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 56만5천원 레하.
그냥 반응이 좋구나 정도예요. 덤덤할 때 됐죠. 하하.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 작품이 저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여성이 성장하는 과정에 결혼, 임신, 출산, 육아가 있다면 그걸 여자의 시선 그대로 쓰여졌기 때문이에요. 그 모든 걸 감당하는 나의 입장을 그려낼 수 있어 재미있었어요. 많은 분이 거기에 많이 공감해주셨기에 배우로서 의미가 커요. 또 드라마에 ‘조동(조리원 동기)’ 역을 맡은 배우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그중엔 신인 배우도 있고, 오래 활동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친구들도 있어 이 드라마를 통해 그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길 바랐죠. 그래서 “엄지원 언니랑 했던 작품이 나에게 씨를 뿌린 작품이었어”라는 말이 나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 2가지를 모두 이뤄 정말 좋아요.
드라마를 보면서 왜 그동안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을까 의아했어요.
기존 드라마는 그 자체로 드라마잖아요. 허구성이 강하죠. 가장 흔한 이야기가 신데렐라 스토리인데, 그걸 여전히 많은 사람이 좋아해요.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지만, 보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이죠. 반면에 ‘산후조리원’이라는 공간은 아주 일상적이라 어떻게 보면 극적인 요소가 너무 없어 드라마 소재로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작품은 드라마틱한 신들과 소소한 개인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잘 버무렸어요. 특히 7화에 나온 쑥쑥이 엄마 에피소드는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드라마로 다루기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데, 그걸 미스터리한 구조 안에서 극적으로 잘 풀었죠. 또 현재 시류도 한몫한 것 같아요. 많은 여성이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뿐 아니라 나로서 존재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등장인물들이 처음엔 적대감으로 마주해도 ‘엄마’가 되는 순간엔 연대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좋았어요. 절대적으로 악한 캐릭터도 없었고요.
좋은 작품은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드라마 〈미생〉도 등장인물의 분량과 상관없이 모든 인물이 빛나잖아요. 저희 드라마가 작가님의 데뷔작이고, 감독님도 드라마 연출로는 두 번째 작품이지만 좋은 드라마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 쓴 글에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게 잘 연출해주셔서 재밌게 촬영했어요.
드라마 종영 인터뷰에서 연출가, 작가 두 분 모두 이 드라마를 통해 “서툴러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 메시지가 어떻게 다가왔어요?
누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잘 못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 능력치가 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건데, 절대적인 기대치에 맞추려다 보니 거기에 못 따라갈 때 스스로 불행해지는 거죠. 타인의 시선도 있지만, 나의 기준도 거기에 있기 때문에 더 괴로운 것 같아요. 사실 감독님과 작가님의 메시지도 공감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우리가 사는 이야기였음 좋겠다 싶었어요. 비단 엄마들의 이야기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표현됐으면 했죠. ‘오현진’이 출산과 육아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가 되길 바랐어요.
드라마에서 가장 공감했던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엄마와 현진이가 같이 등장하는 신은 다 좋았어요, 워킹우먼으로서 현진은 일을 열심히 하고 또 사랑하며 재능까지 있잖아요. 그녀가 맞닥뜨리는 현실이 인간 엄지원과 너무 비슷했어요. 대본이 1화만 나왔을 때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첫 장면에서 현진이 저승사자와 나룻배를 타는 장면도 좋았죠. 노산으로 애 낳다 죽을 고비를 넘긴 상황을 보여준 거잖아요. 현진이 어떤 인물인지 그 신에 너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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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를 생각하고 작품을 한 건 아니었어요. 배우로서 대중과 이야기로 소통할 수 있는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도전하고 싶었죠. 〈소원〉은 감히 상상도 안 되는 감정을 다룬 작품이었어요. 〈미씽〉도, 이번 작품도 그냥 ‘내가 만약에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까?’란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모두 모성애라는 코드보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내가 느끼는 걸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사실 모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고, 그 형태도 각자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냥 주고받는 사랑인 거죠.
