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계에서는 반항아가 잘 나간다?! 요즘 하이패션은 서브컬쳐가 대세!

유명해질수록 은둔한 디자이너, 패션 수도에 입성한 아웃사이더…. 콧대 높은 하이패션과 대중이 모두 마음을 뺏긴, 마법 같은 컬트적 순간!

BYCOSMOPOLITAN2021.08.09
 

펑크 스피릿이 허문 런던 패션의 장벽

펑크는 컬트의 매니악한 특성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예시다. 기득권과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펑크 정신을 사람으로 형상화한다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될 것이다. 올해 런웨이 데뷔 40주년을 맞은 그녀는 끊임없이 펑크 스피릿을 불태워왔다. “내가 패션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관습’이라는 단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선언했을 정도! 비비안의 컬렉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은 거친 슬로건 티셔츠, 가죽 스트랩과 지퍼를 이용한 본디지 룩. 런웨이 데뷔 전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말콤 맥라렌과 운영한 옷가게 ‘렛 잇 록’ 시절부터 즐겨 사용해온 요소다. 패션쇼에서 슬로건 티셔츠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의 시초가 바로 그녀인 것. 고풍스러운 코르셋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은 이교도가 돼야 한다’ 연작 컬렉션에서 르네상스 시대 의복을 비틀어 선보인 아이템은 지금도 수집가를 거느리며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알렉산더 맥퀸 역시 영국의 자랑이다. 그의 초기 컬렉션에서도 영국적 반항심은 선명히 돋보였다. 1994년 데뷔 컬렉션에서 공개한, 엉덩이 골이 드러나는 ‘범스터 팬츠’를 보라. 해를 거듭하며 알렉산더는 컬렉션에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인간과 기계문명의 관계를 주제로 한 1999 S/S 런웨이에서는 의족을 찬 모델이 오프닝을, 흰 드레스 입은 모델에게 기계 팔이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퍼포먼스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미국 9·11 테러 직후 모든 디자이너가 쇼를 취소하는 와중에도 강행한 2001 S/S 쇼에는 나체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등장시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패션이 아름다움만 좇는 것에 대해 과격한 방식으로 의문을 던지는 그의 메시지는 점점 선명해졌다. 이러한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해골이다. 삶과 죽음, 위험과 행운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해골은 흔히 정반대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를 상기시킨다. 과장되고 추한 것을 탐구해온 그의 기록은 알렉산더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부수고, 뒤섞고, 숨겨라

정교한 패턴과 봉제, 섬세한 소재…. ‘잘 만들어진’ 옷의 고결함만큼 이를 비틀고 분방하게 재구성한 해체주의 패션도 쿨해진다. 런웨이&리얼웨이 모두 뜨겁게 반응한 베트멍, 와이프로젝트처럼! 21세기 해체주의의 젊은 피가 뛰어놀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든 건 1980년대 파리 패션 위크의 디자이너들이었다.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등 일본 디자이너들은 1980년대부터 파리에서 해체주의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1988년 봄 마틴 마르지엘라가 여성복을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시접을 밖으로 드러내고 지퍼나 스터드 같은 부자재를 과장하는 등 제작 과정을 노출시켰다. 재킷, 스커트같이 평범한 일상복에 신선한 터치를 더한 피스는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기존 의류나 다른 물건의 재활용 및 재사용도 특기였다. 샴페인 뚜껑과 라벨을 콜라주한 타비 부츠, 크리스마스 장식을 단 재킷에는 소모적인 패션 사이클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겨 지금까지도 울림을 준다. 마틴을 더욱 특별한 존재로 만든 건 철저한 익명성! 그는 유명해질수록 철저히 은둔했다. 디자이너가 셀렙처럼 주목받은 후 퀄리티를 놓치게 될까 봐 경계했기 때문. 그는 컬렉션도 대중에게 옷 자체로 보여지길 바랐다. 스티치만 남긴 라벨, 마스크나 가발로 얼굴을 가린 런웨이 모델을 보라! 모노그램, 로고 전시의 시대가 왔다 저무는 동안에도 패션&뷰티계의 마틴 후손들은 그의 정신을 이어가는 중.
 
