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함께 살래요?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딨겠냐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족이 뭐길래’ 싶다. 그렇게 가족 사진이 완성되는 동안 든 생각. 가족에 있어 ‘뭣이 중헌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여기 모인 5명이라는 구성원의 숫자를 제하고 흔히 말하는 ‘정상 가족’과 은평시스터즈의 공통점이 딱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 이들이 공유하는 문제점은 모든 1인 여성 가구가 느끼는 문제의 집합체다. 반상회나 다름없는 이 모임은 과일을 나누려 서로의 문턱을 넘나들기도, 마을의 안녕과 여성의 안전을 위해 뭉쳐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은평)슈즈 29만9천원 유니페어. 재킷, 티셔츠,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예진)재킷 7만9천원, 원피스 3만5천원 모두 자라. 슈즈 29만9천원 유니페어. (혜린)가죽 재킷 27만9천원 스튜디오 톰보이. 니트 톱 3만5천원 자라. 팬츠,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동희)원피스 7만9천원 자라. 슈즈 11만원 앤아더스토리즈. 주얼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현미)블라우스 가격미정 얼바닉30. 팬츠 32만8천원, 슈즈 34만8천원 모두 렉토. 주얼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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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뒷줄부터 시계 방향으로)은평(활동명, 34세) 은평시스터즈의 초창기 멤버 중 하나. 홍보를 맡고 있다. 주로 예진이 벌인 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 예진(28세) 역시 홍보를 담당한다. 특유의 스위트함으로 사람들 코 꿰는 일에 능숙하다. 일 벌이는 걸 좋아한다. 혜린(32세) 전직 해병대 출신 NGO 활동가.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를 자전거로 10분 만에 주파하는 능력자. 다섯 중에서는 유일하게 평회원이다. 동희(26세) 2017년에 은평구로 이사 와서 첫 1년은 언제든 떠날 마음으로 살았다. 지금은 은평시스터즈를 홍보하고 있다. 현미(29세) 은평에 좋아서 산 지 5년째. 디자인을 담당한다.





은평시스터즈는 어떻게 시작한 모임이에요?
예진 2018년 12월에 은평구 1인 가구 공론장이 열렸어요. 1인 가구의 상황과 문제점, 해결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혼자 살기 힘들다” 서로 토로하다가 하소연만 할 게 아니라 뭐라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렇게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모이게 됐죠.


활동비는 어떻게 충당해요?
예진 지금은 ‘청년참’이라는 커뮤니티 지원 사업에서 지원받고 있어요. 그 전에는 ‘N빵’으로 꾸려나갔죠.


보통 몇 명쯤 모이나요?
동희 요즘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모임은 가지지 않지만, 한 번 모임을 하면 오는 사람들은 10~20명쯤 돼요. 단톡방에 있는 전체 회원은 50명 정도고요.


마작도 하고 럭비도 하고 비건 요리 해 먹기 모임도 하던데, 모임의 방향성에 대한 기준이 있어요?
은평 처음 의도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갈 수 있는 활동을 하자는 거였죠.
예진 책 읽기나 영화 보기보다는 다른 데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신선한 아이템 위주로 찾아요. 아니면 혼자 하기 힘든 것들이죠. 럭비나 클라이밍, 스케이트보드처럼요.
동희 당장은 총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은평구에 출마한 국회의원 대상으로 여성, 1인 가구, N번방 등에 대한 정책 질의서에 답변을 받아 회원들과 공유할 생각이에요.
혜린 저는 과일 모임이 제일 좋아요. 수박 같은 건 큰맘 먹고 샀다가 무조건 반 통은 버리게 되잖아요.


은평시스터즈는 공동 주거 모임도 아니고, 마을 공동체와도 좀 달라요. 이렇게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는 이유가 뭐예요?
동희 각자 생각하는 게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저희는 같이 사는 건 싫고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 좋겠어요. 하하.
혜린 은평구에 사는 1인 가구는 대체로 은평구가 고향이 아니에요. 저희처럼 직장 때문에 이사 왔거나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은평에서 새로운 고향을 만드는 거라 생각해요.


서울에서 ‘고향’이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됐죠. 1인 가구 중에서도 자기 동네에 정을 붙이려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은평 송파가 고향인데, 거기에서 20년을 살았어도 지금 가보면 다 재개발돼 예전 같은 느낌이 전혀 없어요. 그나마 거기가 고향이라고 느끼는 경우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동네에서 마주칠 때예요. 바꿔 생각하면, 20년의 기억을 은평시스터즈에서 단기간에 쌓고 있는 셈이죠. 지금 활동하는 동안에는 공동의 기억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동희 저희 동네 놀이터에는 길고양이 급식소도 있고, 할머니들이 술 마시면서 노는 정자도 있어요. 은평시스터즈로 활동하는 요즘에는 그 풍경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미 언젠가는 떠나겠지만 거기에 집중하고 싶진 않아요. 저희가 비혼 모임이라 하지 않는 것도 언젠가 결혼할 것, 갔다가 돌아올 것 상관없이 지금 1인 가구로 사는 사람에게 열려 있단 뜻이거든요.


