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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less한 올림픽 히어로즈! 태권도 김유진 & 복싱 임애지

천진한 미소 속에 숨겨둔 결연한 눈빛,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김유진과 냉철한 판단력과 빠른 주먹으로 세계를 재패할 복서, 임애지의 기대되는 내일.

프로필 by 천일홍 2024.09.24
재킷, 베스트 모두 Push Button. 프릴 스커트 Moschino. 셔츠,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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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후에 승리의 기쁨도, 모처럼의 휴식도 즐겼어요?
금메달 따기 전후로 관심이 많이 달라져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도 많이 해주시고요. 갑자기 많아진 일정에 아주 조금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소화하고 있어요. 이렇게 코스모와 화보도 찍고요.(웃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 거기서 딴 금메달 그리고 김유진 선수를 향한 지금의 관심이 괜히 마음을 붕 뜨게 하진 않아요?
신기하게도 그러진 않아요. 돌아보면 올림픽에 가기까지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모든 순간이 값졌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후회 없는 올림픽으로 남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짐작해보자면 경기장에 다 쏟아내고 온 기분?
네, 맞아요. 준비했던 것, 연습했던 것 다 보여주고 나왔어요.
그것도 알았어요? 김유진 선수의 금메달이 2008 베이징 올림픽 임수정 이후 여자 -57kg 체급에서 16년 만에 나온 금메달이었다는 거.
경기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근데 전 16년이라는 시간에 큰 의미를 두기보단 도쿄 올림픽 때는 ‘노 골드’였는데, 다시 금메달을 따게 되면서 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운 것 같아 그게 더 뜻깊게 다가와요. 사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너무 힘들고 버거운 순간이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은 그 힘듦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을 많이 배웠죠.
안 그래도 평소 훈련량이 많고 힘들어서 울면서 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어요. 무엇이 가장 힘들어요?
평소엔 저보다 체급이 높은 선수들과 많이 훈련하거든요. 남자 선수와 겨루기를 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 체격으로나 힘으로나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괜히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해요. 남자 선수들과 부딪혀서 겨루기 하는 건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남자 선수들은 힘도 좋고 스피드도 빨라서 그들과 겨루기를 하고 나서 실제 경기에 나갈 때 확실히 발이 빨라지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훈련장에서 땀과 눈물을 흘린 덕분에 16강부터 결승전까지 세계 랭킹 5위, 4위, 1위, 2위 선수와 대결을 펼쳐 당당히 승리했죠. 그야말로 언더독의 눈부신 비상이었어요.
하하, 감사해요. 그 선수들은 평소 시합 때 많이 보던 얼굴들이라 랭킹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저 준비한 것만 다 보여주고 나오자 하는 생각뿐이었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썼더니 다 이겼던 것 같아요.
경기장에 오르기 직전엔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줘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스스로 무너지지 말자는 말을 계속 되뇌었어요.
매 경기 비장한 김유진 선수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그 눈빛은 여기서 비롯된 거였네요.
정말요? 그건 지지 않으려는 간절함의 눈빛이었어요.(웃음) 스스로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은 것도 있었고, 상대 선수와 마주 서 있을 때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서도 눈빛이나 표정을 더 날카롭게 하려는 의도도 있어요. 지고 싶지 않으니까, 기싸움에서부터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인 거죠. 결승전 땐 ‘이제 진짜 거의 다 왔다’하는 마음이었어요.
이야기를 듣는데 제가 다 비장해지는 기분이에요.(웃음) 마침내 포디움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순간엔 어떤 기분이었어요?
현실이 아닌 것 같았어요. 애국가가 들리니까 그제야 ‘진짜 해냈구나’ 싶으면서 지금까지 힘들었던 모든 순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특히 체급 높은 선수들과 겨루기 할 때 너무 힘들어서 울었던 때가.(웃음)
매일 울면서 훈련한다고 하지만, 언젠가 본인의 매력으로 냉철함을 꼽았어요. 김유진 선수가 가장 냉철해질 때는 어떤 순간이에요?
아무래도 겨루기 할 때, 시합할 때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합 땐 눈빛이 달라지기도 하고, 평소보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했을 때 경기력도 더 잘 나오는 편이더라고요.
긴장되는 순간에 되레 차분해지는 스타일이군요.
긴장은 당연히 하는데, 그 긴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떨리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니까, 불안해하지 않고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해요. 지금 내가 이렇게 하면 잘 이겨낼 수 있겠다고, 긴장되는 감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거죠.
