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젠틀몬스터, 마뗑킴.. K-패션의 특이점
팬덤 문화와 덕질이 합쳐져 하나의 장르가 된 K-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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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울은 일주일 내내 옷을 갈아입었다. 앤더슨벨은 덕수궁 돌담길을 런웨이로 동서양의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이튿날 로에베와 생 로랑, 버버리 매장에서는 아트 전시가 이어졌고, 입장 대기줄은 청담사거리를 따라 늘어섰다. 홍천사에서 열린 빅팍의 쇼는 절집 마당을 런웨이로 삼아 SNS에서 수만 건의 리그램을 낳았다. 같은 시각 한남동의 메종 마르지엘라, 북촌의 르메르 매장에서는 공연과 파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2026 S/S 서울패션위크와 프리즈 서울 2025가 시기를 같이한 까닭이다. 25주년을 맞은 서울패션위크는 ‘서울다움’을 내걸고 명소들을 런웨이로 탈바꿈했고, 이 장소들을 조명하는 AI 영상이 서울의 전광판을 장식했다. 같은 시기 하우스 노웨어, 무신사, 웰던, 렉토 같은 ‘국가대표’ 브랜드들은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이나 새 시즌 론칭 이벤트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차려입은 군중은 이동하며 근사한 일주일을 즐겼다. 예술과 패션이 한데 섞인 모든 순간은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를 타고 빠르게 공유되며 도시의 공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DDP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간으로 런웨이를 확장하는 게 목표였어요. 프리즈와 같은 기간에 열리다 보니 풍성함이 배가됐죠. 행사를 치르면서 K-패션의 존재감 자체가 서울의 대명사임을 느꼈어요.” 서울패션위크 PR 관계자가 말했다.
이 풍경은 곧 K-패션의 정체성이다. 서울 패션은 밀라노와 파리 같은 전통적 패션 수도와 달리 장인의 손길, 유구한 히스토리, 시즌 단위의 콘셉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K팝과 셀러브리티, SNS가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현상 속에서 옷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이자 매개가 된다. 만들어 소란스럽게 세상에 내보이고, 그 소식을 실어 날라 그 옷에서 비롯된 유행에 합류하는 행위까지가 포함된 것이다.
결국 K-패션의 핵심은 속도다. 강남 카페에서 유행한 메뉴가 일주일 만에 전역으로 퍼지듯 K-패션 역시 같은 리듬을 따른다. 2024년 여름, 뉴진스 민지가 입은 마뗑킴의 크롭 톱은 사진이 올라온 지 48시간 만에 온라인 몰에서 전 사이즈가 품절됐다. 디스이즈네버댓×뉴발란스 2002R 스니커즈는 발매 당일 새벽 줄서기가 생겼고, 일부 모델은 발매 직후 3배 가격에 리셀되며 ‘속도의 경제학’을 증명했다. 셀렙이 입고, 팬덤이 퍼뜨리고, 플랫폼이 공급망을 확장하는 K-패션의 순환 고리는 불과 일주일이면 완성된다. 전통 패션 시장이 시즌 단위로 움직이는 것과는 타임라인 자체가 다른 셈이다.
그래서 K-패션은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고, 끊임없이 바뀐다. 차라리 동네별로 무드를 읽는 게 정확하다. 강남이 콰이엇 럭셔리를 표방한다면 성수는 Y2K 무드를, 홍대는 빈티지와 스트리트 에너지를 흡수하는 식이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이라는 말은 이제 무색해요. 저조차 놀랄 만큼 빠르게 아이템을 공수할뿐더러 자기 입맛에 맞게 재창조해 입는 게 요즘 젠지들의 특징이니까요.” 스타일리스트 김수린이 덧붙였다.
K-패션의 무드를 좀 더 들여다보면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먼저 준지, 우영미, 로크, 혜인서, 민주킴 등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정통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속한 하이엔드다. 두 번째는 스트리트 기반이다. 디스이즈네버댓은 여러 협업 모델을 출시와 동시에 완판시키며 국내외 리셀 시장에서 화제를 모았고, 아더에러는 자라 협업 라인으로 스페인과 중국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 마뗑킴, 미스치프 역시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빠른 드롭 전략을 이어가며 로컬 감성을 세계로 확장했다.
