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륜(이하 ‘대륜’) 이곳에서 요리를 내는 제 친구 최윤기랑 기획부터 공간 설계까지 모든 걸 같이 했는데, 그 친구랑 얘기하다 떠오른 이름이에요. ‘점점점점점점’이란 이름이 굉장히 많은 걸 담을 수 있겠더라고요.
박서희(이하 ‘서희’)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포스터나 인쇄물을 디자인할 일이 생기는데 ‘·’은 번짐이 없어 잉크를 가장 덜 쓰는 문자라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친환경적인 이름이라 생각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줄임표이기도 해요. 비거니즘이나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은 내 안에 뭔가가 크게 변해야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말줄임표는 입 밖으로 꺼내기보다 내 안에 있는 말들을 뜻해요. 그리고 이 공간에 있을 때 시간이 조용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담겨 있고요
혹시 기획자와 친구들 사이에서 따로 줄여 부르는 이름이 있나요?
대륜 이름을 처음 고민할 때 한 가지는 분명했어요. 줄여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서희 그럼에도 줄여 부르는 사람들은 있어요. 주방 기물에 프린팅을 의뢰했을 때 ‘육점식당’이라고 프린트돼 온 적도 있었어요
이곳을 기획할 때 식당이 먼저였나요, 전시 공간이 먼저였나요?
서희 처음에는 그저 비거니즘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둘이 같이 채식 음식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채식 식당을 해보자”가 된 거고요. 윤기 오빠가 원래 요리를 하니까 거기에 저와 대륜이 가진 것들을 활용해보자 싶었죠.
대륜 보여지는 공간이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건축이나 인테리어부터 비거니즘의 범주 안에서 생각했고, 그렇게 작업물이 하나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굉장히 뿌듯했죠. 이걸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싶어서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전시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만들어놓은 넓은 범주의 공간 안에 사람들이 와서 뭔가 경험했으면 했어요
서희 채식 식당에 가면 음식은 늘 맛있는데, 공간이 무언가를 말한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단순히 우드 톤 인테리어에 화분이나 한 번 쓰고 버려질 쓰레기로 채워진 공간들도 있었고요.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엄청 까탈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이 공간을 아주 멋지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채식은 멋진 거라고요.
이곳에 오면 인테리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건축 자재로 흔히 쓰이지 않는 폐알루미늄 큐브로 공간을 꾸몄어요.
대륜 철거부터 시작해 공간 오픈하기까지 거의 1년 걸렸어요. 비거니즘과 친환경이라는 큰 틀 아래 공간의 모든 요소에 저마다의 이유가 있으면 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폐기물 사업을 하시는데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 회사에 가면 엄청 큰 쓰레기 산이 있거든요. 한국에 자영업자 수가 상당하잖아요. 이 앞에도 보시면 장어집과 꼬치집이 정말 많은데, 다 저희보다 인테리어를 훨씬 늦게 시작해서 먼저 연 곳들이에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죠. 창업과 폐업 주기가 빨라지다 보니 계속해서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공간과의 관계에 있어 인간은 늘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대로 꾸민 다음에 쓰레기를 버리고 떠나죠. 그것보다는 공간을 대여한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깔끔하게 쓰고 보존하자 싶었어요. 여기 쓰인 폐알루미늄 큐브는 그대로 용광로에 던져 넣어 녹이면 재활용 가능한 것들이죠. 제 욕심이지만 공간을 활용하는 이런 태도가 하나의 어떤 운동처럼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두 분 다 채식을 한 지 3년 정도 됐다고 들었는데, 같이 시작한 건가요?
서희 전부터 둘 다 관심은 있었는데 실천하는 게 어려웠어요. 간헐적으로 채식 식당에 방문하는 정도였죠. 그러다 저희가 강아지 번식 공장에 오래 있던 친구를 구조해 보살피게 됐어요. 이른바 ‘뜬장’이라고 하는, 움직일 수도 없는 철창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걷는 법을 모를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죠. 둘이서 그 강아지 공장 주인 욕을 엄청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고기를 먹는 저희와 자신의 경제적 이윤을 위해 강아지들을 희생시키는 공장 주인이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낀 거예요. 그다음 날부터 고기를 끊었어요. 지금은 페스카테리언이에요.

대륜 정말 잘못된 구조입니다.(웃음) 엄청난 딜레마예요. 저희가 큰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이 공간이 어찌 됐든 지속돼야 할 텐데 말이죠. 고기와 채소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 많이 달라요. 사실 채소값이 정말 비싸거든요. 비건이 언제부턴가 럭셔리한 것으로 여겨지고 화장품도 비건이라 하면 유기농과 비슷한 이미지라 그런지 프리미엄이 붙어요. 저희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비건이라 비싸다”, “부르주아들만 할 수 있는 거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기 싫은 거죠. 왜냐하면 저희가 생각하는 비거니즘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니까요. 쓰레기 하나 덜 버리는 행동도 자연을 생각한다는 큰 틀에서 비거니즘으로 연결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서희가 얘기한 것처럼 일단 공간을 정말 예쁘게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자는 생각이 컸죠.
