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무엇보다 K팝에 진심이라, 작사가 조윤경 인터뷰

2017년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받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K-pop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4.04.04
고등학교 시절 2002년 보아의 'Listen To My Heart'의 작사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태연, 샤이니, 카이, 레드벨벳, 더보이즈 등 다양한 K-pop 아티스트의 노랫말을 만들어왔다. 2017년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받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K-pop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고등학교 재학 중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 작사가 부분에 합격해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학창시절 줄곧 신화의 팬이었어요. 늘 음반을 샀는데 카세트테이프 사이에서 오디션 공고를 발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죠. 덜컥 합격한 후 회사에서 일본 곡의 한글화 작업을 맡기셨는데, 당시에 일본 곡을 수입, 번안해 발매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였거든요. 특별히 무언가를 배우거나 피드백을 주신 건 아니지만 글자 수를 맞추는 법, 가사의 큰 흐름을 보는 법 등 그 과정을 통해 가사를 쓰는 감을 익혀 나갈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작사를 접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기회였어요.

2002년 보아 'Listen To My Heart'로 작사로 데뷔하셨어요. 물론 그때도 고등학생이셨고요.
해당 시기에 작업했던 곡 중 하나였는데요. 당시 보아님께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난 직후의 국내 컴백이라 일본 앨범 수록곡 중 대표곡을 한국어로 녹음하는 상황이었어요. 저 역시 워낙 어렸을 때라 얼떨떨하기도 했는데 뿌듯하고 신나는 기분이 컸어요. 있는 그대로 충분히 기뻐했던 것 같아요.

작사가의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모든 곡이 동일하진 않지만 보통은 엔터사 A&R팀에서 가사 의뢰 관련 문의를 주세요. 어떤 아티스트의 곡인지 또 시안 수급을 희망하는 날짜는 언제인지 등을 일러주시며 작사 요청이 가능할지 문의가 와요. 수락하면 음원을 메일로 받아 약속된 날짜까지 가사 시안을 작업해 제출합니다. 물론 한 곡에 아주아주 많은 작사가가 시안을 내기 때문에 제출한다고 무조건 발매가 되는 건 아니에요. 내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제 시안이 채택되면 수정 보완할 부분들을 협의하며 최종 가사가 완성됩니다. 이후 녹음이 이뤄지죠.

정말 많은 곡을 작사하셨죠? 작업한 곡 중 가장 사랑하는 곡을 3곡만 꼽아본다면요.
매일 바뀌는데요. (웃음) 인터뷰하는 2023년 6월 27일 기준으로는 샤이니 ‘The feeling’, 더보이즈 ‘Thrill ride’, 태연 ‘너를 그리는 시간’ 이렇게 세 곡 뽑아 보겠습니다.

아티스트와 대중에게 작사가님의 가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그만의 특징이나 매력이 분명할 듯해요.
요즘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음, 가창자의 입에 착착 감기게 쓰는 건 자신 있어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랄까요? (웃음) 대중가요의 가사는 언뜻 보기에 활자로 표현되기에 글의 영역으로 여기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악에 더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리듬의 높낮이나 음을 끌고 가는 호흡 같은 것들을 섬세하게 고려해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야 가창하는 사람이 부르기 편하거든요. 멜로디 라인을 살려줄 수 있도록 발음을 디자인하는 건데 유음, 파열음 같은 것들을 잘 활용하면 멜로디를 훨씬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돌 앨범에 주로 참여하시기 때문에 트렌디한 감성, 단어 등을 끊임없이 쫓으실 듯해요. 특별히 노력하는 것이 있을까요?
덕질이요. 일부러 ‘노력’해 덕질을 한다고 말하긴 민망하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영상, 노래를 늘 접하고 트위터도 자주 들여다봐요. 트친들과 소통도 곧잘 하고요. 공연장에서 굿즈 교환 같은 것도 쫌쫌따리합니다. (웃음) 모두 제가 좋고 즐거워서 하는 것들이지만 K-pop 자체에 대한 현장감을 잃지 않는 데에는 팬덤 안에 있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팬들의 니즈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요. ‘나 트렌디할 거야!’, ‘나 오늘 소재 10개 킵할 거야!’하고 덤벼 봤자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마음을 열어 둔 채로 여러 가지 콘텐츠들을 즐기듯 보고, 최애를 부둥부둥하며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거죠.