배우로서 단단한 내면을 갖는 비결을 ‘일상을 잘 영위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본의 아니게 얼굴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을 누리지 못할 때가 있어요. 사람마다 생애 주기에 이루는 것들이 있잖아요. 결혼, 육아 등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이 따르는 패턴과 다르게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재미있을 수도 있고 더 힘들 수도 있죠. 그런데 일상과 닿아 있는 작품을 하게 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걸 배우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시청자나 관객이 ‘저거 아닌데?’라고 생각하면 작품과 현실의 갭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일상적인 경험을 잘해야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해요.
일을 안 할 때는 뭐든 열심히 배운다고 들었어요.
근원적으로 배우는 불안감이 있어요. 누군가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고, 그 기준이 이제는 너무 수치화돼 있죠. 전작의 스코어, 개런티, 팬덤 등. 나를 원하더라도 데이터에서 밀리면 내 재능과 노력에 상관없이 도태될 수 있어요.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아무도 날 안 써주면 어쩌지?’ 이런 불안감이 있죠. 그래서 쉴 때도 오롯이 쉴 수 없어요. 요즘은 뭔가 배우기보다는 전체적인 것들을 보려 노력하죠. 예전에는 배우, 매니저 등 각자의 일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체적인 기획이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같이 얘기해요. 배우지만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입장이 되는 거죠. 그렇게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새로워졌어요. 유튜브를 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그건 제가 온전히 콘텐츠잖아요. 누가 불러줘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 더 재미있어요. 최근 캐시미어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잘 모르는 분야지만 내가 입고 싶고, 생각하던 걸 만든 거죠. 배워가면서 만드는 게 재밌어요.
2019년에는 3개월간 뉴욕 어학연수를 다녀왔죠?
20대 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3개월간 자리를 비워 다른 사람에게 작품을 뺏길까 봐 두려웠죠. 여유가 있을 때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유는 절대 생기지 않더라고요. 결단을 내 내가 만드는 거죠. 이 나이가 됐는데도 어학연수를 너무 가고 싶으니까 그냥 해보자 싶었어요. 사실 영화를 하다 보면 해외 감독님이나 관계자를 만날 일이 많은데 통역하는 분이 있어도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부족해도 내가 직접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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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는 언제나 가슴 설레고 행복해요. 그리고 늘 반했기 때문에 또 작품을 택한 거예요. 이 남자는 내가 꼭 잡아야 하고, 딴 여자를 만나는 게 싫은 마음이에요.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지만, 막상 촬영 들어가면 연애가 그렇듯 힘들어요. 하하. 새벽에 촬영장 갈 때도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 다음엔 다시는 안 해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연애하면서도 너무 사랑하지만 싫고 미운 구석이 있고, 개중엔 덜 밉고, 특별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작품도 그래요. 작품이 끝나면 아무리 촬영하면서 힘들었어도 아쉽고 헛헛하기도 해요. 그 공허함이 감당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게 된 거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빨리 보낼 수 있게 노력하는 거예요. 그래야 다음 작품도 빨리 시작할 수 있으니깐요. 물론 애도 기간처럼 마음속에 더 담아둬야겠다 싶은 작품도 있어요. 이별이 쉬운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 나이대만 할 수 있는 작품과 역할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 마음이 들면 조바심도 날 것 같아요.
20대 때 그 얘길 왜 아무도 안 해줬는지 속상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연기가 있다고 많이 말하고 싶어요. 신인 때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가볍고 재미있는 연기보다는 무겁고 어려운 것에만 끌렸어요. 진짜 그 나이대만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매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조바심이 난다기보단 후회가 커요.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지금이라도 제 나이에 맞는 작품이 들어오면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엄지원이라는 배우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저를 보며 ‘저 배우가 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어. 저 배우가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좋은 작품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걸 목표로 걸어가고 있어요. 연기를 긴 마라톤이라 본다면, 지금은 하프 턴 정도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동료 배우들과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실제로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그냥 “우리 개런티를 누가 다 맞춰줄까?”라고 말한 적 있어요. 박원숙 선생님이나 선우은숙 선생님이 박근형 선생님한테 “근형이 오빠” 이렇게 부르는 거 보면 기분이 되게 이상해요. 근데 저희도 나중에 선생님 연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그렇게 보일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때 돼서 같이 연기하고 옛날 얘기하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이 돼 있을까요?
다행히 신인 때부터 작품에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어요. 김해숙 선생님, 손숙 선생님, 유동근 선생님, 정을영 감독님. 친구처럼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을 만났으니, 그분들처럼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