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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미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관을 가는, 이 뻔하디뻔한 패턴의 데이트가 지금은 어려워졌다. 우리는 이제 다시는 큰 스크린 앞에 나란히 앉아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볼 수 없는 걸까?

BYCOSMOPOLITAN2020.10.07
 
영화관의 어둠 속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한데 섞인 익명의 공간에서 오롯한 고독을 느끼다가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같이 울고 웃으며 묘한 결속과 동료애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넷플릭스와 왓챠가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강력한 정서적 체험이다.
 
코로나19 이후 영화관은 직격탄을 맞았다. 역시 타격이 큰 미술관, 박물관 같은 다중 이용 시설인 데다 밀폐되고 어둡다는 측면에서 어쩐지 더 위험하게 여겨진다. 영화관의 수난은 당연히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영화관이 속속 휴업하는 운명에 처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독일의 콜로세움 영화관은 매출 손실을 버티지 못해 파산을 신청했다. 영화관이 재개관 타이밍을 살피는 사이 방황하던 관객들의 발길은 안전과 편의가 보장된 OTT 서비스로 향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선택이었지만 관객들은 이 관람 방식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다시 영화관이 문을 열었지만 바이러스의 위협은 여전하며, 각종 방역 대책은 영화관의 문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제 사람들은 보다 독립된 환경에서 영화를 즐기고 싶어 한다. 해외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자동차 극장이 때 아닌 활황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영화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더 이상 금요일 밤 커다란 팝콘 통을 옆구리에 낀 관객들로 북적이던 호사스러운 극장 풍경을 만날 수 없는 걸까? 
 
영화업계는 큰 위기를 느끼고 있다. 대중은 이미 소파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영화를 골라 보는 패턴에 길들여졌다. 비용 측면에서도 그쪽이 훨씬 매력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히 작은 영화관들, 그러니까 예술·독립영화관 측은 보다 암담한 전망을 내놓는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선 더는 운영을 이어가기 힘든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을 소파에서 일으켜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건 대형 스크린에서 즐기는 블록버스터나 아이맥스, 4DX 등 극장의 기술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포맷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관에 미래가 없다고 단언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애초에 영화관과 디지털 플랫폼을 양립 불가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생 관계로 이해한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영화관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소 고무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고 난 뒤다. 예술영화 계열의 작품을 배급하는 영화사 도후(東風)는 지난 4월 소다 가즈히로 감독의 〈정신: 제로〉를 공개하며 온라인 영화관인 ‘가설 영화관’을 개관했다. 요금은 1500~1800엔으로, 개관 이후 8개 배급사가 12편의 작품을 배급했다. 〈정신: 제로〉의 경우 3주간 한정으로 온라인 상영을 진행한 결과 3000명 정도의 관객을 만났다(영화진흥위원회 통신원 리포트 참조).
 
국내에서도 왓챠나 네이버 인디극장 등의 플랫폼, 혹은 온라인으로 전환된 국내 영화제의 상영을 통해 예술·독립영화, 특히 단편영화를 한층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실 평소 이런 영화에 관심이 있어도 어디서 봐야 할지 모르던 숨겨진 관객층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길러진 새로운 관객층을 오프라인으로 어떻게 불러 모을지가 작은 영화관의 과제다.
 
대개 예술·독립영화관은 개별 영화의 상영만이 아니라 각종 기획전, 관객과의 대화(GV), 부대 행사 등을 통해 영화 경험의 확장을 모색한다. 이것은 일종의 커뮤니티 같은 영역이고, 이 친밀감을 잘 활용한다면 특정 극장에 대한 충성도도 분명히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대형 체인 영화관이 기술적인 측면을 강화해나갈 때 작은 영화관은 차별화된 기획과 프로그래밍으로 색을 강화해야 한다. 발 빠른 극장들은 이미 그것에 골몰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아가 일본 미니 시어터의 경우처럼 작은 영화관들끼리의 연계가 보다 긴밀해진다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 지형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부적으로는 더 섬세해지고, 외부적으로는 연대하며 단단해지는 것. 이것이 작은 영화관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영화관은 단지 영화를 보는 공간(space)이 아니라 동시대의 특정 기억을 공유하는 각별한 장소(place)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것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관객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우리는 다시 그 아늑한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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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김현민(영화 저널리스트)
  • Editor 전소영
  • Photo @Packedparty on Instagram
  • Digital Design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