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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무적핑크'의 하루를 공개합니다

출근이 없지만 퇴근도 없는 게 단점. 자유의 몸일 것 같지만 한 주에만 2~3번 마감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도 신선하고 재치 있는 스토리로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얻는 웹툰 작가들. 웹툰 <조선왕조실톡>의 인기 작가 무적핑크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엿봤다.

BYCOSMOPOLITAN2017.02.03





 6:00 AM 

내 이름은 무적핑크

새벽 6시.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간밤의 이슈를 체크한다. 시사, 경제, 외신, 웃긴 짤방까지 웹툰을 그리는 이로서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체크하는 건 필수다! 그렇다. 나는 웹툰 작가다. 사람들은 나를 ‘무적핑크’라 부른다.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내게 정답은 하나였고 그렇게 웹툰 작가는 내게로 와 천직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마감도 제대로 달려볼까? 



 8:00 AM 

역사를 아시나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오늘은 무슨 얘길 써볼까? 내 달력에는 과거의 그날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1월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아, 이 추운 날씨에 전쟁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자고로 웹툰의 생명은 재미와 공감이랬다. 정보 전달에만 집중하면 그게 웹툰인가? 다큐멘터리지. 그래서 시나리오를 짤 때는 오감을 활용해 쉽게 접근하는 편이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시나리오를 쓰고 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언제부턴가 잠을 쪼개어 자기 시작했다. 완벽한 시나리오도 한숨 자고 보면 허술한 구석이 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눈 좀 붙여야겠다. 


 11:00 AM 

전사의 일용할 양식

“마감도 식후경!”은 무슨, 몸에 연료를 채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애견인답게 강아지 밥부터 챙긴 뒤 내 밥을 준비한다. 예전에 한 끼를 든든하게 먹었다가 마감과의 전쟁에 졸음까지 몰려와 피를 본 전적이 있어 진수성찬은 거절한다. 대신 이럴 때를 대비해 ‘군용 식량’을 두둑이 챙겨두는 편.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도 ‘소일렌트’와 같은 미래식 식사가 주목을 받는다지? 이와 흡사한 대체식을 마련해 아몬드 두유와 치아시드를 곁들인 다음 전쟁을 앞둔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꿀꺽! 배도 불렀으니 전장으로 나설 준비는 끝났다.


 2:00 PM 

지켜보고 있다

학창 시절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했다.

“너희는 대중이 아냐. 너희의 마음속에는 젠체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거든.” 

그 말씀은 내 작품의 주요 독자층을 고를 때도 큰 힘을 발휘했다. 지금도 내 태블릿 PC 아래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그림이 붙어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는 애들도 있고, 폰을 보면서 딴짓하는 애들도 있다. 간혹 ‘중흥기’처럼 어려운 단어를 쓰면 아이들의 뜨거운 눈빛이 느껴진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묻는 그 눈빛. ‘아니, 내가 무슨 짓을!’ 정신을 번뜩 차리고 재빨리 쉬운 단어로 고쳐 쓴다. 그렇게 가원고를 완성하니 피로가 몰려온다. 잠깐 눈 좀 붙일까?


 5:00 AM 

시간을 달리는 작가

이제 가원고를 토대로 대화와 그림을 넣을 차례. 역사 속 사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니 황희 정승에게 휴가 대신 고기 기프티콘을 선물해야겠다.’ ‘눈물 많았던 영조는 SNS에 눈물 셀카를 올릴 듯!’ 게다가 선조들의 모습을 그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사모관대를 갖추고 임금에게 절할 땐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모자가 떨어지니까. 관복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캐치하는 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담뱃대, 짚신 같은 옛날 물건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요즘도 이따금 가채를 쓰고 작업하거나 커피를 밥그릇에 내려 마신다. 그때마다 느끼지만 우리 선조들,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6:00 PM 

밀당, 독촉 그리고 마감

<조선왕조실톡>의 마감일은 화요일과 금요일. 마감은 늦어도 오후 3시를 넘겨선 안 된다. 이때야말로 담당 PD가 큰 의지가 된다. 포털에 원고를 넘길 때 후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고 원고가 늦어질 땐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돼 날아오는 독촉으로부터 날 지켜주니까. 언젠가 단행본 인쇄를 2시간 앞두고 목차가 나오지 않아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나는 “잠시만요!”를 외치며 드로잉 머신처럼 그림을 그려냈다. 다행히 인쇄는 무사히 진행됐지만 매번 뜻하지 않게 피를 말리는 입장이라 죄책감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마감 아래 운명 공동체. 오늘도 PD에게 5분에 한 번씩 “다 했어요!”를 외치며 한 회를 마감한다. 




 8:00 PM 

웹툰 작가로 산다는 것

마감 땐 거의 사람답길 포기하기 때문에 원고를 넘기면 몽롱한 상태라도 맛있는 걸 먹으며 나에게 보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 회가 업데이트되면 심판이 시작된다. 조회 수는 올리는 것만큼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작가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공감 요소를 찾으려 발버둥을 친다. 아침부터 포털을 뒤지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누군가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난 말한다. “로봇이 돼 천 살까지 살고 싶어.” 인간 문명이 끝날 때까지 각 시대를 어떤 형태로든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다. 그래서 오늘도 난 공부한다. 진정한 관찰자가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