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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박세리처럼, 일단 밀고 나가세리~

타지의 드넓은 필드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암흑기에 빠진 한국을 멱살 캐리했던 골프 황제는 이제 묵묵히 뒤에서 후배들을 밀어주려 한다.

BYCOSMOPOLITAN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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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이틀 전인 월요일 광주와 무안에 다녀왔다고요. 〈노는 언니〉 촬영이 있었어요. 요즘 회사 일도 바쁜데 새로 시작하는 방송이 많아요.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와일드 와일드 퀴즈〉와 2월 14일 첫 방영 예정인 〈쓰리박: 두 번째 심장〉(이하 〈쓰리박〉)까지 동시에 3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죠. 처음에는 방송 출연을 망설였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망설이고 있어요. 방송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앞으로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방송이 쉽지 않더라고요. 엄청 어려워요. 
 
그런가요? 시청자들이 보기엔 박세리는 예능에서도 그냥 박세리예요. 늘 편안해 보이거든요.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원래 직업이 방송인이 아니다 보니까 말을 직설적으로 하잖아요.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바로 그런 부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늘 조심하게 되는 면이 있죠. 그냥 보고 느낀 그대로 표현하거든요. 
 
그 점을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하죠. 직설이 박세리의 예능캐로 자리 잡았어요.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하는 걸 제가 얘기해버리니까요.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게 좀 더 편해졌겠죠. 여성 팬들이 정말 많아진 걸 느껴요. 
 
최근에 SNS에서 팬클럽 이름 공모를 했어요. 아직 팬클럽 이름이 없었다니. 제가 한창 선수 생활을 할 때는 팬클럽 같은 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요즘은 저희 매니저가 소통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SNS도 개인 채널도 시작한 거죠. 
 
〈쓰리박〉 같은 경우 박찬호, 박지성 그리고 박세리의 새로운 도전이 콘셉트예요. 다른 두 분은 각각 골프, 사이클링을 택했는데 감독님은 요리를 택했더군요. 그 점 역시 팬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예요. 선수 생활하면서 워낙 큰 사랑을 받았고 제게 그게 너무 힘이 됐으니까, 반대로 보답해드릴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SNS를 열심히 하지만 진짜 소통이라 하기엔 부족하죠. 이번 방송은 ‘세리 테이블’에 사람들을 초대해 제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같이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에요
 
〈와일드 와일드 퀴즈〉에서는 퀴즈를 맞혀야 음식을 먹을 수 있던데, 자꾸 틀려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를 못 먹고 입맛 다시며 라면을 끓였죠. 방송으로 볼 때는 굉장히 간단한 문제 같은데 현장에서는 기계음이라 잘 안 들리기도 하고, 괜히 ‘속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꼬아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워낙 출연진이 다 재미있어 엄청 웃으면서 촬영해요. 촬영을 한다기보다 제가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을 보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조금 전 촬영 현장에서도 엄청 웃던데요. “웃는 게 예쁘세요”라고 칭찬을 하면 “웃는 게 제일 편하니까”라며 멋쩍어하시고요. 원래 잘 웃어요. 선수 생활할 때는 그렇게 못 했지만. 
 
1998년 US 여자오픈 우승을 지켜본 세대에겐 IMF 시기 영웅이지만, 예능으로 박세리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호쾌하고 여유로운 모습의 ‘리치 언니’죠. 요즘에는 어린 학생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많이 알아봐요. 유튜브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어딜 가나 마스크를 쓰는데도 알아본다는 게 참 신기해요. 
 
골프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20대도 라운딩을 많이 나가죠. 감독님 영향도 있을 거예요. 제가 인정하긴 민망하지만 주변에서 워낙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해주시죠. 하하. 
 
감독님이 생각하는 골프의 매력이 뭐예요? 끝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것. 절대적으로 자만할 수 없게 만드는 스포츠죠. 어제 내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오늘은 그게 내 것이 아니에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전과 오후가 다른 것처럼 끊임없이 반전이 생겨요.
 
골프의 그런 특성이 성격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가끔 초월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의외로 골프를 하면서 완벽주의자처럼 변했죠. 최고가 되려면 내가 스스로 나를 다잡아야 하니까, 어느 순간 나를 점점 더 틀 안에 가둬놓게 됐어요. 해야 할 것에 대해 정확히 정리가 돼 있어야 하는 성격이죠. 하다못해 장 보러 가서도 뭘 하나만 사는 법이 없어요. 그런 습관이 장점도 있지만 피곤한 면도 있죠. 
 
은퇴 후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줄로 알았는데, 그런 면이 있었군요. 물론 그때보다 지금 더 즐기고는 있죠. 선수가 아니니까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밥을 한 끼 먹어도 편히 먹고.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는 거예요. 
 
