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엠넷 ‘엠카운트다운’데뷔 무대에서 방탄소년단은 단번에‘쟤네 누구야?’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만큼 신인치곤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첫 무대부터 프로였던 실력은 시키는 대로만 연습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방시혁 하이브 대표이사도 전 멤버가 뮤지션이란 이미지를 만든 게 먹혔다고 했을 만큼 모두가 작사, 작곡을 하며 일부는 안무, 프로듀싱까지 하는 그룹으로 차별화 해 각자의 창작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했다. 슈가처럼 작곡가 겸 프로듀서 지망생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격렬한 안무를 소화해야 해 잠시 패닉이 온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역시 ‘어거스트디’란 다른 예명이 있는 솔로 뮤지션이기도 하다. 고향 광주에서부터 유명한 스트리트 댄서였던 제이홉은 ‘정팀장’이란 별명이 있을 만큼 안무에 많이 참여하며 멤버들과 프로가 인정하는 메인 댄서에 랩도 탁월. 같은 메인댄서에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지민은 부산예고 수석 입학에 현대무용 전공이라 탄탄한 기본기에 극적인 표현력까지 갖췄다. 이런 실력파 일곱 멤버라서 대단한 연출이 없을 때도 무대를 점령했다.
「 둘째, 마의 데뷔 연도마저 극복한 아이덴티티
」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2013년은 신인 아이돌들에겐 저주 받은 해라고 할 정도로 현재까지 생존한 그룹이 거의 없고 히트 사례마저 드물다. 전년도 2012년에 엑소, 빅스, 뉴이스트, 비투비, AOA, EXID 등이 대거 데뷔해 이미 판세를 장악한 상황이었고 방탄소년단 소속사였던 빅히트는 신생 중소기업이었다. 방탄소년단은 엑소, 빅스, 뉴이스트처럼 드라마틱한 무대를 추구하는 그룹들 사이에서 〈2 COOL 4 SKOOL〉이란 확연히 달라 보이는 앨범을 들고 거친 힙합 아이돌로 각인되는 데 성공했고 폭풍같은 랩과 묘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그해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중소 기획사로선 드물게 초기부터 퍼포먼스 디렉터를 둬 일관되고 차별화 된 퍼포먼스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결성부터 현재까지는 그 자체로 청춘의 대 서사시. 서울 출신이 없어 모두 어린 나이에 꿈만 갖고 상경해야 했고, 원어민이 없는데 해외 진출과 동시에 콘서트뿐 아니라 UN 같은 크나큰 단상에도 서야 했다. 데뷔 앨범 〈2 COOL 4 SKOOL〉과 〈SKOOL LUV AFFAIR〉
등 ‘학교 3부작’에선 방황하는 자의식 강한 청소년 모습이었다면 ‘청춘 2부작’인 〈화양연화〉 앨범에선 고뇌와 불안에 시달리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청년들을 그렸다. 마침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한 세계 정치, 경제 상황 속에서 힘들어하던 청춘들이 깊이 공감한 계기. 2016년 무려 15곡을 담은 정규 2집 〈Wings〉, 특히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에선 유혹과 고통 속에서도 성장하고 긍정하는 청년의 자아를, 〈You Never Walk Alone〉에선 용기를 내라는, 함께하자는 다정함을 전했다. 이후 차별에 굴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정규 3집 〈LOVE YOURSELF〉,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라는 정규 4집 〈MAP OF THE SOUL : 7〉 , 팬데믹 시대에 모두에게 보내는 위로 〈Be〉 등으로 연달아 세계적 울림을 일으키며 현재 ‘Butter’의 대기록에 이르렀다. 단순히 앨범 제목, 곡명, 가사만 훑어 봐도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무엇을 말해 왔는지, 언어를 초월한 스토리텔링이 분명하다.
