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1인 가구가 집안일을 하는 법

최첨단의 시대에도 사람이 기계에만 의지해 살아갈 순 없다. 남의 집안일 대신 해주기 싫어 결혼은 안 하더라도,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1인분의 집안일은 오롯이 내 몫이다. 독립된 삶을 선택한 세 사람이 말하는, ‘나’를 돌보는 노동의 정직한 기쁨에 대하여.

BYCOSMOPOLITAN2020.05.20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1인 가구의 삶을 결심한 순간을 기억하시는지? 아렌델 왕국의 후계자인 엘사는 즉위식 날 그간 숨겨온 힘을 들켜 눈 쌓인 산골짜기로 도망친다. 그리고 새 삶을 시작하자며 ‘Let It Go’를 노동요 삼아 집을 짓는데, 엘사가 건축·디자인한 집은 무려 산봉우리 하나만 한 성이었다. 나는 30대에 들어 이 장면을 다시 보고 2가지를 깨달았다. 하나, 원룸에서 살아보면 누구든 넓은 부동산을 열망하게 되는구나(엘사는 자신의 힘을 두려워해 거의 방에서만 지냈다). 둘, 1인 가구니까 작은 집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이구나. 그리하여 나는 결심했다. 내 비록 1인 가구일지라도 엘사의 스케일로 살아가리.
몇 년 전, 원룸을 전전하다가 그간 번 돈을 박박 끌어모아 방이 하나 더 붙은 지금 집으로 이사했다. 15평 남짓한 크기에 그나마도 은행에 많은 빚을 졌지만 결혼에 기대지 않고 집을 넓혔다는 사실에 감격했는데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이 집도 묘하게 답답해졌다. “엘사가 일반 주택이 아닌 성을 지은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구시렁거리며 빨래라도 정리하려고 서랍장을 열었는데… 뭐지? 4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서랍장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새삼 집을 둘러보니 곳곳이 이 모양이었다. 나는 혼자 집값을 충당해야 하니 대부분 가격에 맞춰 물건을 사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취향도 아닌 물건들을 들였다가 한두 번 쓰고 처박아놓는, 돈도 공간도 만족감도 깎아먹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내 공간인데 묘하게 내 스타일 아니다 했어!
반송료 때문에 그냥 뒀으나 절대 입지 않는 바지와 치마를 전부 끌어냈다. 못생겨서 구석에 둔 의자와 플라스틱 정리함을 버렸고, 발뒤꿈치를 갉아먹어 다시는 신지 않은 싸구려 스니커즈와 구두, 내게 안 어울려서 오기에 구입한 안경 4형제, 손이 가지 않는 컵도 당연히 퇴출이었다. 인생템을 찾다가 실패한 립스틱, 블러셔, 경조사용 옷은 각각 한 세트만 남겼다.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을 줄줄이 버리다 보니 스케일은 이런 식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래서 지금은 가격과 상관없이 정말 갖고 싶은 물건만 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초반에는 가격에 혹해 물건을 구입하는 습관을 버릴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정말 갖고 싶었던 원목 의자와 책장을 하나씩 사니 통장 잔고가 훅 줄어 애매한 물건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자연히 쓸데없는 소비가 줄었고(생활비는 비슷한데 만족도는 더 높다) 집 안도 꽤 쾌적해졌다. 고개를 돌리면 내 취향의 물건들만 보인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왜 안쪽으로 스케일을 넓힐 생각은 못 했던가. 많은 것을 버린 후에야 이를 깨닫는다. 사족을 달자면 이 글을 쓰려고 〈겨울왕국〉을 다시 보니 엘사의 성 안에도 물건이 별로 없다. 역시, 엘사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 김은경(편집자, 작가)
 