1인 여성 가구로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책이 있나요?
현미 오히려 1인 가구로 정책을 좁히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우선 정주성을 보장해야 해요. 저희 대부분 세입자다 보니 집값이 오르면 떠날 수밖에 없거든요.
혜린 은평구도 재개발이 밀어닥치는 중이죠. 그런데 그건 개발 특수를 노리는 소수의 주민들을 위한 거잖아요.
동희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근처 장희빈 묘에 가서 단체로 초가집이라도 짓고 살자는 얘기도 해요. 아니면 그냥 통 크게 반포 자이 무단 점거해서 ‘강남시스터즈’ 만들어볼까요? 하하.
현미 사실 저희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뭉치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영향력이 엄청날 텐데,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미완의 모습으로 보니 소극적이에요.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상상도 해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같은 1인 가구라도 남성과 여성이 고민하는 지점의 차이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은평 청년참 정기 교류 모임에서 어떤 남성분께 은평시스터즈 소개를 했더니 대뜸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워서 모이신 거냐”라고 묻더라고요. 더 이상 설명하기도 싫어졌어요.
예진 지난해 초에 여성가족부 장관이 1인 30~40대 남성 가구와 가진 간담회 내용을 읽고 간극을 느꼈는데, 남성 1인 가구의 고충은 대부분 “음식을 너무 많이 남긴다”, “외롭다”예요. 저희는 모이면 안전 얘기를 가장 많이 해요.


은평시스터즈에서 함께 안전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하나요?
은평 아뇨, 이건 저희가 할 수 없어요. 공권력이 나서야 해요.
동희 혼자 오피스텔에서 자취한 시절이 있었는데, ‘벨튀’나 스토킹을 당한 적이 여러 번이에요. 경비실에 하소연해도 “피해 받은 게 없으시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와요.
혜린 선거철마다 안보 공약 얘기가 꼭 나오는데 안보가 그렇게 거창한 건가요? 나라의 구성원 절반이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 얘기하는데 왜 중요한 문제로 취급을 못 받나 싶어요.
현미 1인 가구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가정 내 폭력이 늘었다고 하잖아요. ‘가족이 뭘까, 한집에 산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족이란 뭘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되묻는 질문이죠.
현미 공동주택에 꽤 오래 살았는데 청년이라는 공통점으로 평등하게 관계 맺는 게 좋더라고요. ‘그동안 가족이 그러지 못 했구나’ 싶었어요. 험한 일은 없었지만, 제가 막내딸로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이주의와 위계의 억압을 받았던 거죠.
동희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사고를 많이 쳐서 같이 산 기간이 3년도 채 안 될 거예요. 가족이라곤 엄마와 저 그리고 엄마의 남자 친구들이 전부였죠. 엄마랑 연을 끊은 이후로 내 인생에 가족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지금은 가족이란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혈연가족이 좋으면 좋은 거고, 만약 너무 싫은데 혈연 때문에 못 끊는다면 그거 별거 아니라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예진 그동안 저는 자취생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도 비혼 인구’라는 걸 깨달으니 사회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죠.
혜린 집에서 나와 독립하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였는데, 자가를 마련한 지금도 도저히 미래는 보장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에게는 부동산 특수로 생긴 아파트가 있고, 그러다 보니 알량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해요.
은평 저는 외동이라 부모님을 혼자 부양해야 하는데, 이건 국가가 저한테 애를 낳지 말라고 하는 소리 아니에요? ‘가족’을 떠올리면 부담감부터 들죠.


‘가족’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들 생각이 다를 텐데요.
은평 가족이란 개념을 해체해야 한다고 봐요. 해체하고 다시 구성해야지, 지금처럼 가족을 사회 구성 단위로 보면 안 되죠.
동희 청년구직지원금을 신청하려고 보니 엄마 아래로 국민보험이 들어가 있어 엄마 동의를 받아야 하더라고요? 국가가 개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가족 안에 속한 개체로만 보는 게 문제예요. 가족한테 복지 시스템을 외주 주듯 해버리잖아요. 저출생도 연관된 문제예요. ‘정상적인’ 부부에게서 나오는 자녀만 인정하고 가족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없다’라고만 하죠.
은평 가족만 너무 중시하다 보니 가족이 망가졌을 때 개인을 보호할 방법이 없어요. 예를 들어 가정 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가족에게서 탈출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반대로 가족 안에 다시 집어넣는단 말이죠.
혜린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신혼부부 주거 공약을 볼 때마다 화가 나요. 결혼은 결국 M&A 아닌가요? 저는 주변 친구들이 결혼 고민할 때도 감정보단 이 사람과 내가 안정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지부터 보라고 조언해요.


그래서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고들 하죠.
동희 꼭 결혼해야만 같이 사나요? 꼭 남자 여자만 같이 살아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같이 사는 파트너가 꼭 ‘사랑하는’ 사람일 필요도 없죠.
현미 앞으로 정말 오래 살아야 하는데, 삶을 그릴 수 있는 형태가 하나로만 고정되는 게 너무 답답해요. 제가 선택한 관계여야 부양의 의무도 자연스러워질 텐데 말이죠.


이렇게 1년 훌쩍 넘도록 지속 가능한 만남이 가능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혜린 이런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공간이나 모임이 없었던 거죠. 양파 한 망이 2천원인데 나 혼자 다 못 먹으니까, 누구랑 나눠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걸 실행했을 뿐이에요.
예진 얼마 전에 회원들과 버섯을 나눠 먹었는데 그 하나로도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저렴한 가격에 버섯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요. 그냥 이렇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있다는 자체가 제일 커요.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딨겠냐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족이 뭐길래’ 싶다. 그렇게 가족 사진이 완성되는 동안 든 생각. 가족에 있어 ‘뭣이 중헌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