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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의 빌라 인테리어 꿀팁

쟈뎅 드 슈에뜨, 럭키슈에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새 브랜드 ‘에몽’으로 커리어의 새 장을 연 패션 디자이너 김재현의 집은 ‘전원적 주거’를 뜻하는 빌라(Villa)의 어원에 충실한 풍경을 가졌다. 서울 한복판에 숨은 고요한 골목, 반려견 제타와 함께 넓게 트인 정원과 텃밭을 누리며 집을 중심으로 한 삶을 즐기는 김재현의 자유롭고 다정한 공간.

BYCOSMOPOLITAN2020.11.03
 
이 집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앞뒤로 마당과 뜰이 있어서요. 정원 꾸미기도 좋아해요. 이전 집도 같은 동네였는데 2층이라 테라스가 없어 아쉬웠거든요. 외출을 하지 않아도 밖을 누리고 싶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제타예요. 활동성이 많은 베를링턴테리어종이라 집에서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짖고 뛰어다닐 수 있으면 했거든요. 
 
아까 슬쩍 보여준 뒤뜰이 시골의 작은 들판 같았어요. 직접 꾸몄나요? 정원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되게 어려워요. 해 드는 방향, 일조량, 계절, 날씨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거든요. 좋아하는 식물 중 겨울을 날 수 있는 종류도 많지 않고. 그래서 직접 심는 대신 내가 그리는 장면을 잘 표현해주는 가든 디자이너를 찾아요. 전문가가 이것저것 고려해 잘 만들어주면 나는 물 주고, 잡초 뽑고, 들여다보고 그러는 정도예요.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뭘 해요? 쉬는 날엔 아침 8~9시쯤 눈을 떠요. 커피 한 잔 내려 마당으로 나가서 꽃에 물 주고, 커피 마시고, 그냥 가만히 시간을 보내요. 요즘엔 토요일 아침마다 온라인으로 아트 클래스를 들어요. 아, 춤도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코로나19 이후로 집에서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게 좀 더 쉽고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지하에 있는 운동 공간이 인상적이에요. 전면 거울, 발레 바, 필라테스 기구, 덤벨, 트레드밀 같은 장비가 다 갖춰져 있던데. 운동도 주로 집에서 해요? 몇 년 전에 정원에서 잡초를 뽑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필라테스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수업을 했는데, 그때부터 집에서 운동 배우는 것에 맛을 들인 거죠. 요가도 요가원과 집을 번갈아가며 배웠고요. 지금은 혼자서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 집중이 잘되는 공간을 못 찾았네요. 
 
삶에서 집의 비중이 높은 이들을 보면 집이라는 공간에 둔 목적이 뚜렷해요. 소셜 공간으로 쓰는 사람도 있고, 쉼에 충실한 곳으로 만들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죠. 이 집은 어떤 쓰임을 갖는 공간인가요?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곳. 파리에서 공부할 때 내가 집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전엔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집으로 친구들 불러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운동도 배우고, 텃밭이나 정원도 가꾸고 그러는 거죠. 큰 집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미니멀도 좋지만 나한텐 힘들어요. 뭔가를 버리면 몇 년 지나서 그게 생각나 미칠 것 같더라고요. 하하. 좋아서 모으고 산 것을 다 끌어안고 살 수 있을 만큼 커야 해요. 
 
USM, 놀, 웬들 캐슬, 루이스폴센같이 개성이 뚜렷한 브랜드에 미술 작품, 앤티크 가구까지 섞여 있는데도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이에요. 소재나 색 등이 각기 다른 가구와 소품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가구나 소품을 살 때 통일성을 고려하는 성향도 아니거든요. 봤을 때 마음에 들면 바로 사죠. 그런 걸 이고 지고 있다가 여기에 어울리겠다 싶으면 꺼내고, 이렇게도 놓고 저렇게도 놔보는 거예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면 돼요. 그리고 조금 비싸더라도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를 사요. 100년도 더 쓸 수 있거든요. 이사를 자주 해도 끄떡없고. 
 
공간을 꾸밀 때 원칙이 있나요? 내가 편해야 해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내 습관이나 성향에 맞춰요. 작업실 대신 침실에 책상을 둔 건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그 앞에 앉는 게 편하고 좋아서예요. 한번 바꾸면 계속 그 상태로 두는 게 아니라, 계속 내가 효율적이고 편하게 움직이고 쓸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변화를 줘요. 필요한 게 제자리에 있는지, 동선에 맞게 배치돼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그걸 ‘시스템’이라고 하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루틴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구조. 그래서 USM 모듈 가구가 많은가 봐요. 실용적이고, 수납력이 좋고, 잘 정리할 수 있게 해줘서 좋아해요. 파리 유학 시절에 과제 때문에 마레의 복사 가게를 자주 갔었는데, 거기서 노란색 USM 모듈을 처음 봤어요. 귀엽고 멋진 데다 수납과 정리를 거뜬히 하는 게 좋아 보였죠. 그래서 나중에 내 공간이 생기면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하는 장소를 발견한 적이 있나요? 작년에 남프랑스로 아트 투어를 갔다가 망통에 있는 아일린 그레이의 E-1027 빌라를 봤어요. 그녀가 남자 친구 장 바도비치와 함께 조용히 지내려고 직접 건축 자재를 옮겨가며 지은 첫 집인데,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부터 기능적이면서도 자신의 성향, 취향에 맞게 직접 만든 가구까지 다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나중엔 장 바도비치가 하도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술 마시고 파티 열고 하니까, 아일린이 집을 줘버렸다고 해요. 그 친구들 중 하나가 르코르뷔지에예요. 아일린 집에 자기 맘대로 벽화를 그려 넣을 만큼 르코르뷔지에가 그 집을 좋아했대요. 빌라 E-1027 근처에 4평짜리 카바농을 하나 짓고 거기서 말년을 보낼 정도였으니까. 그 작은 공간에 거실, 부엌, 서재, 화장실 서재가 다 들어가 있는데 그 집도 정말 죽여줬어요. 그런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정리, 수납, 실용적인, 깔끔한 같은 단어를 많이 쓰네요. 나 자체가 정리가 잘 안 되는 사람이라 공간은 좀 정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좀 다른 얘긴데, 럭키슈에뜨랑 쟈뎅 드 슈에뜨에서 나와 에몽을 론칭했잖아요. 앞의 두 브랜드를 이끌 땐 1년에 두 번씩 쇼를 하면서 늘 새로운 걸 보여주느라 쉼 없이 달려왔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였지?’ 하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냥 느끼는 대로, 감각에 충실해 옷을 만들었던 때를 지나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시기 같아요.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하나씩 해보려 해요. 조금씩 정리가 돼가는 느낌이에요. 내 공간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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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하예진 / 류진(freelancer editor)
  • Design 안정은
  • Photo by 이혜련 / 홍경표 / 최별(오느른)
  • 기사등록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