K-pop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거군요. 그렇담 다가오는 파도와 마주하기 위해 작사가로서 갖춰야 할 역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K-pop에 대한 애정 그리고 지구력이요. 오랜 시간 일하면서 스킬적인 부분은 자연스럽게 늘어요. 그렇지만 작사가의 일 자체가 경쟁 시스템 안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과를 꾸준히 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한 곡이 발매되고 또 다음 곡이 발매되기까지 초조함과 조바심 같은 것들을 어깨에 짊어진 채 굳건히 갈 수 있는 지구력이 이 시장에서는 필요해요. K-pop에 대한 애정은 말할 것도 없죠. 많이 보고, 듣고 사랑해야 해요. 요즘은 작사학원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학원을 통해 들어온 곡들의 시안을 제출하며 입봉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입문 루트로 자리 잡았어요. 이 과정에서 정말 큰 비용이 발생하고 반복되는 좌절을 경험해요. ‘내가 이 일을 너무 하고 싶다’, ‘저 아티스트 너무 좋다’ 말고는 이걸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만큼요. 그래서 더욱 K-pop에 대한 큰 애정을 품고 있어야 해요.

무한히 사랑하는 것도 일로 할 때의 어려움이 있잖아요. 또 작사가는 끊임없이 선택을 받는 직업이라 그 어려움이 더욱 클듯해요. 20년의 시간 동안 작사가로 일하면서 슬럼프가 찾아온 순간도 있으셨죠?
슬럼프는 의식하는 순간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선택받아야 하는 시간 속에서 언제부터 인가 쌓인 나름의 맷집 같은 거예요. 어떤 일을 하든 특히 창작직은 일의 기복을 피할 수 없고,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물도 100% 채택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되려 ‘이게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왕왕 있어요. ‘일이 좀 힘든가’, ‘요새 내가 정체된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이 문득 들어도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오히려 부담감만 커지니까요. 그저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한 곡이 발매되고 그 뿌듯함으로 다음 곡을 마주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기분이 좀 가라앉으면 좋아하는 영상을 보거나 무언가를 먹는 식으로 쿨타임을 한번 보내면 얼추 회복됩니다.

작사가 이외에도 방송작가, 웹드라마 작가로 활동하셨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처음 작사 일을 시작할 때는 1세대에서 2세대 아이돌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어요. 지금만큼 아티스트도 작업할 곡도 많지 않았죠. 물론 제가 작업한 곡 또한 많지 않아 작사의 수입이 많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작사는 무언가와 함께 겸업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섰습니다. 대학 재학 중 인턴으로 일한 회사에서 만난 작가님께서 제게 “방송작가를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추천해주셨어요. 회사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방송아카데미를 등록했는데 운이 좋게도 수강이 끝날 무렵 공백 없이 MBC 예능국으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일을 하면서 작사를 병행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처럼 작사가라는 직업을 받아들였어요. 소설 <너의 세상으로>, 자전적 에세이 <그럴 때 우린 이 노랠 듣지>를 출간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삶의 일부로 노랫말을 만들며 느낀 작사가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소녀시절부터 너무나 사랑했던 K-pop의 일부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근래 K-pop은 단순히 한 곡의 노래를 넘어 종합예술의 영역에 가까워져 있거든요. 기획, 곡, 가사, 안무, 연출, 의상 등 모든 것들이 한 데 맞물려 돌아가며 아주 많은 사람이 무대라는 하나의 별을 향해 전력 질주한단 말이죠. 제가 썼던 가사가 최상의 아티스트를 만나 최고의 무대로 구현되는 걸 보았을 때의 짜릿함은 정말 피가 뜨끈해진다 싶을 정도로 굉장한 일이예요. 현실적인 매력도 꼽아본다면 시안 가사를 쓰는 동안 혼자 일하기 때문에 마음에 맞지 않는 누군가와 부딪힐 일이 없고 시간 활용도 자유롭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면 수입적인 부분도 일반 직장인보다 좋은 편이고요. 하지만 역으로 책임도, 좌절도 오롯이 저의 몫이죠. 시간 활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일과 일상의 분리가 불가능하고 자리 잡기 전까진 직장인보다 수입이 한없이 초라하거나 매달 들쭉날쭉할 수 있어요. 명암이 너무나 뚜렷한 직업이에요.

그럼에도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직업의 ‘명(明)’이 크기에 오랜 시간 작사가로 일하셨군요. 대중의 뇌리에 어떤 작사가로 각인되고 싶으신가요?
‘현역’ 작사가요. 제가 교복을 입은 채로 입봉했기 때문에 제법 오랫동안 이 일을 했어요. K-pop이라는 것 자체가 어쨌든 1차 타깃이 10-20대로 두기 때문에, 20대 후반 혹은 30대가 되면 제가 이 일을 못할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죠.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가 그 시기를 한참 지나 있더라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퍼블리싱이나 작사학원 경영 같은 곳에 눈을 돌리지 말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현역으로 필드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하게 되었어요. 지금 일을 시작하는 어린 작사가들이 제가 버틴 시간들을 보며 “저 나이까지도 이 일을 할 수 있구나”라며 안심하고 따라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사가 조윤경님에게 물었습니다!

🔍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멜론 차트와 다양한 홈마(Homepage Master) 계정.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2~3시간.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멜론, 트위터, 인스타그램.

Credit

  • Freelance Editor 유승현
  • Photo 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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