선수로서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뭐예요?
끝까지 독하게 하는 근성이요. 그것만큼은 자부해요. 지금껏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태권도를 해왔어요. 태권도 아니면 안 되니까,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기 위해 스스로 더 독하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기도 해요.
올림픽으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국내 대회 선발전과 대륙별 선발전을 거쳐 올해 3월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죠. 그 길도 순탄치 않았겠다 싶어요.
그때를 생각해도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요.(웃음) 그래도 그 순간을 잘 이겨내야 꽃이 피는 법이니까요.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힘들어도 즐겁게 하자 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죠.
어떤 순간에도 흔들림 없는 뚝심이 느껴져요. 이번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김유진 선수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나이는 어린데 경기 운영이 무척 노련하다고.
겨루기를 할 때 항상 영상을 찍어두는데, 연습이 끝나면 그 영상을 다시 보면서 매일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기록하며 분석해요. 자기 전에도 그날의 경기, 기술을 성공시켰을 때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도 해보는 편이죠. 상대 선수 분석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훈련의 삼박자가 잘 맞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상했던 장면이 실제로도 많이 이뤄졌어요?
네. 이번에 진짜 다 맞아떨어졌어요.(웃음) 특히 경기마다 중요한 순간에 왼발 내려찍기 기술을 했는데, 그것도 매일 제 머릿속에 그려봤던 장면이었어요. 이번을 기회로 왼발 내려찍기가 제 주기술이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할머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했다고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처럼 지금 여성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때때로 위험한 순간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그럴 때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을 익혀두면 좋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은 태권도라고 하면 상대방을 공격하고 때리는 운동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보단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운동이에요. 예절을 중요시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마음 수련하기에도 좋고요. 저 역시 태권도를 하면서 신체적으로 강해지니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올라가는 걸 느껴요.
태권도가 김유진 선수에게 준 용감함은?
힘든 일이 닥쳤을 때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며 느낀 건 그동안 안 했던 거지, 못 했던 건 아니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제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체감했죠. 확실히 정신적으로 많이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언제 가장 강해졌다고 느껴요?
힘든 걸 피하지 않고 더 마주하려고 할 때요. 적어도 노력이 부족해서 지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개인적으로 웨이트가 약한 편인데, 그것도 피하지 않고 더 신경 써서 하려고 해요. 모든 훈련이 끝나고 야간에도 나가서 웨이트를 무조건 하려고 하는데, 그럴 때 확실히 느끼죠. 예전의 나보다 강해졌다는 걸.
천생 선수네요.(웃음) 김연경 선수를 롤모델로 삼았죠? 김유진 선수가 김연경 선수를 닮고 싶어 했던 것처럼 김유진 선수를 보며 꿈을 키워가는 소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운동을 하다 보면 힘들고 버거운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그때 포기하려는 마음보다는 왜 이걸 시작했는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처음의 마음을 되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도 분명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테고, 그 순간을 다 이겨냈을 테니까요. 그걸 상기하면 버티고 이겨낼 힘이 생길 거예요. 안 되는 건 없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김유진 선수의 초심은 뭐였어요?
전 태권도가 마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 없이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제 인생이 됐고요.
롤모델 김연경 선수의 어떤 점을 본받고 싶어요?
매사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 그리고 연경 선수님의 강한 정신력을 닮고 싶어요.
김유진 선수도 지금 충분히 강한 것 같은데요?
그렇게 봐주셨다면 너무 감사한데, 전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어요. 10월에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무조건 1등 하고 싶고, 또 국가대표가 돼서 다음 LA 올림픽 금메달에도 도전하는 것, 그게 지금의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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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복싱에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선사했어요. 여자 복싱으로는 최초의 메달이기도 하죠.
저는 스스로를 평가하는 걸 좋아해요. 올림픽 전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절 바라봤을 때, 무슨 색이든 메달 하나는 꼭 딸 것 같았죠. 8강에서 이겼을 땐 제가 정말 금메달을 딸 것 같은 거예요! 동메달을 확보하고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전 “저 아직 안 끝났어요! 꼭 금메달 딸 거예요!”라고 했죠. 결국 동메달을 땄지만요.(웃음) 우리나라 여자 복싱에 늘 성과가 없어 사실 서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제가 이렇게 스타트를 끊게 돼 정말 기뻐요.
