 〈그린워싱, 우리가 모르는 친환경 이야기〉 자본주의 시장에 자리 잡은 친환경, 기만적인 마케팅을 넘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독성 물질이 포함된 어린이용품까지 ‘친환경’이라고 불리는 상품의 허점을 살펴볼 수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철저히 이익만을 따라가는 기업과 ‘친환경 인증 마크’를 발급하는 몇몇 환경 단체의 검은 연결 고리가 드러난다. 아쿠아리움의 돌고래는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연어회를 즐겨 먹는다면 꼭 한번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