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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이영숙&조서형, ‘덜어냄의 미학’에서 피어난 감동의 대결!

승과 패, 찰나의 평가가 지나간 자리엔 짙은 여운이 남았다.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의 여경래&박은영, 이영숙&조서형, 파브리&박성우의 완벽한 케미스트리.

프로필 by 천일홍 2024.10.18

(이영숙)재킷 Studio Paul&Company. 셔츠 Cos. 리본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조서형)의상 모두 Dolce&Gabbana.

(이영숙)재킷 Studio Paul&Company. 셔츠 Cos. 리본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조서형)의상 모두 Dolce&Gabbana.

이영숙&조서형
예상했겠지만, 두 분을 이렇게 모신 건 흑백 대전에서 보여준 멋진 대결 덕분이었습니다. 내내 감탄하면서 봤어요.
조서형(이하 ‘서형) 저는 처음에 흑수저, 백수저 팀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구도인 걸 전혀 모른 채 촬영장에 갔어요. 선생님은 아셨죠? 100명의 셰프가 모여서 요리를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백수저 팀에서 선생님이 올라오시는 거예요. 마냥 팬심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던 것 같아요. 선생님과 대결을 하게 될 줄은 몰랐죠.(웃음)
이영숙(이하 ‘영숙’) 저도 흑백으로 나누어진다는 건 당일에 알았어요. 우리가 비록 경쟁하는 프로그램에서 만났지만, 대결이라는 생각은 뒷전이었던 것 같아. 그저 이렇게 많은 셰프들과 인연이 돼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형 셰프와의 대전도 그랬고요.

요리를 잘 모르는 시청자 입장에선 ‘우둔살’이라는 주재료를 보고 어쩜 저렇게 빠른 시간 안에 요리할 음식을 정할까, 너무 신기했어요.
서형 경험치죠. 그리고 선생님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랄까요.(웃음) 사실 선생님과 흑백 대전 매칭이 되고 나서 ‘트러플 같은 정통 양식 재료는 나오지 말아라’ 그 생각뿐이었어요. 한식과 어울리는 재료가 나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영숙 우리는 한식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한식과 잘 맞는 재료가 나와서 이걸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죠. 그 순간에도 내가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형 저도요. 근데 또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전 아시다시피 굉장히 화려한 플레이팅을 준비했잖아요.(웃음) 심사위원 두 분이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많이 됐죠.

그 대목에서 명대사가 탄생했죠. 덜어냄의 미학.
서형 맞아요. 제가 한식을 10년 가까이 해오면서 느끼는 건데 양념을 덜어내면 결국 맛의 내공이 깊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경연에서 많이 보여주려 했던 건 짧은 순간 안에 제가 준비한 맛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는데, 그 순간에 또 한 번 깨달은 거예요. ‘10년 동안 한식에 대해 많은 걸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난 덜어냄을 몰랐구나’ 하는 걸요. 그래서 그 말이 자동으로 나왔던 것 같아요.
영숙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 이렇게 한식에 애정을 가지고 요리를 한다는 게 참 기특하기도 하고요. 요즘 젊은 사람이 한식 하는 일이 없잖아요. 참 예뻐요.

선의의 경쟁을 펼친 셰프 대 셰프로서, 서로의 강점을 이야기해보면 어때요?
서형 이번에 대결하면서 선생님은 재료 본연의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전 우둔살의 뻑뻑함을 감추려고 다양한 식감과 향을 가진 채소와 잎을 썼는데, 선생님은 미나리와 우둔살을 쓰셨죠. 우둔살 본연의 맛을 살리는 선생님의 선택을 보고 무척 놀랐어요.
영숙 뻑뻑한 식감을 감안해 그렇게 요리했다는 건 그만큼 서형 셰프도 셰프로서 내공이 쌓였다는 말 아니겠어요? 너무 대단하죠.

코트 Eenk. 스커트 Lehho. 셔츠, 타이,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 Eenk. 스커트 Lehho. 셔츠, 타이,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맞아요. 서형 셰프님도 우둔살의 특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채소의 식감으로 보완하고자 한 거죠.
서형 아유, 감사해요. 그런데 전 시간과 경험은 못 이긴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식을 30년, 40년 해가면서 선생님과 같은 셰프가 되고 싶어요. <흑백요리사> 마지막 편에서 선생님이 “아직까지 내가 음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거, 그게 제 자랑이자 보람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따라 몇십 년 더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어요.