심판이 임애지 선수의 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뻐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사실 제가 주니어 때만 해도 고등학교 3년 내내 금메달만 땄어요. 체급을 정하기 전에 51·54·57·60kg급을 모두 뛰어봤는데 4개 체급 모두에서 금메달을 딴 거죠. 그러다 보니 나중엔 감흥도 없어져 결승에서 이기고도 너무 무표정인 거예요. 코치님들이 “너 북한 선수 같다”고.(웃음) 다음번에 금메달을 따면 “만세를 하고, 점프를 하라”는 세리머니 주문까지 받았어요. 그러다 시니어 리그에 가니 51kg급과 60kg급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예요. 체급이 너무 극단적이라 그때부터 되게 고전했어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기까지 7년이나 걸렸죠. 그땐 정말 ‘찐텐’이 나왔어요.(웃음)
다시 한번 축하해요. 사실 여자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생중계 편성이 안 잡히기도 했어요.
섭섭했죠.(웃음) 이겨도 경기 내용이 안 좋을 때가 있고, 져도 경기 내용이 좋을 때가 있는데 사람들이 경기 결과만 보고 저의 가능성을 재단하면 힘이 빠지거든요. 심지어 한국 여자 복싱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는 “선수들이 많이 출전 안 했나 보네”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국내에는 임애지 선수가 뛰는 54kg급이 없어서 60kg까지 증량과 감량을 반복하는 게 힘들다고, 국제 대회 기준에 맞는 체급을 만들어달라고 대한복싱협회에 소신 발언을 했죠.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죠. 54kg급은 제가 대학 다닐 때부터 생긴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어요.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시키며 선수 생활을 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죠. 제 인생은 긴데 현역 선수로 뛰는 시기는 정말 잠깐인 거잖아요. 인생의 일부 때문에 제 삶 전체를 망치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결국 올림픽 앞두고 또 감량을 감행했지만요. 동메달 획득 직후에 한 인터뷰에서 ‘체급’ 얘기가 나오자마자 눈물이 터진 이유예요. 저도 제가 울 줄은 몰랐는데.(웃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서 후련해요.
언제 처음 복싱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중학교 때 교내 복싱 팀이 있었어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재미를 붙일수록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하고 싶더라고요.(웃음) 여자 복싱은 중등부 대회도 없어 늘 화순군에서 개최하는 비공식 시합에만 참가했고, 훈련도 주로 남학생들과 했죠. 한번은 저보다 늦게 시작한 남자애가 실력이 더 빨리 느는 걸 보는데 너무 분한 거예요. 그게 자극제가 돼 더 열심히 했어요. 스파링할 때도 무조건 그 친구와 붙여달라고 하면서요. 매번 지더라도 이전 경기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다면 만족했죠.
누가 그렇게 임애지 선수의 승부욕에 불을 지폈나요?
제 후배 중에 서동근 선수라고 있어요. 저보다 복싱을 늦게 시작했는데 기량이 정말 빨리 늘었죠. 맨날 그 선수를 보면서 분석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쟤를 잘 요리해서 이길 수 있지?’ 하고요.(웃음)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정말 좋은 동료이자 자극제였죠.
복싱의 매력은 뭐예요?
저는 전략 짜는 것을 좋아해요. 그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해서 승리할 때 정말 매력 있는 스포츠라는 걸 느껴요. 무엇보다 격투하는 모습이 멋지잖아요.(웃음)
평소 플레이 스타일은 어때요?
복싱에는 ‘인파이터’와 ‘아웃 복서’가 있어요. 상대를 파고드는 것과 빠져서 공격하는 것의 차이죠. 저는 아웃 복서 스텝을 가진 인파이터예요. 2가지 스킬을 같이 쓰는 걸 좋아하죠. 주로 견제하는 손을 ‘앞손’이라 하고, 공격하는 손을 ‘뒷손’이라 하는데 저는 앞손으로 상대를 들어오게 만들었다, 빠지게 만들었다 하는 견제 플레이를 잘해요.
이번 올림픽을 치르면서 새롭게 배운 점과 후회하는 점이 있다면요?