지난 2월에는 ‘스모킹 클럽’을 진행했어요. 소수의 인원이 모여 약초를 태우며 대화하는 워크숍이었죠.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대륜 제가 5년 넘게 ‘노푸’로 생활했어요. 이런 얘기 하면 환경을 엄청 걱정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시던데 꼭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샤워젤이나 비누 같은 걸 쓰지 않고 물만 사용해 씻는 행위를 훨씬 편안하게 느끼거든요. 그러다가 서희가 하도 뭐라 해서 약초로 만든 올인원 비누를 쓰게 됐는데 이 비누가 너무 좋아서 비누 제작자분과 함께 워크숍을 기획하게 됐어요. 허브로 담배를 태우며 환경과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행위가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옛날 남성들이 담배를 태우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와는 너무 다른 거죠. 이 공간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요. 저희가 메뉴 이름 하나 짓는 것도 너무 어려웠거든요. 콜리플라워를 구워 만든 음식이라 치면 채식 식당에서 ‘콜리플라워 스테이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고기가 아니잖아요. 기존의 육식에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죠.
스모킹 클럽 포스터는 조선시대 남성들이 곰방대로 담배를 태우는 이미지인데, 그런 병치를 의도한 거군요.
대륜 환경과 관련된 이미지 하면 딱 떠오르는 그림이 있잖아요. 파랑, 초록, 쓰레기 더미라든지. 좀 다른 방식으로 뭔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으면 해요. 내 안의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전시든 워크숍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일차적으로 환경과 관련이 없어 보이더라도요.
서희 채식을 하고 환경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꼭 자격이 주어져야만 가능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누구나 자기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서희 씨는 패션모델로 일하면서 가죽 제품을 입게 되는 일도 많을 테죠. 그러면서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모순처럼 여겨지기도 했을 것 같아요.
서희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모델로 일할 때는 내 신념과 부딪히는 상황을 정말 많이 접해요. 가죽 옷을 입는 것도 그렇고, 동물과 함께 촬영하는 일도 그렇고요. 일부러 텀블러를 챙겨 갔는데 미리 일회용 잔에 커피를 시켜두셨다든지요. 너무 많은 것이 무작위로 소비되는 환경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으니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내가 너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고민했고요. 그런데 이전에 제가 패션모델로서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히려 주변 반응이 좋았거든요.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나의 최선에서 무언가를 얘기하면 영향받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걸 깨달았죠. 당시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온 것 같아요. 내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고요.
일부 사람들은 ‘비거니즘을 트렌드로 소비한다’는 의미로 ‘패션 비건’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해요.
서희 누가 누구를 평가할 수 있는 권리가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걸지도 모르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누군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두 분은 함께 채식을 시작했으니 서로에게 의지할 때도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속한 팀에서 유일하게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와 함께 실천하는 일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거든요.
서희 정말 영향을 많이 받아요. 대륜이 미니멀리즘을 좋아하거든요. 저는 패션모델 일을 하며 예쁜 가죽 제품에 혹할 때도 있어요. ‘하나 사서 오래 쓰면 되지 않을까’ 싶죠. 그럴 때 대륜이 저한테 질문을 던져요. “너한테 그거 꼭 필요해?”라고요






대륜 추상적이지만 마음에 대해 공부하는 걸 좋아해요. 내적으로 바뀌어야 비건을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직업이나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지만 저는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다 죽는 존재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끝을 인지하면 무언가를 결정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지금 굳이 해야 되나 싶다가도 지금 당장 해야 된다 싶어지고요. 그런데 제가 이런 식으로 너무 큰 틀에서만 생각하다 보면 일상에서 놓치는 사소한 것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서희가 많이 채워주죠. 그리고 서희는 양심 빼면 시체예요. 저는 개인주의라면 서희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 정말 뛰어나고요.
얘기하면서 보니 두 분 다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어요.
대륜 이분이 저를 따라 타투한 거예요. 이 부분 꼭 써주세요.(웃음)
서희 항상 이걸 강조하고 싶어 하더라고요.(웃음)
지난 인터뷰에서 “점점점점점점은 채식의 대중화를 위한 공간”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두 분이 패션모델이고 예술가잖아요. ‘멋있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라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진 않을까요?
서희 저희가 이 공간에 앞서 전면에 부각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전시 기간 방문객 중에 제가 입은 옷 브랜드를 물어보는 분도 계셨어요. 기사가 나갈 때 ‘패션모델 박서희가 만든 공간’이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일도 있고요. 그럴 땐 양해를 구하고 기사 수정을 요청해요. 물론 이렇게 인터뷰 기회를 자주 얻을 수 있는 점은 이용하고 싶죠. 더 많이 알릴 수 있다면요
대륜 저는 제가 서희보다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혼자 작업하는 일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서희가 얘기한 그런 리스크는 늘 염두에 두죠
서희 제가 패션모델이라는 게 이 공간을 운영하는 데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이미 가진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해요. 만약 제가 멋있는 사람이어서 누군가 ‘비거니즘이 궁금하다’라고 생각할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