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우아하고 선량하며 괴물같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에 대하여
압도적으로 우아하고 사악하며 또 선량한 괴물 같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여성 지휘자로 분해 자신의 무르익은 역량을 쏟아부은 영화 <TAR 타르>는 그의 연기 인생에 또 한 번 커리어 하이를 찍어냈다. 라흐마니노프 같은 블란쳇의 경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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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이었다. 나는 환호했다. 나는 양자경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을 원했던 수천만 명 중 하나다. 그가 연단에 올라가 “여성들이여, 당신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스, 마담! 당신이 옳습니다. 잠깐. 당신은 지금 양자경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것이 확실히 맞다. 그러나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이 양자경 이야기를 꺼내야만 한다.


또 한 가지 나의 비밀을 밝히며 이 글을 계속 이어가야겠다. 사실 나는 케이트 블란쳇의 팬이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팬도 아닌 주제에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글을 쓰고 원고료를 받아 챙기다니, 무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시라. 팬이 아닌 사람마저 굴복시키는 연기는 정말 대단한 연기라는 의미다.


리디아 타르의 예술에 대한 순결주의적인 비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여성 상임 마에스트로이자 레즈비언인 동시에 젊은 여성 음악가 육성 프로젝트의 설립자인 리디아 타르는 겉으로는 완벽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위선자이며 젊은 여성 음악가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악당이기도 하다. 결국 성 추문은 리디아 타르를 완벽하게 추락시킨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럴 리가. 케이트 블란쳇이 그런 단순한 영화에 출연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예술가의 윤리성과 업적을 분리해야 하는가? 분리할 수 있는가?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타르>는 정답이 없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서커스 같은 영화다. 그러니 리디아 타르를 연기하는 배우도 서커스를 해내야만 한다. 악인이지만 완벽한 악인이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존경하는 동시에 혐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체 이 서커스를 누가 해낼 것인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존재한다. 케이트 블란쳇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제2의 메릴 스트립이었다. 이미 그는 거의 무명이던 1998년에 영화 <엘리자베스>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그를 오스카 후보에 오르게 만든 영화들은 확실히 놀랍도록 기술적이었다.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에비에이터>에서 그는 캐서린 헵번을 연기했다. 캐서린 헵번만큼이나 캐서린 헵번 같은 연기였다. 그는 2007년 <엘리자베스>의 속편 <골든 에이지>와 <아임 낫 데어>로 오스카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두 영화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역시 실존 인물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가수 밥 딜런을 연기했다. 실존 인물의 특징을 잘 뽑아내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세상의 칭송을 받았다는 점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확실히 메릴 스트립의 후예였다.




Credit
- writer 김도훈(영화평론가/작가)
- editor 이예지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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