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2021 S/S 컬렉션이 처음 공개됐을 때의 이야기다. ‘어, 뭐지? 이 옷들 미켈레 데뷔 시즌 룩들 아닌가?’ 기억의 뒤편에 추억처럼 남아 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첫 옷들이 뉴 컬렉션의 룩북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구찌를 위해 미켈레는 하우스의 아카이브와 헤리티지에 주목했어요. 자신의 룩뿐 아니라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룩 그리고 홀스빗과 같은 구찌의 여러 상징을 2021년으로 불러왔죠.” 데뷔 컬렉션의 룩을 뉴 시즌에 포함시킨 이유에 대한 질문에 구찌 코리아 홍보 담당자가 보내온 답에서도 알 수 있듯, 미켈레는 구찌 하우스의 눈부신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 컬렉션을 ‘복제’했다. 그런데 이번 시즌 이와 같이 자기 복제를 한 디자이너가 그뿐만은 아니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의 과거 컬렉션을 뉴 컬렉션에 즐겨 부활시켜왔다. 이번 시즌 라프 시몬스와 함께 만든 기념비적인 첫 컬렉션에선 1996 F/W 시즌의 패턴을 소환했고, 미우미우 컬렉션을 위해선 1996 S/S 시즌을 가져왔다. 물론 언제나 그러했듯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잊지 않은 채 말이다.
현재 디자이너들의 자기 복제는 브랜드를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다.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발렌시아가 시절부터 사랑해온 미래주의는 오늘날 루이 비통의 DNA가 됐다. 이번 시즌 루이 비통 컬렉션의 1번 룩과 발렌시아가 2012 F/W 컬렉션의 24번 룩이 놀랍도록 흡사한 이유다. 이러한 현상은 리카르도 티시가 이끄는 버버리 하우스에서도 발견된다. 버버리의 2021 S/S 39번 룩과 티시가 디자인한 지방시 2016 F/W 39번 룩은 서로 꼭 닮아 있다. 발렌티노는 더 흥미롭다. 발렌티노의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와 디올 최초의 여성 수장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과거 듀오를 이뤄 발렌티노 메종을 이끌었다. 그 시절의 컬렉션을 찾아보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발렌티노의 룩을 닮은 피스와 지금 현재 디올 메종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우아하며 간결한 동시에 드라마틱한 실루엣, 레이스와 플라워 패턴은 피치올리의 것임을, 타이다이 패턴과 에스닉 무드, 튤 스커트와 섬세하고 장식적인 디테일은 치우리의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디자이너들의 자기 복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창의력의 고갈로 인한 자기 반복? 아니면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에 성공을 거둔 디자인을 리바이벌하는 안전한 선택? 하지만 ‘자기 복제’라는 단어는 디자이너의 훌륭하고도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을 때 비로소 이름 붙여질 수 있다. 이것이 없다면 단순한 반복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들의 자기 복제는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공고히 알리기 위한 수단이자, 여러 시즌이 지나서라도 또다시 보여주고 싶은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디자인이리라. 또한 에디터처럼 과거를 잠시나마 추억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저 이 재미난 매칭 게임을 즐겨 보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