뭐랄까, 인생의 한 막을 미련 없이 잘 끝낸 사람의 여유가 느껴지거든요. 정확해요. 선수 시절 언젠가 ‘한 3년 정도만 더 하면 미련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없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었어요. 그때쯤 은퇴하면 내가 다른 걸 할 수 있는 알맞은 나이가 되지 않겠나 싶었죠.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시기. 모든 게 다 잘되지는 않겠지만 배우면 되니까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했던 것 같아요. 
 
이후 후배 양성을 위해 바즈인터내셔널을 설립했고, 〈박세리의 내일은 영웅-꿈을 향해 스윙하라〉라는 골프 스타 육성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도 시작했죠. 가능하다면 더 많은 선수를 발굴하고 싶어요. 숨어 있는 보석이 많은데, 저희가 일일이 찾아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생각한 프로그램이에요. 후배 육성이 제 가장 큰 꿈이니까요. 
 
평생 직업이 희귀한 시대가 됐잖아요. 20대 때 시작한 일을 40대 돼도 할 수 있을까, 다음 단계로 넘어갈 타이밍은 언제가 좋을까, 미련 없이 지금 단계를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잘하는 걸 찾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건 자신만이 아는 거예요.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시작하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해봐야죠.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저 얻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무조건 힘들고 그만큼 어렵고 좌절감도 들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거죠. 근데 그게 싫어 ‘이게 안 맞는 것 같아’ 하며 다른 걸 시작해도 처음엔 다 똑같거든요. 운동선수들이 내 종목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같다가도 막상 그만두고 다른 걸 하면 내가 했던 게 가장 편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직장인들이 퇴사 고민을 하듯 운동선수들도 종목 변경을 고민하나 보네요. 기본 체력이 있으면 뭐든 잘할 것 같지만 절대 안 그래요. 써야 할 근육이 확연히 차이가 나니까. 내가 어느 누구보다 힘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다른 종목으로 넘어오면 최약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감독님은 최근에 발레를 새로 배웠다고요. 자세 교정에 좋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은 아무래도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쉽거든요. 기본 발레 동작에서 꼿꼿이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 운동이 많이 돼요. 
 
은퇴하고 나서 한동안 운동을 멀리했다고요. 선수 시절엔 골프 외에도 체력 관리차 운동을 많이 했거든요. 눈뜨면 운동하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운동을 했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감독님을 늘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뭔가요? 가족이 제일 크죠. 선수 생활할 때는 가족의 희생이 엄청나요. 
 
대중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일화가 많이 알려졌죠. 아빠 때문에 골프를 시작했지만 엄마가 항상 뒤에서 묵묵히 도와줬어요. 골프 막 시작해서 대회 다닐 때나, 프로 돼서 떨어져 생활할 때나 마음은 늘 같이 있었을 거예요. 해외에서 경기를 해도 경기 끝날 때까지 안 주무시고 계속 보고 계셨어요. 제가 긴장할 때 같이 긴장하며 기다리고, 성적이 좋을 때 같이 기뻐하고, 부상당하면 제가 아파하니까 또 부모님이 얼마나 아파했겠어요. 
 
덕분에 감독님도, 뒤이어 많은 여성 골퍼도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이제는 인정을 해준다는 게 기쁘죠. 골프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남자 위주였던 직업군에 여자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방송 촬영을 하다가도 요즘은 여성 PD가 부쩍 많아진 걸 느껴요. 여자들도 이제 자연스럽게 세상에 보여지고 능력 있고 인정받는 시대잖아요. 그러니까 여자도 당당해지고 하고 싶은 말 해도 괜찮아요. 
 
‘골프 황제’에 ‘리치 언니’라는 캐릭터가 더해져 새로운 ‘박세리’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지금의 박세리처럼 살고 싶은 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자신감이 최고예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줘야 해요. 저도 처음에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지만 강한 사람이 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으니까 스스로 만들어온 캐릭터예요. 내가 나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면 똑같이 목소리를 내도 잘 안 들려요. 그런데 내가 자신감 있게 얘기하면 물리적인 목소리가 작아도 잘 전달돼요. 너무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설령 모르는 게 생기더라도,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게 아니니까요. 물어보고 배우면 되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죠. 남의 시선을 의식해 모른다는 얘길 못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안 그래도 돼요. 그럴수록 의외로 옆에서 잘하고 있다 더 등 두드려줘요. 
 
박세리를 이루는 건 자신감인가요? 자신감을 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나 자신을 컨트롤하는 힘이에요. 
 
박세리(바즈인터내셔널 대표,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X세대 혹은 그 이전 세대에겐 ‘골프 여제’로 기억되고, MZ세대에겐 ‘리치 언니’로 각인됐다. 2016년 은퇴 후 오래 구상했던 골프 교육 콘텐츠 회사 ‘바즈인터내셔널’을 설립했고 지금은 동시에 4개의 예능 프로에 고정 출연하며 인생 제2막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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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하예진 / 김예린 / 김지현 / 류진(프리랜서)
  • art designer 박유진
  • photo by 표기식
  • Stylist 엄아름
  • Hair 서일주(누에베 데 훌리오)
  • Makeup 이지율(누에베 데 훌리오)
  • Assistant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