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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섭의 어떤 사유

미리 보낸 질문지를 골똘히 고민하며 공부했다는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다. 그런 안효섭을 보며 생각했다. 말갛고 성실한 눈을 한 이 배우에게 백상예술대상 트로피는 시작일 뿐이라고.

BYCOSMOPOLITAN2020.08.29
 
얼마 전에 축하할 일이 있었죠.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신인상을 받았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시상식이 관객 없이, 배우 간 2m씩 사회적 거리를 두고 진행됐는데, 이례적인 방식인 만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겠어요.
상 받으러 가는 길이 정말 멀더라고요. 하하. 무대까지 뛰어가는 선배도 있었어요. 저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는데, 선배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야 하는지 아니면 최대한 사람이 없는 코스로 걸어야 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시상식장 조명이 너무 뜨거워 필사적으로 땀을 닦은 기억이 나요. 다행히 카메라엔 안 잡혔지만요.


시상식은 평소에 보기 어려운 선배 배우들을 만날 기회기도 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현빈 선배님을 무척 좋아했는데 제 뒤에 앉으셨어요. 등골이 삐쭉 서는 것처럼 등이 긴장됐죠. 뒤에 손예진 선배님, 남궁민 선배님도 계셨는데,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2m의 거리가 엄청 멀게 느껴지는 거예요. 다들 저에게는 너무 연예인 같은 분이라, 갑자기 말을 걸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도 고민됐어요. 근처에 있는 분들께만 인사하려니 행사장 전체를 다 돌며 저를 소개해야 할 것 같고, 별생각을 다 했죠. 나중에 시상식이 끝나고 난 뒤 용기 내 인사드렸어요.


그런 선배들과 함께 설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최근 인터뷰에서 연기하며 좀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부쩍 자주 했더라고요.
숲이 보인다기보다는 숲을 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여전히 연기가 뭔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숲이 있다는 건 알겠거든요. 한석규 선배님이 해주신 “잘할수록 재미있다”라는 조언을 자주 떠올려요. 이게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지 몰라요. 제 노력에 따라 잘할 수 있느냐가 결정되니,지금은 뭐가 나에게 최선의 연기인지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배워가고 있어요.
 
 
더 큰 숲을 발견한다는 건 자신의 작고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배우로서 어떤 부분을 좀 더 채우고 싶어요?
발성 때문에 성우 학원에 다니고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어요. 제가 이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재밌어지고 싶어서예요. 그러려면 몰입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데, 발음이나 발성이 안 좋으면 머릿속에 하고 싶은 연기가 뚜렷해도 표현할 수 없거든요. 제 몸이 기계라고 치면 하드웨어가 안 따라주는 거죠. 그게 너무 화가 나요. 그래서 항상 몰입할 수 있는 몸 상태로 저를 업데이트해놓고 싶어요. 요즘은 외적인 부분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더 단단해지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요. 평소 멀리하고 살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줄곧 고민하고 궁금했던 문제에 대한 답도 많이 찾고, 낙천적인 마인드가 되면서 삶이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 불안함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최근에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드디어 완독했는데, 어떤 것에 대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해답을 찾은 느낌이에요. 자신의 사고 과정을 풀어 해석해보는 작업은 처음이라 흥미로웠어요.
 
셔츠, 터틀넥, 베스트, 팬츠, 부츠 모두 가격미정 보테가 베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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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거나 변화한 게 있다면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소됐어요. 예전에는 스스로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되는 걸 추구했는데 이제는 좀 변했거든요. 이번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그동안 프로이트가 말하는 인간의 세 가지 얼굴 중, 양심의 소리나 도덕적 의무라 할 수 있는 초자아 쪽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도덕적으로 엄격한 게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제가 만들어낸,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규칙 때문에 더 볼 수 있는 세상을 스스로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 초자아 안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 딱 오늘까지의 안효섭은 말이에요.


벽을 깨부수고 해방되는 그 기분이 짜릿하지 않아요?
너무 좋아요. 초자아적인 모습을 버리려고 노력하니 제가 몰랐던 모습이 나올 때도 많고요. 제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재밌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휴대폰에 보호 필름이나 케이스를 안 씌웠거든요. 어느 순간 휴대폰을 보호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규칙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액세서리를 다 떼버렸는데, 기분이 훨씬 좋더라고요.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간의 퀄리티가 높아졌달까요.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에요.


휴대폰도 있는 그대로의 디자인이 예쁘듯, 사람도 원석일 때 가장 빛날 수도 있죠. 사실 안효섭은 데뷔 이래 쭉 주목받는 배우인데, 자기애가 크지도 않고 비관적인 구석이 있다고 종종 말하는 걸 보며 의아했거든요. 어떤 20대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저의 20대 초반은 흑백처럼 어두웠어요.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 제가 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더라고요. 첫 오디션에서 바로 배역을 따내거나 비교적 빨리 주연으로 캐스팅됐을 때도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어요. 만약 친구가 똑같은 성취를 했다면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고 칭찬했을 텐데, 제가 하니까 별거 아닌 것 같았거든요. 제가 저 자신에게 존중과 사랑을 주지 않으니 삶이 행복하지가 않았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모든 게 다 삐뚤게 보였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저한텐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배우로서 피아노를 칠 수 있고, 노래를 잘 부르고, 반듯한 외모를 가졌다는 장점이 저에게는 그냥 나여서 별거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내가 너무 나만의 고집 속에 빠져 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있었어요. 친형이 다양한 업종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는데, 한번은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가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 살짝 충격이었죠.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 자신을 툭 던져놓고, 어떤 강박에서 해방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번에 〈코스모폴리탄〉이 창간 20주년을 맞이해요. 코스모는 진취적인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루고 있는데, 동시대의 2030에게 필요한 가치는 뭘까요?
남녀 할 것 없이 진심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계속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나의 행동이 어떤 생각에 기인하는지 알아가는 건 꽤 괴로운 과정이거든요. 자신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걸 해냈을 때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 보여요.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돌고래를 보러 가고 싶어요. 아쿠아리움은 정말 싫고, 실제로 바다에 가서 돌고래나 범고래와 놀고 싶네요. 제주도에도 한 11마리쯤 있다고 하더라고요. 돌고래는 인간 다음으로 지능이 높은 동물이잖아요. 돌고래만의 언어도 있어 통역사까지 존재해요. 게다가 정서적으로 교류가 가능한 포유류라, 그들끼리 초음파로 대화를 하는데 그 초음파로 인간의 심장까지 느낄 수 있대요. 아이들을 인지해 일부러 놀라게 하거나 귀여워하고, 심지어 소문도 낼 수 있고요. 저는 범고래가 이 세상 최상의 포식자인데 인간만 해치지 않는 게 신기해요. 도대체 왜 인간한테만 호의적인지 궁금하죠. 〈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진실〉이라는 영화도 재밌게 봤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지만 돌고래를 좀 지켜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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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
  • Photographer HONG JANG HYUN
  • Stylist 정윤기 허다겸/인트렌드
  • Hair 임정호/블로우
  • Makeup 지영/블로우
  • Assistant 김지현 홍예원/인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