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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체질, 이유진

사소한 감정까지 입 밖으로 드러내는 남자는 흔치 않다. 배우 이유진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날씨가 따뜻해서, 의상이 좋아서, 사진이 잘 나와서, 커피가 맛있어서 내뱉는 그의 말은 대단한 것은 아닐지언정 촬영장에 두루 퍼졌다. 이유진은 그 자체가 그날의 분위기였다.

BYCOSMOPOLITAN2019.11.29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니트 톱 43만5천원, 팬츠 59만5천원 모두 아워레가시 by 비이커. 셔츠 1백9만원 알렉산더 왕. 스니커즈 95만원 N°21 by hanstyle.com. 넥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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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이 많은 조금 흔한 이름을 가졌어요. 포털에 검색하면 바로 뜨지도 않는데, 따로 활동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처음에 소속사 들어왔을 때 이름을 몇 개 받았어요. 선율, 정욱이 등이었는데 저랑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었어요. 가끔 어머니가 재미로 사주를 보고 오시는데, 유진이라는 이름은 한 만큼 결실을 맺는 이름이고 소속사에서 고려하던 이름은 한 것보다 1.5배 더 잘되는 이름이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 만큼 정직하게 이뤄야 보람 있다고 생각했어요. 있을 유(有)에 참 진(眞), 진실이 있다는 뜻을 가진 제 이름처럼요.
 
최근에는 <멜로가 체질>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이병헌 감독님과의 첫 인연은 <극한직업> 오디션이었어요. 최종 후보까지 갔는데 아쉽게도 함께하진 못 했어요. 그런데 절 기억하시고 드라마 오디션에 다시 불러주신 거예요. 이번에 <멜로가 체질> 뒤풀이에서 “저 왜 뽑으셨어요?”라고 여쭤봤는데, 영화 오디션 당시에 제 영상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캐스팅을 고민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내가 천만 영화에 출연할 뻔했구나 싶어서 기쁘고, 자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속 커플들은 모두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죠. 가장 공감 가는 커플은 누구였어요?
‘진주’와 ‘환동’이 전형적인 전 연인의 모습 아닐까요? 어릴 때 만난 커플이라 그들의 과거가 소중하면서도 슬픈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남자들은 실패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진짜 많이 성장하거든요. 20대 초반의 사랑은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경험도 없지만, 가진 게 없기에 감정적으로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시기의 사랑이니까요. 의외로 ‘환동’을 보고 자신의 구 남친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을 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대부분은 구 남친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죠, 하하.
 
유진 씨는 좋은 구 남친인가요?
네. 후회 없이 잘해줬고 실제로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환동’과 ‘진주’는 둘 다 어렸기 때문에 많이 실수했던 거예요. ‘환동’이 별로인 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경험이 부족해서 서툴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소중한 사랑을 했고, 그 시간이 지나간 것뿐이지 그도 좋은 남자일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진주’에게 그랬듯, 잘해주겠죠?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실제로 실패를 통해 뭔가 배웠던 경험이 있어요?
전 성격이 외모와 많이 달라요. 생긴 건 교회 오빠나 초식동물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육식을 좋아하고 교회도 안 다녀요. 실제 성격은 저돌적이에요. 일단 부딪히고 보는 편이라 항상 실패하고 이불킥할 일이 많이 생기죠. 많은 사람들이 이불킥을 할까 봐 평생 시도조차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불킥할 일은 한두 번 하면 힘들지만, 100번 하면 뭘 실수했는지 생각도 안 나요. ‘저번에는 그런 것도 했는데 이게 별거냐?’ 같은 마인드가 생겨서 사람이 용감해지더라고요. 시도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두렵지 않게 되죠.
 
<멜로가 체질> 출연진 대부분이 형, 누나였어요. 촬영을 계기로 친해진 배우가 있을까요? 천우희 배우와 붙는 신이 많았죠?
제 기준에서 제가 ‘환동’의 캐릭터를 정말 진실되게 표현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인데, 우희 누나 도움이 컸어요. 촬영 초반에 제가 이 작품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얘기한 적 있었는데, 누나가 제 진정성을 알아준 것 같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엄청 많이 도와주셨어요. 한번은 누나가 “같이 연기하면서 너 연기 느는 게 내 눈에 보인다. 그러니까 기죽지 마, 지금처럼만 하면 분명히 잘될 거니까”라는 카톡을 보내줬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우희라는 배우에게 그런 얘기를 듣는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큰 힘이 됐죠.
 
카디건 1백63만원 N°21 by hanstyle.com. 팬츠 가격미정 산드로 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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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자작곡을 소개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에 직접 그린 그림이나 댄스 영상을 올리기도 하죠. 이렇게 다재다능한데, 그중에서도 연기자가 된 이유는 뭐예요?
내가 가진 재능을 다 써먹을 수 있는 게 배우인 것 같아요. 오늘 화보 촬영할 때의 포즈나 동작도 춤을 춰봐서 쉽게 할 수 있었어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미술이나 음악, 춤 같은 다른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요. 배우의 길을 선택한 건 여러 예술 중에서도 영화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술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거든요.
 
지적인 선배, 미소가 예쁜 연하남, 풋풋한 구 남친 등, 작품마다 연기한 캐릭터의 분위기가 꽤 비슷해요. 선한 인상이라 배우로서 역할의 한계를 느낄 때는 없어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위치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 이미지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는 <파수꾼>의 ‘기태’ 같은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가정환경이나 사회에서 받은 상처가 있는,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캐릭터요. 외모와는 다르게 싸한 분위기를 내는 연기에 자신 있거든요.
 
작품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지내요?

<멜로가 체질> 이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혼자 카페 테라스에 앉아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데, 먼저 와서 인사하시는 분도 꽤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니 어색한 상황이 이어지죠. 저는 아직 유명하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그리고 신기한 건, 오늘처럼 스케줄이 있어서 예쁘게 꾸민 날은 어디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말을 안 걸어요. 그런데 면도도 안 하고 쌩얼로 모자 쓰고 나가는 날은 꼭 알아보시더라고요. 요즘 가장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예요.
 
꾸미지 않았을 때는 왠지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사람이라 말 걸기 쉬운 게 아닐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하. 저는 손 닿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 좋아요. 어떤 분야에서든 전성기는 언젠가 끝나요. 아무리 유명한 배우도 잊히는 순간이 오죠. 그리고 전 누가 알아보는 걸 즐기거나 팬이 많아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잘난 사람보다는 손 내밀면 닿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다음은 어떤 작품으로 만날 수 있어요?

차기작은 검토 중이고, 여행부터 가려고요. 그동안 너무 일만 하고 살아서 집인 일산과 서울만 오갔거든요. 20대 초·중반에 친구들이랑 돈 모아서 해외여행 다니는 시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당시에 여행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기억이 없어요. 제가 28살인데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하니 다들 놀라더라고요. 그런 반응을 보고 내가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구나 깨달았죠. 일단 강원도부터 시작해보려고요. 영화제 때문에 들렀던 부산도 다시 가볼까 해요. 해외에 간다면 풍광 좋은 곳보다는 뉴욕 같은 도시에 갈 거예요. 제가 또 발에 모래나 흙 묻히는 건 안 좋아하거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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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Kim Ye Rin
  • Photographer Park Ja Wook
  • stylist 전진오
  • hair 보련(알루)
  • makeup 경희(알루)
  • assistant 김상혁
  •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