세 번째는 무신사, 에이블리, W컨셉 등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다. 2024년 기준 거래액 4조원을 돌파한 무신사는 2025년 일본 시장에서 114%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한국 패션 유통의 새로운 배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브랜드 론칭뿐 아니라 동대문 기반 브랜드를 디자이너 레이블로 키워내는 토양 역할도 하고 있다. 파페치, 매치스패션, 에센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 명품 편집숍이 줄줄이 힘을 잃는 와중에 보여주는 성장세라 더욱 고무적이다.
마지막으로 셀러브리티·인플루언서 브랜드도 빼놓을 수 없다. K팝의 최초 청취자로서 (농담을 보태) 대부분의 MZ세대에겐 팬덤 문화와 ‘덕질’이 DNA에 새겨져 있을 터. 덕질의 대상이 제작에 참여한 아이템을 소유함으로써 유대를 형성하려는 욕구의 역사는 유구했다.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은 나이키와 함께 굵직한 협업 제품을 내놓으며 팬덤의 줄서기를 만들었고, 2023년엔 제이콥앤코와 협업한 펜던트로 럭셔리 주얼리 시장까지 세를 확장했다. 모델 서지수의 코이세이오 같은 신생 브랜드들도 이 흐름에 합류하며 팬덤과 밀착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K-패션의 갈래들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이엔드&스트리트, 글로벌 브랜드 간의 협업은 두말할 것 없고, 파프롬왓과 조거쉬 등 팬덤 있는 국내 브랜드들이 무신사에서 한정 발매하는 이벤트는 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팬덤과 마니아, 셀렙의 피드는 마치 편집부처럼 실시간 콘텐츠를 쏟아내 각자의 영역을 겹치고 섞이게 해 K-패션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고 있다.
최근 문을 연 하우스 노웨어는 이름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아이덴티티를 표방한다. 젠틀몬스터를 중심으로 모회사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브랜드인 어티슈, 탬버린즈, 누데이크, 누플랏이 모두 집결한 복합 리테일 공간이다. 건물 전체를 감싼 유리와 금속 파사드, 내부 곳곳에 설치한 초대형 조형물은 이미 성수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오프닝 세리머니에는 틸다 스윈튼과 FKA 트위그스, 그리고 에스파 카리나, 스트레이 키즈 필릭스 같은 K팝 스타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SNS에는 개장 직후부터 인증샷을 올리려는 방문객이 줄을 이었고, 탬버린즈의 핸드크림과 누데이크 디저트는 행사 당일 매진을 기록했다. 선글라스로 출발했던 브랜드가 이제 뷰티와 디저트, 리빙 영역까지 확장해 ‘문화적 월드’를 구축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건 차원을 넘어선 스케일이란 걸 실감했어요. 설치 작품이나 외관을 카메라에 담는 손님들을 보면서 쇼핑을 넘어 이 현장에 속해 있음을 즐긴다는 것도 느꼈고요. 해외에서 찾아온 취재진과 인플루언서까지 가득하니 마치 영화제 레드 카펫 현장에 있는 듯했습니다.” 오프닝 이벤트를 진행한 관계자가 소감을 전했다.
빠르게 퍼지고 동시에 공유되며, 곧바로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K-패션만의 속도와 상호작용이 이 공간 안에 응축돼 있다. 음악 신에서 K팝을 ‘믹스 팝’이라 별칭하는 이유는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섞는 힘 때문이다. K-패션 역시 다르지 않다. 하이엔드와 스트리트, 플랫폼과 셀렙 컬처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현재형 패션은 ‘믹스 패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속도로 움직이고, 믹스로 완성되는 패션. 세계가 가장 먼저 실험하는 무대, 불확실함이 가장 확실한 매력인 장르가 바로 K-패션이다.
Credit
- Editor 서지현
- Photo By 브랜드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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