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지 않는 시대, 그렇다면 섹스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금 섹스를 통해 여성들이 관계를 맺고, 욕망을 표현하며, '나'로 존재하는 방법에 대하여.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얼마 전, 친구 생일에 섹스 토이를 선물했다. 오랫동안 싱글인 친구에게 꽤나 발칙한 선물을 주고 싶었고, 근래 내가 받은 선물 중 가장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꼼꼼하게 후기를 살펴보며 심혈을 기울인 끝에 작고 귀여운 토이 하나를 골랐다. 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강경파 유교걸’로 불리던 친구는 토이를 받아 들곤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까.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야, 이거 완전 요물인데?”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에 깊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사실 나의 첫 섹스 토이는 전 애인이 준 선물이었다.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처음 토이를 경험한 나는 그 작은 기계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우리의 섹스 라이프를 완전히 바꿔놓았으니까. 전희를 위한 도구로서도 최고였고, 섹스하는 중간에도 계속해서 등장했다. 상대가 쾌감을 느끼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기는 경험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깊은 차원의 흥분과 높은 만족을 선사했다. 그는 갔지만 토이는 남았고, 그와 헤어진 이후에도 나는 토이를 요긴하게 썼다.
토이만큼 나를 아주 빠르고 쉽게 절정으로 이끄는 건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 2030 여성들의 섹스 라이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연애하지 않는 시대, 섹스도 함께 사라진 걸까?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을까?
26세 대학원생 A는 일 년째 연애도, 섹스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요즘은 섹스 자체에 큰 흥미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남자 친구랑 콘돔 문제로 다투는 것도 지겹고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혼자 집에서 넷플릭스 보는 게 훨씬 편해요.” 많은 여성이 섹스를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바로 안전과 피로다. 피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거나 성관계 도중 동의가 무시되는 경험을 한 여성들은 다시 관계를 맺기 쉽지 않다. 가뜩이나 현생을 사느라 피로한 심신에 다른 부담을 얹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컨설턴트로 일하는 35세 B는 5년 넘게 만난 연인과 결혼 문제로 헤어진 뒤, 연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섹스를 끊은 건 아니라고 말한다. “심심할 때 만나는 남자는 있어. 일하기도 바쁜데, 솔직히 연애는 감정 노동이 너무 심하잖아. 딱히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없고. 하지만 몸의 욕구는 여전히 있잖아. 그래서 가끔은 그냥 가볍게 남자들을 만나. 요즘은 그게 더 편하고 심플해.” 연애와 섹스를 철저히 분리하게 된 그녀의 방식은 단순히 가벼움을 추구하기보단 감정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반대로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는 31세 C는 최근 7살 연하인 남자 친구와 만족스러운 섹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만족스럽지 않았어. 남자 친구가 어리다 보니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금세 절정으로 가더라고. 처음엔 어떻게 말해야 남자 친구가 기분 나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했어. 서로의 몸을 차근차근 탐색해보자고. 내가 원하는 자극의 강도와 속도를 구체적으로 말하니까 그때부터 조금씩 나아지더라.” 시간이 쌓일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이해하게 됐고, 점차 만족감을 느끼게 됐다고. 이는 단순히 성적 만족에서 나아가 상대에게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말했을 때,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조율해가며 관계에 활력을 더하게 된 케이스다.
연애 5년 차, 33세 프리랜스 디자이너 D는 2년째 섹스리스 커플임을 고백했다. 대신 그녀는 섹스 토이를 꾸준히 사용한다고 했다. “남자 친구는 성욕이 별로 없는 편이고, 나는 그렇지 않아. 예전엔 솔직히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내가 더 이상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 싶어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 있는 반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제 서로 이해하게 된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 욕망을 참을 순 없잖아. 요즘은 남자 친구와 같이 누워 있으면서 나 혼자 토이를 사용하기도 해. 관계에 있어 문제였던 섹스 고민이 해결되니까 관계도 이전보다 더 좋아졌어.” 연인 관계에서 맞지 않는 속궁합은 종종 이별 사유로 간주됐다. 그러나 그녀의 사례는 섹스 불균형이 반드시 이별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욕망을 숨기거나 포기하는 대신 솔직하게 말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을 때,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2030 여성들의 다양한 섹스 경험담을 듣다 보니, 이제는 섹스에 대한 어떤 명확한 기준이나 보편적인 서사를 말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는 누구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잘하느냐가 섹스 라이프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지만, 점차 그런 기준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대신 각자의 선택과 경험, 필요와 취향이 뒤섞여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지고, 솔직해진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시대의 섹스에서 중요한 건 횟수나 기술이 아닌, 각자의 삶에서 섹스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였다. 섹스를 하든, 하지 않든 각자의 삶과 맞아떨어지는 선택을 할 때 각각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섹스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포르노가 거의 유일한 참고서였다. 그 안에서 여성은 언제나 대상화된 존재로만 그려졌고, 현실의 경험과는 괴리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은 팟캐스트와 유튜브, 커뮤니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섹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더 이상 남성 중심의 판타지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인 쾌락과 공감으로서, 여성 중심의 섹스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 흥미로운 건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여성일수록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더 큰 만족감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침대 위에서 자기 욕망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일상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전할 줄 알게 되니까.
요즘 여성들에게 섹스란 단순히 성적 쾌락을 넘어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떻게 욕망을 표현하며, 얼마나 주체적으로 관계를 이끌어가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가장 사적이면서도 솔직한 행위가 아닐까? 섹스를 통해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는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누군가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실험한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선택이 다 옳다는 사실이다. 섹스에는 보편적인 정답도, 하나의 이상적인 공식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단지 각자의 방식만 있을 뿐이다. 정답 없는 섹스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항해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은 더 자유롭고 자신에게 맞는 섹스를 찾을 것이다.
Credit
- Editor 김미나
- Writer 이봄(프리랜스 에디터)
- Lllustration by LIMOO
- Digital designer 변은지
스타들의 다이어트 비법 대공개
#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