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 언니들의 현장 모습은? 땀 흘리는 여성 노동자의 진짜 이야기

한국전력 충북 단양 지사, 국내 유일의 여성 배전 기술자가 근로하고 있는 지역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아랑곳 않고 작업을 이어간다. “365일,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끼며 업무를 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요. 제가 현장을 지키고 있기에 사람들이 전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명감과 자부심이 동시에 들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는 활선차에 올라탄 그가 전봇대 높이까지 올라갔다. 13년 차 베테랑 기술자답게 전기가 흐르는 활선을 한참 뒤적이며 점검하더니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한국전력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사무직이었어요. 현장팀이 작업하는 서류들을 정리하고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는 업무를 했죠. 그러다 현장직 근로자들의 업무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가슴이 뛰더라고요. 저도 현장에 나가서 발로 뛰고 싶었죠. 곱지 않은 시선들을 이겨가며 공부하고 기술을 닦았어요.” 수많은 현장에서 이 일을 하다 보면 이아롬 씨 대신 남성 작업자를 찾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게 듣는다. “그런 고객을 한번 만나고 나면 그날 하루는 종일 힘이 빠진 상태로 일을 해요.” 이렇게 여성으로서 편견과 싸우는 일뿐만 아니라 체력적 한계도 피할 수 없다. “폭염에도 무겁고 답답한 방염복과 장갑을 착용하고 절연화까지 신고 일을 하니까요.” 물리적 힘의 차이가 느껴질 때는 동료에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하고, 같은 한계에 또다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약점을 꾸준히 보완한다고. “현장 일을 시작한 뒤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부분들까지 누군가의 땀방울로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노동의 숭고함에 대해 깨달을 때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에도 자부심을 느껴요.” 전기 기술자 이아롬 씨가 마음에 품은 야심은 뭘까? “우리나라 국민이 안전한 전기를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언젠간 ‘기초 전기 교육’을 주제로 책을 내고 싶어요. 전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작업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요.”

“먼지가 너무 많죠?” 어수선한 인테리어 공사 현장은 각종 자재에서 나온 먼지가 자욱하게 껴 숨 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조금 어두운 이야기긴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어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다 현장 기술직을 떠올렸죠. 그때는 이렇게 막노동을 하게 될 줄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지금은 웃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생각보다 더 거친 공사판이라 덜컥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도 아니었고, 어린 여자라고 무시당하기도 싫어서 ‘반삭’을 할까 고민도 했었어요.(웃음)” 필름 시공은 필름을 붙이는 것보다 붙이기 전에 하는 밑작업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편이다. 필름 자체가 굉장히 예민한 자재라 시공하는 면이 말끔하지 않으면 결과물 역시 깔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섬세함이 굉장히 많이 요구되는 작업이에요. 면이 고르지 못한 곳은 메우고 샌딩하는 전초 작업이 본작업보다 더 오래 걸릴 때도 있죠.” 원래 손끝이 좀 둔한 편이라 이 일이 적성에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버텨오다 보니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업체, 클라이언트들도 늘었다고. “유튜브로 일하는 모습을 올린 영상들이 포트폴리오가 돼 일이 많이 들어와요. 게다가 구독자분들에게 많은 응원도 받고 있죠.” 기술자에게 6년은 그리 긴 경력도 아니라며 겸손함을 내비치는 그지만, 뚝심 있게 버텨온 지난날들은 권예진 씨의 앞으로를 시사한다.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 지금도 어려운 기술들을 하나씩 익힐 때마다 몰려오는 성취감으로 이 일을 하죠. 언젠간 가장 성공한 기술직 여성으로서 사업체를 이끄는 CEO가 되고 싶어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가면 시멘트와 레미탈을 이용해 돌이나 나무 모형, 동굴을 재현한 조각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작업을 하는 GRC(유리섬유보강시멘트) 조각사, 쉽게 말하면 시멘트 조각을 하는 사람이에요. 오늘 현장은 가평에 새로 생길 캠핑장인데, 리셉션장이 될 공간을 동굴 느낌이 나게 작업하고 있죠.” 일을 수주하고 완성하기까지 약 4주가 소요된다고 치면, 그중 절반은 전초 작업을 하는 일이다. “구조 작업과 초벌까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결과물의 뼈대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늘 초반 작업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에요.” 이 공사 현장에서도 최봉석 씨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보니까 여성분들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이 업계가 많이 보수적이랍니다.(웃음) ‘여자가 현장에 나와서 뭐해’라는 말은 지금도 들어요.” 그럼에도 그가 이 일을 정말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쉴 때는 시멘트를 나르기 위한 등 근육과 코어를 단련하고자 ‘폴댄스’를 하고, 해외의 다른 GRC 작업자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국내에는 같은 일을 하는 기술자가 몇 없으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살짝 망설여져요. 정보를 캐내는 것 같고, 상대가 불편해할 수도 있잖아요. 백화현상은 어떻게 해결하고, 코팅제는 뭘 쓰는지, 그런 것들을 해외 기술자들과 교류하며 인사이트를 얻죠.” 그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책상 앞에서 기획을 하는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훨씬 멋져 보였고, 대학 시절에도 그런 직업을 꿈꿨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저 ‘막노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현장에 나와 일을 하다 보니 웬만한 전문성과 일에 대한 감각 없이는 힘들더라고요. 노동의 신성함과 노동자의 직업 정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됐죠.”

“한번은 문자메시지로만 소통하던 인테리어 소장님과 일을 하게 돼 아침 6시부터 50km 거리를 달려 현장에 도착했는데, 소장님이 여자 작업자는 안 된다며 거절하셨어요. ‘남자가 하는 것들은 다 할 수 있어요’라고 어필했지만 불편하다며 끝내 돌려보내셨죠.” 여자라서, 어려서, 연차가 낮아서 함께 작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지난날을 되짚어보면 여전히 속상하다고. “목수에 도전하기 전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였어요. 의뢰가 들어오면 기획과 설계 브랜딩 등의 업무를 수행했죠. 그러다 현장 업무까지 직접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목수 학원에 등록했어요. 목수 커뮤니티 카페에 첫 구직글을 올렸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그가 목수로서 처음으로 일을 나간 현장에선 오전 내내 석고보드, 각재, 장비 등을 ‘양중(각종 장비를 옮기는 일)’하는 일만 했다. 현장에 한번 다녀오면 3일 정도는 앓아눕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남성과는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이 체격과 힘에서 차이가 나요. 그럴 때면 그들이 하는 몫만큼 최대한 따라 하려고 이를 더 악물죠.” 구조 이해 능력, 상황 판단력, 순발력 그리고 힘. 반나라 씨가 꼽은 목수로서 일을 할 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이다. “전문성을 갖췄다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거래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아직 불편한 인식과 성차별이 존재하는 공사 현장에서 여자 목수가 아닌, 그냥 ‘목수’ 그 자체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의지는 반나라 씨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언젠가는 팀을 꾸리고, 그 팀을 기업화해 목수들이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운영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