 
여행을 떠나 턴다운 서비스가 제공되는 호텔에 묵을 때면, 외출을 끝내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마음이 설렌다. 물기 없는 세면대, 반듯하게 걸린 타월, 깨끗한 베갯잇. 이제 네가 할 일은 이 쾌적한 방에서 편안하게 쉬는 것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귀중한 여행의 또 하루가 깎이는 것도 슬프지 않다. 누군가가 묵묵히 매만져준 방 안에서, 하룻동안 수고한 나 자신이 토닥임을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원룸으로 독립해 나온 뒤, 나는 꽤 오래 집안일에 공을 들였다. 퇴근해 옷을 갈아입기 무섭게 세탁과 청소를 하고, 그걸 다 끝낸 뒤에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 집 안을 매일 완벽하게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 사람분의 살림이란 건 전혀 작지 않다는 것을 점점 실감했다. 일은 적지만 그걸 할 사람은 이미 지친 나 하나니까. 그런데 누가 이런 집안일 좀 해주면 좋겠다는 아쉬운 욕심 끝에는, 불만 끄면 포근하게 잠들 수 있던 그 여행 중의 밤들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런 따뜻하고 온전한 위로를 내 집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공기는 달콤하고 바다는 보석처럼 빛나는 먼 이국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이 방 안에서 부드럽게 하루의 매듭을 짓고 잠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 좋았던 순간을 떠올린 뒤로, 매일 밤 나를 위해 집 안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진다. 호텔의 턴다운 서비스처럼, 잠깐씩이라도 간단하고 사소한 서비스를 나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 과정은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이미 시작된 휴식을 해치지 않는, 빠르고 간단한 정돈들로 이뤄진다. 무심결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영수증을 치우는 것. 의자 등받이가 짊어지고 있는 하루치 옷더미를 정리하는 것. 침대 위엔 반듯하게 매만진 베개와 이불만 남겨둔다.
턴다운에는 북북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 문지르고 물을 튀기는 설거지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낮 시간을 돌이켜보기엔 하루는 너무 조금 남았고, 나를 챙기는 나도 너무 무리해서는 안 되니까. 그리고 그런 조용한 위로와 배려의 시간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조도를 낮춘 방 안에는 아늑한 격려가 깃든다.
긴장의 연속인 실낱 같은 하루하루, 짧은 턴다운은 그 속에서 놓치기 쉬운 섬세한 보살핌을 스스로에게 베푸는 일이다.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이 없는 것만 같은 어느 날은 또 찾아온다. 겨우 익숙해지는 것 같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시 낯설어지는 듯한 그런 날, 나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구겨져 있던 이불을 포근포근 다시 펼치며 ‘오늘도 애썼어, 이제 푹 자’ 하고 토닥여줄 나를 만나러. - 유주얼(칼럼니스트)
 

 
독립을 하고 보니 ‘집안일’은 1인당 1인분이었다. 집안일의 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수에 비례했다. ‘카레를 1인분 만드나 2인분 만드나 드는 품은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이 하나든 둘이든 청소나 빨래는 해야 하잖아?’ 하고 궁금해할 수도 있다. 2인분이 된다고 해서 카레를 두 번 만드는 건 아니지만 1인분과 2인분의 감자와 양파와 당근 썰기는 다르다. 2인분은 1인분의 딱 곱하기 2만큼 썰어야 한다. 둘이 살다가 혼자 살게 됐다고 해서 청소가 없어지진 않지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횟수는 반으로 준다.
혼자인 삶에서 집안일은 공평하고 정직하다. 다 나 때문에 생겼고, 어쨌든 해놓고 나면 혜택은 내가 받고 안 해도 불편이 내게만 온다. 그리고 딱 내 몫만큼, 딱 나처럼만 생긴다. 내가 극성맞으면 극성맞은 만큼, 내가 깔끔 떨면 깔끔 떠는 만큼, 게으르거나 둔감하면 딱 그만큼 생긴다. ‘다 했다’라는 기준이 내게 있고 ‘마감 시간’도 내가 정한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세상에서 인사권과 지휘권 등 권한이라는 권한은 다 내게 있는 이런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의무’라고 말하기엔 슬프니까 지금은 하지 말자). 단, 원고나 업무 마감은 미룰 때까지 미루다가 닥쳐서 해야 제맛이지만 집안일은 생기자마자 해야 제맛이다. 물론 집안일은 지겹다. 새로울 것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매일매일 반복된다.
한 번 놓친 집안일은 지구를 덮친 플라스틱 쓰레기와 같아서 소멸되지 않고 집 안 어딘가에 쌓인다. 그리고 반드시 내게로 되돌아온다. 때로는 더 크게 돌아온다(음식물 쓰레기를 며칠 동안 치우지 않은 여름날의 싱크대 배수구를 생각해보라). 그래서 나는 집안일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되도록이면 일이 생기자마자 처리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와 이불 매무새를 정리하면서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외투는 벗는 즉시 옷걸이에 건다. 손톱을 깎으면 깎인 손톱은 바로 휴지통에 버리고, 쓴 손톱깎이는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다 둔다. 싱크대의 설거지는 그 밤을 넘기지 않으며, 빨래는 그때그때 하고 건조대의 빨래는 마르면 잘 개어 옷장에 넣는다. 하루를 마치고 잘 정돈된 침대로 뛰어드는 나, 손톱깎이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나, 욕실 수납장에서 보송보송 잘 마른 수건을 꺼내는 것도 나다. 이 집 안의 혜택은 온통 내 것이다.
집안일을 매일 하면 좋은 점은 또 있다. 독립한 이후로 가끔 ‘자다가 이대로 죽으면 어쩌지?’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울 때가 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샤워하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잘 정돈된 방에서 잠드는 것이다. 이대로 발견(?)돼도 좋을 만큼 집 안이 말끔하다면 쓸데없는 망상 정도는 훌훌 털어내고 푹 잘 수 있다. - 손혜진(마케터, 작가)
 
혼자인 삶에서 집안일은 공평하다. 딱 내 몫만큼, 딱 나처럼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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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예린
  • photo by Stocksy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