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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음식과 봄의 향, 정취를 정의한다면?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어쩌면 오래오래 그리워할, 그러니 귀히 여겨야 할 아름다운 봄의 찰나에 대하여.

프로필 by 천일홍 2025.05.04

봄의 색 I 벚꽃과 작약, 목련, 학재스민, 줄호엽란, 스위트피

“봄은 매해 찾아오지만, 매번 낯설고 귀한 계절처럼 느껴집니다. 환경오염으로 봄이 점점 흐릿해진다고 느끼는 요즘, 겨우내 웅크리다 조심스레 피어난 사랑스러운 꽃들을 이 계절이 가진 고유의 감각을 오래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골랐습니다. 연분홍빛의 은은한 향을 지닌 벚꽃, 피어나면 풍성한 꽃잎이 매력적인 작약, 곧은 선과 두툼한 꽃잎이 우아함을 자아내는 목련, 녹색 이파리와 분홍 꽃봉오리가 달린 덩굴식물인 학재스민, 짙은 초록 잎으로 공간을 단정하게 잡아주는 자태의 줄호엽란, 오묘한 보라색과 분홍색 덩굴이 봄에 정말 잘 어울리는 스위트피까지. 봄에 피어난 이 꽃들은 어떻게 봄이 온 줄 알고, 땅을 밀어내며 올라오는 걸까요? 저는 그 모습이 늘 대견하고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 빠르게 소비되고 쉽게 잊히는 것들 속에서 전 온 힘을 다해 땅 밑에서 자신의 모습을 힘차게 드러내는 들꽃과 야생화를 통해 환경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아름다운 순간을 더 오래, 자주 마주할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게 되는 계절입니다.”

by 임주연(플라워 디렉터, ‘풀꽃’ 오너)


봄의 맛 I 주꾸미와 민들레잎

“봄의 맛이라 칭할 만한 제철 재료의 경계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봄의 과일로 통했던 딸기는 이제 겨울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여름 대표 과일이라 여겨졌던 참외도 겨울이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로 매대에 올라오니까요. 그게 참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재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알이 가득 들어찬 주꾸미가 바로 그것이죠. 300개에서 많게는 약 500개의 알을 품은 봄의 주꾸미는 톡톡 터지는 독특한 식감과 특유의 고소한 맛을 지녀 입맛을 돋우는 별미로 즐기기 좋아요. 특히 강한 양념이 가미된 볶음 요리보다는 본연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주꾸미 샐러드로 시도해보길 권해요. 양상추, 로메인 등의 채소에 살짝 데친 주꾸미를 올리고 올리브 오일과 레몬, 소금으로 완성한 샐러드 소스를 곁들이면 풍미를 채워주기 충분할 거예요. 이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민들레잎 나물을 곁들여도 좋겠어요. 루콜라와 비슷한 생김새지만, 쌉싸래한 향이 은은하게 풍겨 더욱 입체적인 맛을 경험해볼 수 있거든요.”

by 김보선(푸드 스타일리스트)


봄의 정취 I 기후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봄꽃, 봄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긴 한지 포스터 가격미정 Toolpress.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봄꽃, 봄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긴 한지 포스터 가격미정 Toolpress.

“개화 시기가 점점 더 빨라지는 봄. 이상하리만큼 길어진 장마 기간.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린 가을. 한파 기록이 매년 경신되는 겨울. 머지않아 봄과 가을은 사라지고 오직 여름과 겨울만 남게 될지도 모르는 오늘날, 우리는 사계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경을 눈과 피부로 직면하고 있습니다. 봄이라 느끼는 이 시기 역시 점점 더 기온이 올라갈 것이며, 비는 내리지 않는데 온도가 높으면 건조해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여러 연구 결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봄의 광경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덥고 건조한 기후 탓에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봄 가뭄이 심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오는 편이기에 가뭄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하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이 많아 보이니 그저 놀러 가기 좋다는 느낌 정도를 받을 뿐이지만, 가뭄 취약 지역의 농부들에겐 생계가 무너지고 사업에 피해를 입게 되니 그것이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요. 기후변화로 인해 봄꽃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 역시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꽃이 피는 작물을 재배하는 과수원, 꿀벌을 기르는 양봉 농가가 입는 피해는 물론이고 과거엔 보이지 않던 각종 해충과 철새가 나타나면서 낯선 감염병을 더 많이 옮기게 될 겁니다. 이제 기후는 단순히 따뜻한 마음으로, 착하게 살기 위해 선심 쓰듯 고민할 주제로만 여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결국 기후는 온갖 산업과 경제의 다양한 부분과 연결되기 때문인데요,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산업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고, 기후를 고려한 전략을 가진 기업이 돈을 버는 세상이 되겠죠. 환경문제는 무조건 귀찮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일상, 나아가 경제로 직결된다는 의식을 가질 때입니다.”

by 곽재식(환경안전공학과 교수, 작가)


봄의 향 I 은달래와 백두릅

“동그란 형태가 쪽파의 머리 같기도, 작은 마늘알 같기도 한 은달래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달래의 비늘줄기를 기존 재배 기간보다 한 해 정도 더 길러 푸른 잎을 제거한 흰색의 알뿌리라는 사실. 조금은 생소할 수 있지만, 달래보다 알이 굵고 아삭한 식감에 매콤하고 알싸한 향을 짙게 품은 나물이에요. 은달래의 맵고 알싸한 향은 나른한 봄, 입맛을 돋게 하는 식재료이기도 하죠. 자근자근 씹다 보면 고소한 맛이 은은하게 입안에 감돌죠. ‘땅두릅’이라고도 불리는 백두릅은 보통 나무에서 자라는 참두릅과 달리 땅에서 새순을 올리며 자라는데, 식감이 부드럽고 쌉싸름한 향이 특히나 매력적이에요. 줄기에 가시가 붙어 있는 참두릅과 달리, 가시가 없어 손질도 한결 편하죠. 매일 식탁에 오르는 무침 반찬으로 먹어도 좋지만, 은달래와 백두릅은 조개나 오징어 같은 해산물과 궁합이 좋아요. 관자와 오징어를 질기지 않을 정도로 구운 뒤 두 나물을 곁들여보세요. 한입 가득 봄을 머금은 기쁨이 단번에 느껴질 거예요.”

by 조서형(셰프)

Credit

  • Editor 천일홍
  • Photo By 김래영
  • Assistant 함상우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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