 

업타운에 스며든 다운타운

에디 슬리먼이 서브 컬처 마니아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디올 옴므 시절에는 피트 도허티 같은 록 뮤지션을 뮤즈로 삼아 역사적인 스키니 룩을 전 세계에 유행시켰고, 베를린에서는 이런 인물들을 촬영하는 포토그래퍼로도 활약했다. 생 로랑과 셀린느 시절에는 LA의 젊은 소년들에게 영감을 얻었다. 셀린느 첫 시즌에는 형형색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틱톡커 노엔 유뱅크스를 캠페인 모델로 선정하고 베니스 비치의 스케이트보더 룩을 런웨이에 올리기까지! 한마디로 전임자의 흔적을 보란 듯이 뒤집고 브랜드 정체성을 리셋해버렸다. 이에 에디 마니아들은 열정적으로 호응을, 기존 셀린느 러버들은 에디 컬렉션일 뿐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동안 그가 지나온 길에는 늘 이런 논란이 있어왔다. 생 로랑과 셀린느를 보자. 하우스보다 본인의 색채를 더 드러내는 사건이 두 브랜드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됐다. 어리고 스키니한 룩은 물론 로고를 산세리프체로 단순화하고, 홈페이지 레이아웃마저 비슷하게 간소화하는 것이 ‘에디화(化)’돼가는 전형적 단계다. 그럼에도 에디 슬리먼이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그가 제안하는 서브컬처적 룩이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였으며, 바시티 재킷과 스키니 진 같은 아이템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데다 지금까지도 높은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
 
 

MZ라는 신인류의 하이패션

루이 비통 데뷔 쇼 피날레에서 눈물 흘리던 버질 아블로를 기억하나? 스트리트 패션에 기반한 흑인 디자이너가 역사와 전통의 하우스와 손잡은 역사적 순간! 런웨이 모델들의 피부와 의상 색상은 다채로워지고 곳곳에 신선한 위트가 넘쳤다. 올해 4월에는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되기까지. 무게감, 체면 대신 MZ의 테이스트를 겨냥한 루이 비통의 행보는 현명했다. 기존 질서하에 비주류로 여겨지던 존재가 세계적 위치에 올라선 것에 오랜 팬들은 열광했고, 이들의 스타일은 바로 패션 위크의 가장 중요한 쇼에 반영됐다. 팬시한 스니커즈, 트러커 재킷, 장난스러운 액세서리는 이들을 보고 자란 어린 세대들도 탐내게 만들었다. 뎀나 바잘리아 역시 하이패션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또 다른 인물! 2014년 선보인 베트멍 컬렉션으로 파리 패션계의 총아로 떠오르더니 연거푸 히트를 기록했다. 그의 특기는 거친 스트리트 웨어와 쿠튀르적 터치의 절묘한 믹스. 쿨한 언더그라운드 키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뎀나는 2015년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전임자인 알렉산더 왕이 자신의 색깔보다 발렌시아가다움을 좀 더 부각시켰다면, 뎀나는 하우스의 유산을 스트리트적 요소 안에서 구현해냈다. 윈드브레이커, 오버사이즈 점퍼 같은 피스는 영 패피들의 잇템이 됐다. 그렇다면 뎀나가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이고 싶던 건 후디와 스니커즈가 전부였을까? 최근 발렌시아가에서 53년 만에 선보인 2021 가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뎀나가 그 이상의 존재임을 입증했다. 날카롭고 구조적인 이브닝드레스, 스윙 파카, 데님 팬츠가 조화를 이룬 컬렉션은 쇼 직후부터 찬사 일색! 조지아라는 작은 국가 출신의 디자이너가 100여 년 역사의 쿠튀르 하우스에서 성공을 거머쥔 소식은 팬데믹으로 지친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전했다. ‘비주류 출신’의 독창성과 뜨거운 에너지가 추종자들의 열광을 이끌 뿐 아니라 새 시대의 혁신을 이끄는 필수적 감각임을 입증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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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이영우
  • photo by Getty Images(비비안 웨스트우드)
  • /photo by IMAXtree(컬렉션컷)
  • photo by ⓒ firstVIEW/IMAXtree(왼쪽 아래 코르셋 이미지)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