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쉼표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신간 5

마음속으로 숱하게 외친다. “올해는 무효!” 그럼에도 시간은 얄궂게 잘도 흐른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읽고 싶은 책.

BYCOSMOPOLITAN2020.11.01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올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단연코 ‘N번방’ 사건이다. 그 사건을 최초로 신고하고 보도한 사람들의 이야기. 평범한 기자 지망생이던 ‘불’과 ‘단’은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불법 촬영’을 주제로 취재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취재팀 이름이 ‘불꽃’. 우연히 알게 된 링크를 따라 텔레그램 대화방 ‘고담방’에 잠입하면서 상상을 초월한 N번방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기까지 9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그 과정에서 이 둘은 분노와 좌절을 느꼈다. 언론은 피해자의 분노와 상처보다는 가해자의 서사에 관심을 가졌고, 가해자들은 뻔뻔하기만 했다. 추적단 불꽃은 공감과 연대를 택하며 ‘우리’를 말한다. ‘우리’의 위대함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추적단 불꽃 | 이봄

 
 

박막례시피

정말이지 왜 안 나오나 했다. 유튜브를 통해 시원시원한 레시피를 공개하며 “요리는 닉김”이라고 거듭 강조했던 박막례 할머니의 요리 책 말이다. 재료는 냉장고에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해먹고, 간이 안 맞거나 입맛에 안 맞으면 그때마다 필요한 양념을 추가하면 그만이다. 요리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요리 ‘똥손’도 금세 ‘금손’이 될 것만 같다. 43년간 식당을 운영하며 손수 요리한 할머니의 손맛은 계량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지만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메뉴는 간장국수부터 갓김치까지 대부분 ‘집밥’으로 상징되는 것들이다. 그대로 따라 했는데도 음식이 맛없다면? ‘닉김’을 더 추가하라. 박막례, 김유라 | 미디어창비

 
 

복자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의 불행과 슬픔을 바라보는 작가가 이번에 조금 변했다.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제주4·3사건, 국정농단 사건, 판사 블랙리스트 등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담았다. 13세 초등학생이던 주인공이 집안 형편으로 제주에 머물다 우연히 알게 된 복자와 유년 시절의 기억을 안고 성인이 된다. 연락이 끊긴 채 십수 년이 흐른 후, 법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판사가 된 주인공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견디다 유산을 겪은 간호사 복자와 제주도에서 재회하게 된다.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소송에서 주인공은 복자의 든든한 방패막이 돼주기로 하고 소송에 뛰어든다. 나쁜 현실에 작가는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비극 속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인간의 힘도 놓지 않는다. 김금희 | 문학동네
 
 

상관없는 거 아닌가?

뮤지션 장기하의 가사는 독특한 리듬이 있다. 무뚝뚝하고 무심하고도 기발하다. 그래서 때때로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 너머의 그를 상상하게 된다. 장기하의 첫 에세이에서 얼핏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툭툭 내뱉는, 그의 음악이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건 피할 도리가 없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사건과 사물 등을 포착해 장기하식으로 써 내려간 글들은 읽는 재미가 있다. 크게 2개의 부로 나뉘는데, 1부는 ‘낮’으로 유쾌하면서도 소소한 기쁨을 담은 글이 주를 이루고, 2부는 ‘밤’으로 창작자로서의 어려움과 삶의 난관을 그대로 녹였다. 장기하 | 문학동네
 
 

프리즘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양한 빛깔을 만든다. 심지어 사랑을 하기 직전과 이후의 감정까지도 진두지휘하니, 그 감정에 빠지면 사람은 속절없이 몰입하게 된다.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확장하는 자신과 그 주변을 둘러싼 관계 등을 돌아보게 한다. 도원, 예진, 재인, 호계 이 네 사람이 얽히면서 변모하는 관계와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다. 인연과 우연이 반복되는 사랑에 시작과 끝은 필연적이다. 사랑이 끝나면 다른 이의 얼굴로 다시 시작한다. 이 끝없는 사이클 속에서도 사람을 성장시키고, 또 변하게 만드는 사랑에 대한 탐구는 흥미롭다. 손원평 |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