서형 셰프님 말대로 한길을 꾸준히 간다는 게 요즘 세대에겐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된 것 같아요. 영숙 셰프님에게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됐나요?
영숙 호기심이었어요. 요리사로서 재료를 탐구하는 것, 거기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버섯 농사를 짓게 되면서 버섯에 대한 호기심도 또 한 번 생겼죠. 버섯을 가지고도 만들 수 있는 게 정말 많거든요. 예를 들면 젤리도 만들 수 있어요. 묵도 만들 수 있고, 아이스크림도 만들 수 있고요. 남들이 보고 그게 무슨 연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 딴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힘이 됐죠.

요리라 하면 그저 맛이 다일 거라고 생각한 적 있었어요. 하지만 영숙 셰프님이 요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맛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이 요리를 채운다는 걸 새삼 알게 됐어요.
영숙 시간과 정성이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한식의 기본 밑바탕이 되는 재료가 발효되는 시간, 식재료와의 궁합을 생각해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이를 생각하며 준비하는 시간, 완성된 접시에 그 음식을 담기까지의 정성. 그게 접시 위에서 하나하나 다 드러나죠.
서형 마음가짐이 음식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식을 하는 사람의 기분이 음식에 티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귀찮을 때 대충 해 먹는 밥과 집에 초대한 손님을 위해 정성껏 고깃국을 끓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죠.

두 분은 셰프이자, 하나의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해요. 직원을 이끄는 건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과는 다른 힘을 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영숙 할머니께서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했어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근데 이렇게 농사를 짓고 회사를 운영해보니 곳간을 아낀다고 해서 아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인심만 잃을 뿐이지. 손님들에게 아낌없이 베풀면 그건 반드시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레더 드레스 Isabel Marant.

레더 드레스 Isabel Marant.

서형 셰프님은 공감하는 표정이네요. 지난 코스모와의 인터뷰(‘1990년대생 여성 창업자들’ 특집)에서 성공의 정의를 ‘나눠줘도 아깝지 않은 삶’이라 말했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연말 보너스를 ‘플렉스’했다는 일화와 함께.
서형 저희 아버지가 늘 하시는 말씀이기도 해요. 직원들은 대표인 저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이잖아요. 제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베풀고 노력해야 팀이 더 오래, 그리고 잘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한식을 하려고 하는 셰프들이 거의 없잖아요. 아무리 외국에서 한식이 열풍이라고 해도 국내에선 한식 셰프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런데도 제 밑에서 5년 이상 함께 있었다는 건 한식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라는 말이기도 한데, 그런 친구들에게 박하게 굴고 싶지 않아요.
영숙 맞아요. 요즘 친구들이 한식은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게 참 안타까워요. 서형 셰프처럼 젊은 친구들이 좀 더 한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 참 좋겠어요.

여성 대표로서 마주하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것도 기억나요. 한식을 다루는 여성 셰프로서 느끼는 한계도 혹 있나요? 영숙 셰프님 역시 오랜 시간 주방에서 한계와 싸우며 변화를 겪어왔을 테고요.
영숙 젊었을 때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숨기고 싶었어요. 그때만 해도 요리사란 직업이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었거든. 특히 한식. 중식이나 양식을 했다면 멋진 조리복을 입었을 텐데, 난 앞치마를 둘렀으니까. 그것만으로 한식을 만드는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서형 맞아요. 여자, 특히 한식을 만드는 분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참 이상한 일인 것 같아요. 저희 방송에도 나왔지만, 이모카세 님도, 급식대가 님도 이모님이라 불리면 안 되거든요. 모두가 동등하게 셰프로 대해야 하죠. 그래야 앞으로 더 많은 여자들이 인정받으며 셰프로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영숙 그렇죠.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저 역시 한식을 만드는 셰프로서 더는 숨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 당당하게 행동해요.

이영숙, 조서형을 따라 셰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서형 주방에서 무조건 남자 셰프들처럼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워낙 남자 셰프들이 많은 세계다 보니 체력적으로나 힘적으로나 무조건 남자 셰프들만큼 해야 된다는 생각에 갇히면 금방 지쳐버려요. 남자 셰프보다 못하는 걸 생각하지 말고 ‘나는 여성 셰프로서 남자 셰프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어!’ 이런 마인드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셰프라는 단어가 남자에게만 쓰는 용어는 아니잖아요. 셰프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여성 셰프로서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영숙 좋은 말이에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겁내지 말고 도전하세요. 마음만 품고 있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Credit

  • Feature editor 천일홍
  • Photographer 장기평
  • Hair 이영재
  • Makeup 이아영
  • Stylist 윤지빈
  • Set Stylist 최다예
  • Assistant 이나라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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