준결승전에서 튀르키예의 하티세 아크바시 선수를 만났을 때, 너무 전략에만 집중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져 적극적으로 공격에 들어가지 못했던 게 후회돼요. 아크바시 선수도 전략적으로 플레이하는 선수라 그 흐름을 끊고 타이밍을 뺏어오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죠. 실패해서 되레 제 타이밍을 빼앗길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더라도 제가 놓을 수 있는 수를 모두 써볼걸 하는 후회가 남았죠. 배운 점은, 성적이 좋은 선수들의 경기를 모두 챙겨보면서 이들의 공통점이 뭘까 생각했어요. 답은 자신의 플레이를 잃지 않는다는 거예요. 상대가 누구든 자기만의 플레이 스타일과 페이스를 유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스포츠는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는 거요! 제 경기가 중계된 것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살면서 그렇게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아본 건 처음이에요. 정말 감사했죠.
특히 기억에 남는 응원이 있었나요?
제가 몬스타엑스의 팬인데 아이엠 님과 기현 님이 축하한다고 스토리를 올린 거예요. 덕분에 몬베베(몬스타엑스 팬덤)분들의 축하도 되게 많이 받았고,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했을 때 박명수 님이 제가 몬베베인 걸 알고 셔누 님의 축하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오셨더라고요. ‘성덕’이 된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좋았어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모습이네요. 링 밖에서 임애지 선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야망가? 저는 꿈이 엄청 커요. 근데 그걸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파리 올림픽 나가기 전에 부상으로 훈련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메달을 딸 거라고 얘기하고 다녔죠. 심지어 부상을 입기 전에도 되게 부진했었어요. 시합 나가면 맨날 맞고.(웃음) 헛된 희망이라고 생각해도 계속 꿈꾸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결국엔 해낼 수 있어요. 이번 파리 올림픽처럼요. 그래서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올림픽 직후 ‘화순의 딸’로 KIA 타이거즈 승리 기원 시구도 했어요.
섭외 전화를 받고 재차 되물었어요. “제가요?” 하면서요.(웃음) 제가 야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공부를 엄청 많이 하고 갔어요. 야구의 룰부터 포지션별로 선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우고요, 응원가도 연습해 갔죠. 현장에선 무려 양현종 선수가 시구 지도를 해주셨어요. 제가 야구에 대해 무지한데도 알고 있는 선수라 정말 영광이었죠. 그리고 한 번도 안 쓴 새 글러브를 가져오셔서 그걸 끼고 시구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포스트시즌에서 쓸 글러브인데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기운을 받고 싶다고요.(웃음) 마운드에서 시구 연습을 할 때는 제가 던지는 걸 몇 번 보시더니 좀 더 뒤에서 던져보라는 거예요. 거기가 투수들이 실제로 던지는 스폿인데, 충분히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제가 던질 때마다 “오우, 전완근이…!” 이러면서 감탄하는데 저는 너무 쑥스러웠어요.(웃음)
임애지 선수가 보유한 최초의 기록이 3개예요. 한국 여자 복싱 최초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올림픽 출전, 올림픽 메달 획득. 또 어떤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싶어요?
한국체육대학교 최초의 여자 복싱 교수. 이 결심을 한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그러려면 석사와 박사 졸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올림픽 성적이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은퇴 후 꼭 이룰 거예요.
그렇다면 LA 올림픽에선 무조건 금메달을 목표로 하겠네요?
파리 올림픽 때 이상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LA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딸 거예요.
<코스모폴리탄>은 ‘Fun Fearless Female’을 지향하는 매체예요. 선수 생활을 하며 겪은 용감하고 유쾌했던 순간이 있다면요?
저의 첫 국제 대회가 세계선수권대회였는데 라섹 수술을 하기 전이었어요. 제가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시합하다가 한 쪽이 빠진 적이 있어 그 뒤로는 안 끼거든요. 제 렌즈 도수가 -5.5인데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더 겁 없이 경기했던 것 같아요. 그 대회가 끝나고 진짜 겁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라섹 수술을 하고 첫 경기를 하는데 상대 주먹이 너무 잘 보여서 살짝 무서운 거예요.(웃음) 경기 중에 자꾸 심판을 보거나 관중석을 쳐다보기도 하고. 전에는 상대만 보였는데, 라섹 후에는 주변 환경이 너무 잘 보이니까 집중력이 흐트러진 거죠.(웃음) 그때가 2017년 전이니까 벌써 7년이 지났네요. 가장 겁 없고 유쾌하게 시합을 했던 때예요.

Credit

  • Editor 천일홍/김미나
  • Photographer 장기평
  • Hair 이혜진 (김유진)/ 김라희 (임애지)
  • Makeup 안세영 (김유진)/ 김라희 (임애지)
  • Stylist 문승희
  • Assistant 이나라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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