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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선량하며 괴물같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에 대하여

압도적으로 우아하고 사악하며 또 선량한 괴물 같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여성 지휘자로 분해 자신의 무르익은 역량을 쏟아부은 영화 <TAR 타르>는 그의 연기 인생에 또 한 번 커리어 하이를 찍어냈다. 라흐마니노프 같은 블란쳇의 경지에 대하여.

프로필 by 이예지 2023.04.11
 
양자경이었다. 나는 환호했다. 나는 양자경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을 원했던 수천만 명 중 하나다. 그가 연단에 올라가 “여성들이여, 당신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스, 마담! 당신이 옳습니다. 잠깐. 당신은 지금 양자경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것이 확실히 맞다. 그러나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이 양자경 이야기를 꺼내야만 한다.
 
The Lord of the RingsElizabeth: The Golden Age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 부문은 숨 막히는 레이스였다. 지난해 초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양자경은 오스카 수상을 거의 확보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TAR 타르>(이하 <타르>)가 개봉하자 독주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케이트 블란쳇은 언제나 연기의 괴물이었다.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은 괴물이 괴물을 연기할 때 얼마나 압도적으로 괴물 같아질 수 있는지를 증명해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오스카 수상 실패에 슬퍼하고 있느냐고? 그렇지는 않다. 양자경의 수상은 역사가 됐다. 나는 이처럼 의미 있는 수상을 지난 몇 년간 본 적이 없다. 다만 <타르>가 후보에 오른 모든 부문에서 수상에 실패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미리 당신에게 관람을 권하고 글을 시작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오스카에서 상을 받지 못했지만 당신은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을 반드시 목격해야만 한다. 이것 역시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나의 비밀을 밝히며 이 글을 계속 이어가야겠다. 사실 나는 케이트 블란쳇의 팬이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팬도 아닌 주제에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글을 쓰고 원고료를 받아 챙기다니, 무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시라. 팬이 아닌 사람마저 굴복시키는 연기는 정말 대단한 연기라는 의미다.
 
I’m Not ThereBlue Jasmine
<타르>는 ‘리디아 타르’라는 가상의 여성 클래식 지휘자가 성 추문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리디아 타르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여기서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영화적 장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리디아 타르는 스스로를 일반적인 젠더로 구분하지 않는 (그러니까 매우 Z세대적인) 유색 인종 남학생과 교단에서 설전을 벌인다. 학생은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 바흐가 여성 혐오적인 인물이었으므로 그의 음악도 거부한다고 말한다. 리디아 타르는 예술과 예술가의 사생활을 일치시키는 것은 편협한 견해라고 쏘아붙여 결국 학생이 교실을 스스로 떠나게 만든다.
 
리디아 타르의 예술에 대한 순결주의적인 비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여성 상임 마에스트로이자 레즈비언인 동시에 젊은 여성 음악가 육성 프로젝트의 설립자인 리디아 타르는 겉으로는 완벽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위선자이며 젊은 여성 음악가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악당이기도 하다. 결국 성 추문은 리디아 타르를 완벽하게 추락시킨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럴 리가. 케이트 블란쳇이 그런 단순한 영화에 출연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예술가의 윤리성과 업적을 분리해야 하는가? 분리할 수 있는가?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타르>는 정답이 없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서커스 같은 영화다. 그러니 리디아 타르를 연기하는 배우도 서커스를 해내야만 한다. 악인이지만 완벽한 악인이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존경하는 동시에 혐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체 이 서커스를 누가 해낼 것인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존재한다. 케이트 블란쳇이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Don’t Look Up
자, 그렇다면 내가 왜 케이트 블란쳇의 팬이 아니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케이트 블란쳇이 21세기 최고의 배우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것은 그냥 과학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칭송하는 최고의 배우를 모두가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여기서 20세기 할리우드에서 케이트 블란쳇의 지위를 가졌던 배우를 한 명 더 소환할 생각이다. 전설적인 메릴 스트립이다. 여러분은 모두 메릴 스트립을 사랑할 것이다. 나도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지나치게 기술적이라고 생각해왔다. 모든 장면의 모든 대사와 반응을 미리 꼼꼼하게 설계하는 그의 연기를 보며 종종 숨이 막힌다고도 생각했다. 21세기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그를 오스카 후보에 올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줄리 & 줄리아>와 <철의 여인>은 기교가 필요한 영화들이다. 특히 <줄리 & 줄리아>와 <철의 여인>에서의 연기는 실존 인물의 외적인 특징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펼치는 연기적 기예에 가깝다. 물론이다. 그건 놀라운 연기들이다. 나는 메릴 스트립을 한없이 존경한다. 그저 그의 몇몇 연기가 내 취향이 아니었을 따름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제2의 메릴 스트립이었다. 이미 그는 거의 무명이던 1998년에 영화 <엘리자베스>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그를 오스카 후보에 오르게 만든 영화들은 확실히 놀랍도록 기술적이었다.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에비에이터>에서 그는 캐서린 헵번을 연기했다. 캐서린 헵번만큼이나 캐서린 헵번 같은 연기였다. 그는 2007년 <엘리자베스>의 속편 <골든 에이지>와 <아임 낫 데어>로 오스카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두 영화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역시 실존 인물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가수 밥 딜런을 연기했다. 실존 인물의 특징을 잘 뽑아내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세상의 칭송을 받았다는 점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확실히 메릴 스트립의 후예였다.
 
Ocean’s 8Carol
케이트 블란쳇의 열광적인 팬인 당신은 그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블루 재스민>을 예로 들며 나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한다. <타르> 이전에 내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에 완벽하게 조응했던 영화가 바로 <블루 재스민>이었다. 샤넬 재킷과 버킨 백 외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몰락하는 상류층 여성으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나는 <블루 재스민>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는 습관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거의 미쳐버린 케이트 블란쳇이 멍한 얼굴로 내뱉는 독백을 볼 때면 숨을 멈추고야 만다. 그럼에도 <블루 재스민>이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나의 작은 편견, 어쩐지 지나치게 계산된 기술적 연기라는 편견을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다. 그렇다. 영화평론가라는 인간들이 다들 그렇듯이 나도 고집과 아집이 꽤 센 사람이다.
 
Thor: RagnarokTAR
이 글은 나의 속죄로 마무리해야 한다. 나는 케이트 블란쳇이 마침내 내 구미에 맞는, 덜 기술적인 연기를 <타르>에서 해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타르>에서도 여전히 기술적인 연기를 해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장면에서 숨소리조차 통제하는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보며 감정적으로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기술적인 연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기술적일 때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예술이 된다. 어쩌면 나는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술과 예술을 분리할 수는 없다. 모든 훌륭한 예술은 결국 훌륭한 기술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나는 존경하는 선배 평론가의 말을 기어이 인용해야만 할 것 같다. 이동진 평론가는 <타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얼음장 속의 불덩이 같은 영화와 100%의 블란쳇.” 그렇다. <타르>의 그는 100%의 케이트 블란쳇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케이트 블란쳇했고, <타르>에서 마침내 100% 케이트 블란쳇했다. 그러니 다시 권한다. 당신은 (이미 극장에서 거의 내려간) <타르>를 반드시 봐야만 한다. 이것은 연기의 라흐마니노프 같은 경지다. 나는 굴복했다. 당신도 굴복할 것이다.

Credit

  • writer 김도훈(영화평론가/작가)
  • editor 이예지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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