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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영은 이런 사람! 데뷔 20년 차 배우이자, 엄마. 곽선영과의 인터뷰

20년 차 배우와 엄마라는 자아 사이에서 꼿꼿하게 서 있는 배우 곽선영의 거침없는 여정. 그 안에서 만난 새로운 우주.

프로필 by 천일홍 2025.05.08

시간 참 빠르죠? 뮤지컬 <달고나>로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에요.

그러게요.(웃음) 올해로 데뷔 20주년이 됐다고 주변에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그 20년이 순간처럼 느껴져요. 시간이 안 가던 때도, 빠르게 흐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한순간의 장면처럼 남아 있죠.


20주년이 되는 올해 드디어 필모그래피에 영화를 올렸어요.

맞아요. 영화는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두 작품을 연달아 개봉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하고요. 운이 참 좋았죠.


<침범>과 <로비> 두 작품이죠. 사뭇 다른 결의 작품에서 상반된 모습의 배우 곽선영을 본 건 관객으로서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여러 인물을 연기해볼 수 있다는 것도 배우로서 느끼는 큰 행운이에요. 특히 <침범>이라는 작품을 통해 제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칭찬을 많은 분들께서 해주셨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역할 수행을 충실하게 잘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게 돼서 그런지 제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는 잘 인지하지 못하나 봐요.


‘역할 수행’에는 스스로 어떤 점수를 줬어요?

저는 제 삶에 만족이라는 단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야망이 넘치고 욕심이 많아서라기보다 여기서 만족을 하면 그냥 끝인 거잖아요. 부족한 점을 찾으면 그다음에 채워 넣을 수 있는 부분이 생기는 게 좋아요. 그래도 큰 스크린을 통해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아주 미세한 호흡, 눈 밑이 파르르 떨리거나 눈동자의 작은 움직임까지 잘 보여서 신기하더라고요. 인물의 심리 상태가 좀 더 전달이 잘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그 이야기를 할 참이었어요. <침범>의 ‘영은’은 어린 딸에게서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기이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발견하죠. 처음 그런 면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딸의 상태를 어떻게든 숨기려는 모습, 그러다 조금씩 지쳐가는 섬세한 표현들이 다 읽히는, 미묘한 긴장감이 좋았어요.

‘영은’을 연기하면서 목표는 명확했어요. ‘소현’이라는 딸아이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감정의 흐름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여기서는 이걸 더 해보고, 여기선 관객이 이렇게 봐줬으면 하니까 이런 식으로 해야겠다는 의도를 굳이 가지지 않고 대본대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너무나 훌륭한 파트너, ‘소현’을 연기한 기소유 배우에게서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죠.


셔츠 Recto. 팬츠 YCH. 타이 Nehera, Dior. 슈즈 Michael K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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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행동을 하는 딸로 인해 평화로운 일상이 흔들리는 ‘영은’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봐왔던 엄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죠. 그런 ‘영은’에게 모성애란 무엇이었을까요? 영화를 보며 전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정의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게 모성애인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나서 나도 모르게 생겨나는 감정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더 커지는 감정이기도 하죠. 그 사이엔 애증도, 고통도, 인내도, 무한한 사랑도 존재할 거예요. ‘영은’의 모성애엔 ‘나’와의 싸움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딸을 보며 보통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는지, 내 아이만 이상한 건지, 내가 유독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그럼에도 이 아이와 기필코 평범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그 혼란스러움에 어떻게든 맞섰을 테고요.


선영 씨 역시 엄마잖아요. 같은 엄마로서 ‘영은’에게 느끼는 동질감, 또는 측은한 마음도 있었겠죠?

있었죠. ‘영은’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소현’에겐 자신을 돌봐줄 엄마가 있잖아요. 물론 ‘영은’에게도 엄마가 있지만, ‘영은’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는 아니었으니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요.


엄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 건 <코스모폴리탄> 5월호의 주제가 ‘엄마’기 때문이기도 해요. 엄마로서, 또 배우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삶이란 어떤가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두 자아를 따로 두고 있지도 않고요. 그저 엄마가 되고 나서 변한 게 있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는 것? 아이가 생김으로써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처음 경험하는 감정도 분명 있거든요.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세상에 아예 없던 존재가 어느 날 제 앞에 나타난 거잖아요. 지금도 전 아이에게 종종 물어봐요. “넌 도대체 어디서 왔어?”(웃음)


어떤 대답이 돌아와요?

“마음속 우주에서 왔어”라고요. 한번은 제게 그러더라고요. “엄마랑 나랑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우린 서로 사랑하잖아요. 그게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라고 하는데, 정말 신기했죠. 저희는 서로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하곤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럼 제가 또 아이에게 말해요.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했어! 역시 베프!”


영혼의 단짝 같은 사이네요. 사실 전 아직 엄마가 되지 못해 그런지 그 감정이 미지의 세계처럼 다가와요.(웃음)

아이와 함께 어른이 돼가는 것 같아요. ‘어른’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완성체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끊임없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죠.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인생이 더 재미있고요. 아이로 인해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제 안의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것과도 같아요.


