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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성병검사 외 않 해?

‘섹스’를 단 한 번도 안 해본 게 아닌 이상, 결코 우물쭈물해선 안 될 질문이 있다. “너 성병 검진 받았니?” ‘괜찮겠지 뭐’라는 무책임한 낙천주의 뒤에 숨은 적이 있다면,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워 눈치만 보고 있다면 이 ‘불편 타당’한 얘기에 잠시 눈을 멈춰보자.

BYCOSMOPOLITAN2021.03.15
 

금기어가 된 그 이름

연인에게 성병 검사를 권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주변에 던지고 다녔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학생 오규진(가명, 22세) 씨는 기다렸다는 듯 경험담을 쏟아냈다. “물어본 적 있어요. 성병 검사 받은 적 있는지, 없으면 같이 받는 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랬더니 그건 결혼 전에 하거나 임신 준비하는 부부가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예상했던 반응이라 성병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좋은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해줬는데 표정이 점점 굳던데요? 결국 ‘아… 그 말만은 안 해줬으면…’ 하는 대사를 치더군요. ‘너 오빠 못 믿니? 내가 그렇게 문란해 보여?’” #노콘노섹이 익숙한 상용구가 되고 첫 성관계 경험 연령이 만 13.6세로 확 떨어진, 바야흐로 ‘열린 섹스(?)의 시대’에 아직도 성병 검사에 대한 선입견, 갈등 문제를 왈가왈부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의 세계를 파고들수록 믿을 수 없는 일화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검사받자는 말은커녕 콘돔 착용하라는 말조차 안 들어요. ‘너 가임기 아니지 않냐, 내가 밖에다 잘 하겠다’라는 말이나 하고 말예요. 콘돔이 성병도 예방하는 기구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진심?” 코로나19 이전엔 왕성하고 분방한 성생활이 여가의 낙이었다는 회사원 김해영(가명, 31세) 씨의 분통은 30분 이상 계속됐다. “자긴 깨끗하대요. 전 여자 친구는 딱 2명이었고, 걔들 외엔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걔네들 참한 애들이라고…. 내 귀를 의심했죠. 그리고 ‘넌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네가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면박을 주더라고요. 바로 옷 주워 입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요.”
 
도대체 남자는 왜, ‘성병 검진’이라는 말에 이토록 발끈하는 걸까? 그게 무슨 ‘조루’나 ‘발기부전’을 연상시키는 말처럼 느껴지나? 여자 친구에게 ‘성병 검진 결과서’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는 대학원생 이혁진(가명, 27세) 씨는 ‘익명’을 신신당부하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솔직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나랑 자기 싫다는 뜻인가? 결과에 문제가 있으면 헤어지자는 얘긴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거든요. 그 말을 들은 뒤로 자꾸 의식이 돼서 섹스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 기분이에요. 솔직히 신경 쓰이거든요. ‘이런 거(?) 하자 그러면 기겁하려나? 나중엔 충치 옮을까 봐 키스도 안 한다고 하겠네?’ 사실 이제 성병이 쉬쉬할 문제가 아닌 건 아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기분이 좀 그래요.”
 

나만 손해다

성병을 화두에 올리는 일이 쉽지 않은 건 안다. 남친 눈치를 보다가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거나 그냥 자기만 검사받고 말았다는 여성을 숱하게 봤다. 그런 이들이 늘어놓은 핑계는 이렇다. “딱 한 번 잤는데 뭐. 괜찮을 거야.” 미즈러브여성비뇨의학과의 채지윤 원장은 단 한 번의 성관계로도 성 매개 감염병에 걸릴 수 있으며, 구강 성교만으로도 감염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바이러스는 대개 질, 항문, 구강 등의 점막을 통해 체내에 침입합니다. 보통 성기에 발생하는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 2형이 구강 물집의 형태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섹스 빈도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나 안 한 지 반년 넘었어. 이 정도면 동정녀지” 같은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 바이러스의 종류,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잠복기가 6개월~1년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증상이 없으면 괜찮은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고 싶다면, 혹은 남자 친구에게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바로잡자. 무증상은 결코 희소식이 아니다. 안일한 처신이 2차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여성 환자의 60~80%에서 무증상으로 나타나는 임질은 골반염, 불임 또는 자궁외임신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 자궁내막염, 난관염, 복막염, 바톨린선염 등도 대표적인 합병증이죠.” 채지윤 원장의 말이다. 특히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이라면 더 주의해야 한다. HIV, 헤르페스 등의 바이러스나 임질, 매독 등의 성병균은 임신할 경우 태아에게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아가 성병에 감염되면 뇌 손상, 실명, 난청, 저체중 같은 합병증을 겪거나 심할 경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물론 남자라고 안전하지 않다. 그가 “다음에 검사받을게. 응? 오늘은 그냥 하자. 한 번만!” 따위의 수법으로 계속 어물쩡 넘어가려고 한다면 다음 내용을 잘 기억해뒀다가 소상히 알려줄 것. 〈대한기생충학회지〉는 감염자 중 약 80%는 별다른 증상을 겪지 않는 흔한 성병 중 하나인 트리코모나스 바지날리스(이하 ‘트리코모나스’)를 치료하지 않은 상태로 수년 이상 방치하면 만성 전립선 감염이 초래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내 몸에 전립선이 없어 잘 안 와닿는다고? 소변 볼 때, 사정할 때마다 발생하는 기분 나쁜 통증, 고환과 회음부라는 ‘절대 취약 부위’의 고통을 유발하는 감염이다. 비뇨의학과에 가기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전립선 농양, 패혈증 등의 치명적 합병증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그’가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톡’의 기술

