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은 내가 지킨다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Society

오빠들은 내가 지킨다

‘요즘 대세’ K팝 신의 물밑은 종종 SNS 전장이 되곤 한다. ‘오빠 부대’가 괜히 ‘부대’가 아닌 이유에 대해.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0.11.22
 
1세대 아이돌들을 떠올릴 때, 대부분의 사람은 지리멸렬하게 계속되던 팬덤 간의 다툼을 함께 기억해낼 것이다. H.O.T. vs 젝스키스냐, 젝스키스 vs H.O.T.냐. S.E.S. vs 핑클이냐, 핑클 vs S.E.S.냐. 당시에 활발히 활동했던 방송작가 A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무서운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010년대에 방송작가 일을 시작한 B 씨의 말도 들어보자. “여전하지 않나? 그런 싸움은.” 2020년, 팬덤 간의 다툼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 
 
보이 그룹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와 엑소의 팬덤 엑소엘(EXO-L)이 앨범 판매량을 두고 경쟁하던 것도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팬들은 이제 소위 ‘서방(서치 방지: 아티스트가 자신의 이름으로 팬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을 막기 위해 이름을 변형해 사용하는 것)’을 할 때 쓰는 별명이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툼을 벌인다. 과거에 풍선 색깔로 벌이던 싸움이 좀 더 세분화됐고,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파이 장악이 중요해지면서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심한 경쟁의 영역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최고의 대우를 받길 원하는 이들이 팬이고, 그 자리를 위협하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견제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싸움이 같은 소속사 그룹끼리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A라는 보이 그룹의 소속사에서 B라는 후배 그룹을 론칭했을 때, A 그룹 팬 중에 B 그룹을 비하하는 세력이 생긴다. “우리 덕을 봐서 그만큼 투자받은 것 아니냐.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솔직히 우리 팀 욕 먹일 정도다.” 1990년대 후반 한 기획사에서 보이 그룹에 이어 걸 그룹을 론칭했을 때 흔히 나오던 “우리 오빠들 돈으로 걸 그룹을 만들었다”라는 불평은 자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철없는 시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계급론과 자본의 흐름을 모두 이해한 2030 세대, 혹은 그 이상과 이하의 연령대까지 얽혀 보다 복잡다단해진 팬들의 심리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사소한 다툼마저도 소속사가 필히 신경 써야 하는 K팝 소비자들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계급론과 자본의 흐름을 모두 이해한 2030 세대, 혹은 그 이상과 이하의 연령대까지 얽혀 보다 복잡다단해진 팬들의 심리가 엿보인다.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슈퍼엠(SuperM)은 ‘K팝 어벤져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그룹의 멤버가 모인 팀이다. 얼마 전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한 슈퍼엠은 멤버 개개인별로 팬들에게 애정을 당부하는 편지를 썼고, 이들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태민, NCT 등 그룹에 포함된 멤버들의 콘텐츠를 각각 따로 내고 슈퍼엠의 이름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어 공개했다. 엑소·샤이니·NCT 팬덤 사이에서 한 팀이라도 소홀하거나 슈퍼엠 활동으로 인해 원래의 팀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하겠다는 회사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 결과 슈퍼엠은 #케이팝_어벤져스_슈퍼엠_돌잔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무사히 1주년을 맞이했다.
 
한편 팬덤 내부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발생할 때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 조금씩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정 아티스트를 비하하는 목소리가 자신이 속한 팬덤에서 나오면 “같은 소속사 팬들끼리 싸우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들이다”라고 말하는 트윗이 높은 호응을 얻기도 하며, 반대편 진영에 말을 걸어 “이런 식의 싸움으로 번져 유감이다. 먼저 사과한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내 아티스트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존중하자”라는 것. 싫어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는 구호가 아니라, 서로 존중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1세대에서 4세대에 이르는 시간 동안 K팝 팬덤 또한 성장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중요한 건 K팝 팬덤이 이제는 한국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K팝 팬덤의 특수성까지 흡수하기 시작한 해외 팬들이 이것을 폭력으로 인식해 반발할지 단순한 경쟁으로 받아들일지에 관해서도 깊이 있는 관찰이 가능한 시기가 온 것이다. 이제 K팝 산업에서 발휘되는 소프트 파워를 칭송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관해서도 책임을 물을 때가 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전하지”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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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Writer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Design 김지은
    Editor 김예린
    기사등록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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