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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해인 씨

진짜 강한 사람은 손에 검이 아니라 꽃을 쥐고 있으며, 얼굴에 화가 아닌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정해인의 말간 얼굴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BYCOSMOPOLITAN2020.08.22
 
〈코스모폴리탄〉과 진행하는 첫 화보 촬영이 창간 20주년 기념호 커버라니! 좋은 시작인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20명의 아티스트가 함께하니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처음엔 제안받고 부담스러웠지만, 타이밍이 좋았어요. 계속 화보 촬영을 하고 싶었거든요.
 
20살 정해인은 어땠나요?
선명하게 기억해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느꼈던 떨림도 생생하고요. 성인이 돼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술도 마셔보고. 그땐 제가 다 큰 줄 알았어요. 진짜 자유를 얻은 느낌이 들었죠. 근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자유가 아니라 모험이 시작된 거였죠.
 
그때 하지 못해 지금도 후회되는 게 있어요?
더 많은 것에 도전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연기를 전공하다 보니 연극, 뮤지컬 등 공연하느라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못 가졌거든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외로운 존재잖아요. 혼자 여행을 가면 많은 걸 배우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그 즐거움이 반감되겠지만, 한층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코로나19만 아니라면 가고 싶은데, 망설여져요. 두려움 때문이겠죠. 하지만 여전히 혼자 여행하는 건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예요.
 
처음 정해인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작품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였어요. 막내아들 ‘유세준’ 역을 맡았죠. 맑게 생긴 이 배우를 ‘당분간은 나만 알고 싶다’고 여겼던 적도 있었어요.
우선 그 드라마를 봐주셔서 감사해요. 저한테 정말 소중한 작품이에요. 선배님들과 같이 연기하면서 많이 배우고, 특히 김해숙 선생님과의 인연을 만들어줬으니까요. 54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주말 드라마다 보니 저를 알아보는 분도 무척 많아졌을 때예요. 하하. 많은 분이 제가 꽤 빨리 인지도를 쌓은 것으로 아는데, 저는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연기를 했어요. 물론 출연한 작품 중엔 잘 안 된 것도 있어 잘 모를 수도 있죠. 보통은 잘된 작품만 기억하기 때문에 저를 갑자기 나타나 주목받은 배우라 생각할 수도 있고요. 만약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저는 묵묵하게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한 작품, 한 작품 해나갔을 것 같아요.
 
데뷔 이후 했던 인터뷰를 보면, 줄곧 여유가 느껴져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조급함 때문이라 생각해요. 연기뿐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데, 너무 멀리 보지 않고 그냥 오늘과 내일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내가 원했던 것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조급함이 생기면 건너뛰게 되잖아요. 그러면 단단하게 쌓아갈 수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하고 묵묵하게 한 작품, 한 작품 해나가자는 생각이에요.
 
그 자신감의 근원은 뭘까요?
가장 큰 게 저희 부모님이에요. 저를 믿어주시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키워주셨어요. 또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영향도 있을 거예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사실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스스로 키우기보단 조력자가 있어야 키워지는 것 같아요. 충고든 조언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내가 잘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먼저 찾아, 그걸 즐기다 보면 잘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난 7월 데뷔 7주년을 맞아 SNS에 사진과 함께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존중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멘트를 적었죠. 다른 건 잘 알겠는데, 팬들을 존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어요.
팬미팅할 때나 팬 카페에 글을 쓰면 늘 마지막에 하는 말이에요. 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분들 모두가 개인의 삶이 있잖아요. 단순한 나의 팬이 아니라 그분들이 다른 누군가의 엄마, 여자 친구, 딸, 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개인의 삶을 존중해야 저와의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아요.
 
7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예요?
솔직히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아요. 데뷔 초에도 기념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축하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냥 어느 보통 날 중 하루였어요. 그런데 팬들이 축하해주시니 대수롭지 않은 그 하루가 특별한 날이 된 거죠.
 
데뷔 초와 비교해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것이 있다면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변하지 않았고, 내 일에 대한 직업 정신과 태도는 조금 더 묵직해진 것 같아요.
 
