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더러운데 멋있잖아

여기저기 흙과 오물이 튀고, 갈기갈기 찢어진 룩. 그런지와 펑크 룩을 넘어선 새로운 '더티 패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프로필 by 김소연 2024.11.07
Elena velez Jordanluca Andreas kronthaler for Vivienne Westwood Diesel 1850달러에 출시된 엑스트라 디스트로이드 스니커즈 Balenciaga. Alexander MCQueen 흙이 묻은 듯한 디자인의 후디 76만원 We11done.
“이게 진정 새 옷이라고?” 찢어지다 못해 너덜너덜하고 흙과 오물이 묻은 룩이 트렌드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엄마가 마르지엘라의 스티치 태그를 뜯었다거나, 디스트로이드 팬츠를 말끔히 꿰매고, 골든구스 스니커즈의 얼룩을 빡빡 닦아주셨다는 등의 웃픈 사연들은 당신도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그런데 이건 정말 차원이 다르다. 바로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올 것만 같은 ‘더티’한 옷들이 런웨이뿐 아니라 리얼웨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그중 에디터의 기억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건 조던루카의 2023 F/W 컬렉션. ‘내가 뭘 본 거지?’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든 건 바로 바지에 실수한 것같이 보이는 ‘특별한’ 얼룩이 더해진 데님 팬츠였다. 실제 제품명이 ‘소변 얼룩 데님 팬츠(Pee-stained Jeans)’로 가격은 무려 800달러!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이제 바지에 실수해도 그대로 다니자”, “안티패션이다”, “쿨하다” 등 희한하게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시선이 공존했다. 이러한 대중의 갑론을박 속에 품귀 현상까지 나타났다. 디자이너 조던 보웬과 루카 마르케토는 사람들이 생리 현상까지 참아가며 일하는 바쁜 현대사회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밝혔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싶었어요.” 그런가 하면 지난 8월, 윌리 차바리아는 아예 누렇게 변색된 듯한 언더웨어를 출시했고, 엘레나 벨레즈의 2024 S/S 컬렉션에선 해지고 찢어진 룩을 입은 모델들이 진흙탕으로 덮힌 런웨이에서 치열한 몸싸움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실험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레이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렌시아가와 메종 마르지엘라,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패션 하우스의 런웨이에서도 ‘더티 패션’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공개한 프라다의 2025 S/S 컬렉션에서도 때가 탄 듯 낡고 오래된 모습의 슈즈를 찾아볼 수 있었고,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포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에선 화이트 드레스에 흙이 묻은 것처럼 보이는 트롱프뢰유 드레스를, 디젤의 런웨이에선 너덜너덜한 룩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발렌시아가가 런웨이부터 옷까지 온통 진흙투성이인 ‘더 머드 쇼’란 이름의 2023 S/S 컬렉션과 쓰레기봉투에서 영감을 받은 ‘트래시 백’을 선보이는 등 그 예는 수없이 많다.

Prada

Prada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은 왜 이런 고약한 패션을 선보이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런 고약함에 열광하는 걸까? 앞서 말했듯 디자이너들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또는 그저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기믹’으로서 더티 패션을 이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더티 패션과 함께 미스매치를 비롯한 안티패션이 빅 트렌드가 되는 이 시대에, 옷에 오물을 묻히든 그보다 더한 것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부터 더티 패션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1970년대의 경제난으로 생겨난 영국의 하위 계층과 젊은이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펑크 패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그런지 록에서 파생된 그런지 패션, 그리고 마틴 마르지엘라와 레이 가와쿠보가 이끈 해체주의 패션처럼 말이다. 알렉산더 맥퀸도 마찬가지다. 로봇 두 대가 샬롬 할로의 화이트 드레스 위에 물감을 뿌리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 1999 S/S 컬렉션 등 그의 컬렉션엔 늘 더티 패션과 같은 안티패션 코드가 존재했다. 알렉산더 맥퀸 외에도 장 폴 고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릭 오웬스 등이 더티 패션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또 전통적인 패션 공식에서 벗어나 자유와 반항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값비싼 새 버킨 백을 발로 밟고, 스티커를 붙이고 잡동사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닌 제인 버킨 또한 더티 패션의 정신을 지닌 패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Balenciaga

Balenciaga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싶었어요.

“당신이라면 2백만원을 주고 더럽다 못해 망가진 발렌시아가의 스니커즈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소비 심리학자인 패트릭 페이건은 사람들이 이런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반자본주의적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는 ‘비용 신호(Cost Signalling)’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쓰레기 같은 옷’이라고 여기는 것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말한다. “알 사람은 아니까!” 발렌시아가를 사랑하고 이미 그 허름한 운동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부와 지위의 상징임을 알고 있을 테니. 2000년대 보헤미안 시크(또는 노숙자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라 붙여진 이름인 ‘홈리스 시크’)의 아이콘, 올슨 자매를 보라. 럭셔리 하우스의 백과 옷을 착용했지만, 모두 낡고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는 가난을 패션으로 소비한다는 점에서 때론 논란을 낳기도 한다. 가난의 낭만화, 이것은 가난이 현실이 아닐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지적이 지나치거나 창의적인 행위를 막는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더티 패션을 즐기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긴 하다. 이러한 부작용이 존재하더라도 더티 패션은 분명 매력적인 패션이라고 에디터는 생각한다. ‘뇌절인가 혹은 혼돈의 아름다움인가?’란 질문 속 입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 패션의 본질이지 않나. 그것이 비록 허영심일지라도.
구멍이 나고 누렇게 변색된 듯한 브리프 47만원대 Willy chavarria.

구멍이 나고 누렇게 변색된 듯한 브리프 47만원대 Willy chavarria.

Credit

  • Editor 김소연
  • Photo by BRAND / GETTY IMAGES / IMAXtree.com / INSTAGRAM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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