연인에게 성병 검진을 권유받은 남자가 보이는 반응은 다음과 같다. 꼬장, 분노, 미루기, 거절, 잠수 등.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이들의 감정선과 행동이 대부분 저 위에 있다. 당신이 그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면 제안하기 전에 이 점을 먼저 상기하자. 한국에선 여전히 성병 검사가 ‘상대에 대한 불신’, ‘문란한 성생활’과 연동되는 단어다. 불충분한 교육, 어설프게 쌓은 정보 탓에 성병이 곧 ‘낙인’으로 취급된다는 뜻. 반면 미국, 유럽 등에선 성병이 터부시되는 이슈가 아니다. 베를린에 사는 프리랜서 이정인(가명, 33세) 씨는 길거리나 지하철, 화장실 등의 공공장소에서도 성병 관련 광고나 캠페인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선 아이들이 시청하는 시간대에도 TV에서 성병 예방 광고가 나와요. 몇 년 전엔 ‘영화가 2순위일 때, 콘돔을 쓰세요’, ‘구 남친 때문에 가려운가요? 병원에 가세요’, ‘걸을 때마다 화끈거리나요? 병원에 가세요’처럼 위트 있는 문구를 내세운 포스터가 도시 곳곳에 나붙었죠.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자와 관계를 갖기 전에 서로 성병 검진 결과서를 공유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이유죠.”
 
상대가 ‘성병’에 대한 불편한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거두절미하고 검진이나 결과서를 요구한다면 갈등은 뻔한 일. 채지윤 원장은 남녀 모두 성병 검사가 ‘증상이 있을 때 받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받는 검진’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마케터 윤미주(가명, 29세) 씨는 유튜브의 다양한 성·의학 관련 채널 덕을 본 경우. “학교 다닐 때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이미 맞았는데, 남자도 함께 접종해야 효과가 있다는 건 최근에 알았어요.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와 제법 진지한 관계긴 하지만 그에게 ‘나를 위해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아달라’라고 말하긴 좀 어렵더라고요. 비용도 만만치 않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저한테 조심스럽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했냐고 묻는 거예요. 아직 안 맞았으면 자기랑 같이 가서 맞자고. 너무 놀라서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라고 물어봤더니 유튜브에서 ‘성병 예방’을 주제로 한 영상을 봤대요. 먼저 얘기를 꺼내 너무 감동받았죠. 그 뒤로 친구들이 저 같은 고민을 할 때마다 제 남자 친구가 봤다는 그 성병 관련 콘텐츠 영상의 링크를 보내줘요. 남친이랑 같이 보면서 선입견도 없애고, 공부도 하라고요.”
 
심리 상담사 김정연 박사는 ‘의심’이 아닌 ‘의논’의 태도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너 성병 검사 받았어?’라는 질문이 ‘너 성병 걸린 거 아니야?’라는 뉘앙스로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세요. 두 사람 모두 검진을 받는 목적이 사랑을 나누기에 좋은 시기, 방식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OX 퀴즈 ‘성병’,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성병 검사는 남녀가 함께 같은 병원에서 받는 것이 좋다?
‘함께’ 받는 건 맞지만 같은 병원일 필요까진 없다. 여성은 주로 산부인과나 비뇨의학과, 남성은 비뇨의학과에서 검진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원마다 검사 가능한 종류가 다를 수 있으므로 찾기 전에 미리 문의할 것.
 
남자의 성병 검사가 더 아프다?
X 남자 친구가 성병 검사에 면봉 타령, 극심한 ‘그곳’ 통증을 운운하면 옛날 얘기 하지 말라고 쏘아줄 것. 요즘엔 PCR (Polymerase chain reaction. 성병 유전자 검사)이라는 간단한 검사법이 있다. 소변·분비물만 채취하면 끝나며, 분비물에 성병과 관련한 DNA가 조금이라도 포함돼 있으면 감염 여부를 조기에 정확히 진단한다.
 
여성의 감염 확률이 더 높다?
O 남성이 성병에 걸린 여성과 성관계 혹은 유사 성행위를 할 경우 감염될 확률은 20%, 여성이 성병에 걸린 남성과 성행위를 할 경우 감염 확률은 80%다. 또 한 사람이 한 종류 이상의 성병에 감염될 확률은 30~50%에 달한다.
 
만난 지 오래된 커플은 한 번 검진을 받은 후 이상이 없으면 또 받을 필요가 없다?
O 상대가 바람피울 확률이 0%여도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무증상은 물론 잠복기가 6개월~1년 가까이 되는 바이러스도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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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reelancer editor 류진
  • art designer 조예슬
  • photo by 최성욱
  • advice 미즈러브여성비뇨의학과 채지윤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