배우에게 직업 정신은 어떤 건가요?
배우는 연기하는 사람이고, 서비스직이에요.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서 돈 주고 영화를 보고, 시간을 할애해 드라마를 보잖아요. 어떻게 해야 그분들이 쓰는 시간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죠. 그게 배우의 일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기는 하는 사람이 가장 즐기고 재미있어해야 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건 대중 예술이잖아요. 그러니 배우는 많은 분이 그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줘야죠.
 
그렇다면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친절한 연기와 불친절한 연기를 나눌 수도 있겠네요?
많은 분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친절한 연기죠. 그 반대라면 사람들이 불친절하다 느낄 것 같아요. 저는 친절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연기와 삶이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죠. 본인이 연기했던 장면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도 있나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때 ‘윤진아’를 잡기 위해 ‘서준희’가 제주도로 가는 장면,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미수’를 잡기 위해 달려가는 ‘현우’ 등이 떠올라요. 그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잡기 위해 그냥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움직이잖아요. 뭐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카디건 1백55만원 아미리 by 무이.

카디건 1백55만원 아미리 by 무이.

예전에는 작품 출연에 선택받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선택하는 입장이 됐죠? 그래서 작품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지금도 선택받는 입장이에요.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염두에 둔 배우에게 같이 하고 싶다며 제의하는 거니깐요. 물론 다 할 수는 없으니 여러 작품 중에서 배역에 나를 입혀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면 출연을 결정하죠. 아예 상상할 수 없는 작품도 있는데, 그건 제가 많이 부족한 탓이 커요. 저도 이제 저를 알아가는 단계라 상상력의 한계가 있기도 하죠. 또 감독님을 만났을 때 함께 작업하면 현장이 즐거울 것 같다거나 연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를 잘 끄집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출연을 결정하기도 해요.
 
선택의 여지가 많아 작품 흥행에 대한 부담도 클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결과가 안 좋아도 자존감이 단단하면 충분히 다시 딛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처럼 차기작을 준비하며 쉴 때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촬영할 때 못 했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홈 트레이닝도 하고, 또 못 본 영화를 하나씩 봐요. 최근에 〈반도〉를 봤는데 엄청난 스케일에 놀랐어요. 저는 장르 상관없이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어떤 배우는 쉴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일 생각이 나서 괴롭다고도 해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진짜 즐겨요. 작품을 분석하거나 연기를 평하지는 않아요.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분석하지 않듯 말이죠. 물론 좋은 연기를 보면 생각이 많아져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반성도 하고, 새로운 걸 배우기도 하고요.
 
지금의 인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나요?
인기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깐 괜찮아요. 그보단 ‘나를 더 이상 찾지 않고, 내 연기를 봐주는 분들이 없으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은 있어요. 이건 인기와는 달라요. 배우가 서비스직이라고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장사가 잘되는 맛집 사장님도 더 맛있는 음식과 더 좋은 서비스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실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고민이 깊어지거나 불안감이 엄습할 때, 어떻게 다스려요?
땀 흘리면서 운동해요. 운동을 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이 안 나거든요. 끝내고 샤워하고 나오면 ‘내가 왜 멜랑콜리해졌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털어버리게 돼요. 그런데도 마음이 안 좋으면 병원 가서 진단받고 약 먹으면서 치료해야죠. 절대 술로 풀면 안 돼요.
 
스스로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뭐예요?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쓰면서 저를 갉아먹을 때가 있어요. 책임감과 결부되는 거지만 그게 때론 독이 되더라고요. 조금은 유연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무너질 수 있으니 제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도와주는 매니저, 회사 사람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요.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못 하고, 다른 이들이 먼저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고쳐야죠.
 
반대로 마음에 드는 점은 뭔가요?
인복이 있어요. 특히 좋은 부모님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해인이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에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멋있어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죠. 스스로를 아끼면 남들도 아끼고 사랑하게 되거든요.
 
그 방법을 터득했나요?
그건 굉장히 다양하죠. 단순히 맛있는 것만 먹어도 해결돼요. 그럼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그럼 오늘 해인 씨는 어떤 방법으로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건가요?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려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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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Director Jeon So Young
  • Photographer KIM HEE JUNE
  • Stylist 윤슬기
  • Hair 성찬/담아뷰티
  • Makeup 순열/담아뷰티
  • Assistant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