데뷔 초기 방탄소년단은 대형 기획사 아이돌 그룹처럼 공중파 방송에 원하는 만큼 출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스스로 진행하고 보여주는 ‘자체 콘텐츠’(줄여서 ‘자콘’). 지금은 다들 하지만 당시엔 말뜻이 뭔지 선뜻 다가오지 않을 만큼 낯선 행보였다. 바쁜 스케줄과 쉼없는 연습, 창작 사이에도 장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서 울고 웃으며 각 멤버의 캐릭터와 관계성까지 생생히 보여줘 세계 팬들에게 친구처럼 다가갔다. 2015년 8월 1일, 네이버 브이라이브 채널의 출발과 동시에 올라온 방탄소년단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 방탄〉은 이젠 무려 150회를 앞두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Burn the Stage: the Movie〉(2018)에서는 화려한 콘서트 모습뿐 아니라 멤버끼리 다투고 화해하며 눈물 짓는 과정마저 그대로 공개됐다. 현재도 수시로 하는 라이브 방송과 SNS, 특히 전파력이 큰 트위터 포스팅 역시 팬들과의 소통을 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 결과 아이돌들의 방송 및 SNS 트렌드마저 방탄소년단 스타일로 바뀌었으며 멤버 이름 소개부터 시작한 방탄소년단의
“전설을 만들 거예요.”란 포부는 현실이 됐다. 아직도 나이로 리더를 정하고 그에 따라 위계질서를 따지는 아이돌 그룹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에 막 ‘입덕’한 팬이라면 누가 리던지 잘 알기 어렵다. ’97년생 정국이 ‘막내온탑’이라 불릴 정도로 ’92년생 진과 동료로서 평등하게 소통하는 분위기에 리더는 ’94년생 RM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고 갈등이 생겨도 대화로 풀어 마치 새끼 사자들처럼 친근한 모습을 리얼하게 볼 수 있었다. 무대 분량 역시 데뷔 때부터 나이, 연차 상관 없이 각 멤버가 잘 하는 걸 많이 하면서 합을 이뤘다. 센터에 많이 서는 건 메인보컬 정국이지만 방탄소년단의 어떤 곡도 한 명에게만 계속 스포트라이트가 가진 않으며, 파트별로 어떤 한 명이 돋보여야 할 땐 다른 멤버들이 철저히 받쳐 주는 퍼포먼스가 방탄소년단 무대의 특징이다.
「 여섯째, 조금씩 세계 무대로 날아오르다
」 간혹 방탄소년단이 운좋게 빌보드에서 순위가 오르며 미국에서 ‘터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방탄소년단은 뜻밖에도 차근차근 세계 무대를 향해 계단을 밟아 올라간 케이스. 데뷔 이듬해 일본에서 첫 싱글 ‘No More Dream’을 내며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8위에 올랐다. 7월 발매한 두 번째 싱글 ‘Boy In Luv’는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4위로 좀 더 성장했다. 같은 해 7월 엠넷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허슬 라이프〉에선 미국 LA로‘강제 힙합 유학’을 떠나 현지 가수에게 쓴소리를 들어 가며 힙합이 뭔지 느끼고 호텔 객실 청소와 주방 보조 등 어려운 일도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8월 LA 케이콘에선 기대하지 못 했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후 정규 앨범을 내고 아시아 투어를 하는 등 급속도로 팬덤 범위가 넓어지며 미국 ‘아미(팬덤 명)’들이 꾸준히 지역 라디오에 방탄소년단 곡을 틀어 달라고 요청해 들어본 디제이들이 긍정적 소개를 하다 보니 마침내 빌보드 입성이 현실이 됐다. 이후는? 다들 알다시피 날아올랐다.
아이돌 그룹은 퍼포먼스에 치중하느라 MR, AR에 많이 의존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방탄소년단은 고난도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컴백 무대부터 라이브에 목숨 걸곤 한다. 퍼포먼스와 랩이 워낙 두드러져 보컬은 립싱크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자 메인보컬 정국이 ’16년 MBC 〈복면가왕〉에 ‘펜싱맨’으로 출연해 실력으로 패널과 관객들을 경악에 빠뜨리기도 했다. 특히 해외 무대에선 라이브 실력이 필수적인데 라이브를 ‘디폴트’로 두고 오랜 연습과 꾸준한 성장을 통해 글로벌 팬들의 심장을 저격했다. 미국 〈SNL〉에 함께 출연하며 라이브를 코앞에서 체감한 배우 엠마 스톤 역시“실제로 보니 엄청났다”며 팬심을 드러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