세상을 맑고 순수한 눈으로 바라봐야 우러나오는 말로 들려요. 선영 씨의 마음에 동화 같은 구석이 자리한다는 걸 느꼈던 지점이 있었어요. 언젠가 인생 영화로 애니메이션 <소울>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죠.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근처 어딘가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 것 같아 좋았다고요.

맞아요. 그 전엔 힘들면 그저 지구가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부끄럽게도 했던 것 같은데, 그 영화가 제게 가르쳐줬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겠다고. 행복을 느끼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재킷, 스커트 모두 Brunello Cucinelli. 이너 톱 Recto. 귀고리 Polène.

재킷, 스커트 모두 Brunello Cucinelli. 이너 톱 Recto. 귀고리 Polène.

요즘 선영 씨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곳곳에요. 아주 추운 날 정수기에서 온수 한 잔을 따라 마시는 것도 무척 큰 행복이고, 오늘 이렇게 멋진 사진을 촬영한 것, 그리고 지금 날 기다리고 있는 김밥.(웃음) 그게 행복이죠.


<코스모폴리탄>은 ‘Fun Fearless Female’, 유쾌하고 용감한 여성을 지향해요. 이 키워드를 곽선영에게 대입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요? 곽선영은 유쾌하고 용감한가요?

얼마 전에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이 있었어요. 그때 제 20년 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 동기 오빠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늘 씩씩하고 용감한 친구였다고요. 생각해보면 전 뭐든 씩씩하게 정면 돌파를 했던 것 같아요. 공연 들어가기 전에 하는 ‘드라이 리딩’이 있는데, 어떤 연기적인 접근 없이 대본만 읽는 그 과정이 전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작품에 뛰어들어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도 겁 없이 정면 돌파하는 걸 좋아했죠. (옆자리에 동석한 관계자) 요즘 아이스하키도 하세요!


와, 아이스하키를요?

네. 우연히 접하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상대 팀의 선수와 몸싸움을 해서 다치는 때도 있지만, 안 되던 동작이 오랜 연습을 통해 되는 순간엔 너무 신나요.


겁 없이 정면 돌파하는 성정이 운동을 할 때도 드러나네요.

그렇죠. 사실 얼음판 위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울 수 있는데, 그걸 극복해야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니까 이겨내야죠. 그래야 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요.


어느 순간 두려움이 느껴질 땐 스스로 어떤 말을 되뇌며 이겨내요?

어차피 다 끝날 일이니까 두려워할 시간에 열심히 하자! 부딪혀보는 거죠. 어쨌든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열심히, 이왕이면 잘하면 좋고, 잘하기 위해선 용감하게 도전하고 즐기자며 마음을 다잡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순’, <구경이>의 ‘나제희’,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의 ‘천제인’, <크래시>의 ‘민소희’… 배우 곽선영이 연기해온 인물들이 참 좋아요. 어딘가 대쪽 같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었죠. 무엇이든 용감하게 정면 돌파하는 배우 곽선영의 모습이 스쳐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모두 자기 삶을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이죠. 목표도 명확하고, 그래서 더 치열했던. 비록 그들의 삶에 큰 고비가 항상 하나씩은 있었지만요.(웃음) 그래서인지 극적인 인물은 아니었는데도 배우 곽선영을 여러 캐릭터로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그만큼 더 공감되는 인물.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죠.

베스트, 팬츠 모두 Barrie. 슈즈 Jimmy Choo. 반지 모두 Golden D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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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배우로서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다고 느껴요?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아요. 항상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고, 믿음이 가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변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전 지금의 제가 어디쯤 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여전히 시작점에 있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취향도, 결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캐릭터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죠. 배우로서 만남을 고대하는 작품이나 인물이 있나요?

저는 다 해보고 싶어요. 같은 피아노도 누가 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처럼 저로 인해 인물이 더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글라스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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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강렬한 액션 연기를 하는 곽선영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웃음) 영화 <아토믹 블론드>의 샤를리즈 테론처럼요.

너무 재미있겠다! 기회가 온다면 꼭 해볼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코스모폴리탄>에 ‘Fun’, ‘Fearless’라는 표현이 붙는 것처럼 곽선영이라는 이름 앞엔 어떤 수식이 오길 꿈꾸나요?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사람. 그거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엄마로서는요?

자식에게 부담이 안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자기 인생을 열심히, 즐겁게 사는 엄마?

트렌치코트, 스카프 해트 모두 Weekend Max 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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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엄마, 그 또한 곽선영이네요.

그러네요. 그것도 나니까. 나는 내 인생을, 너는 네 인생을 멋지고 즐겁게 사는 거죠.(웃음)

Credit

  • Feature Editor 천일홍
  • Photographer 장기평
  • Hair 장해인
  • Makeup 안세영
  • Stylist 이지나
  • Assistant 함상우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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