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스모 라디오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너"

최근 개봉한 영화 <러브, 로지>와 <오늘의 연애>의 공통점은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남녀가 뒤늦게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부디 코스모 독자들은 친구와의 썸 때문에 오랜 시간 속 끓이는 일이 없도록, 코스모 라디오가 조언에 나섰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15.01.23


친구 사이라는 그 녀석들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하기 위해선 먼저 우정의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10년 이상 알고 지내 서로의 연애사도 꿰고 있으며 성적 농담이 자유로워진 친구끼리 “야, 친구가 발정 나서 헉헉거릴 땐 섹스도 할 수 있는 게 좋은 친구 사이 아냐?”라는 농담을 던지곤 깔깔거리기도 한다지만, 남녀 간의 우정에서 스킨십의 범위는 민감한 주제가 될 것이다. 여자 친구들끼리 손도 잡고 안아주기도 하니까 그 정도는 문제없을까? 횟수나 농도는? 그리고 그런 스킨십을 하더라도 서로가 전혀 이성적인 끌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정이라는 안전망 안에서 미묘한 분위기를 즐긴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연인 사이였던 이들이 연애 종결 후 친구로 관계를 전환했을 때. ‘남녀 사이에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가장 짙은 의혹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알 만큼 알지 않는가? 몸을 섞은 경험이 있는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기류, 그 둘만이 아는 느낌. 그걸 무시하고 우정을 유지하는 자제력? 혹은 쿨한 성격에 감탄하며 친구라는 걸 믿어줘야 하는 것일까? 각자 싱글인 상태라면 이성과 친구로 지내든 사랑을 하든 그건 그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일 뿐이다. 꼬마 시절부터 알고 지내 도무지 이성으로 느낄 구석이 하나도 없는 친구가 아닌 이상 친구로 시작한 이성은 얼마든지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두 사람이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친구의 영역에서 호감을 쌓아나가며 연인으로 발전하는 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남녀 간의 우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유지된다. 한창 연애 중인 상대에게 호감을 품게 됐지만 친구로 머물면서 인내심 많은 사냥꾼처럼 기회를 노리거나, 친구로 잘 지내다 한쪽이 먼저 상대를 이성으로 인식하게 되지만 고백했다가 연인이 되기는커녕 어색해져서 친구로도 지내지 못할까 봐 용기 내지 못하는 관계도 있다. 그런데 상처만 남은 연애를 막 끝내고 당분간 깊은 관계를 기피하는 상태에서, 몸과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상대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말하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나?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며 연인인 듯 아닌 듯 우정의 호의를 이용하는 관계는 또 어떤가? 그 밖에 그 친구와는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그날의 분위기, 이를테면 평소와 다르게 이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옷차림과 혈중 알코올 농도의 짙음이 만들어낸 충동적 하룻밤 이후의 애매한 관계들이, 남녀 사이에도 분명 존재하는 우정이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경우가 아닐까? - 현정(<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저자, 섹스 칼럼니스트)


사랑과 우정 사이 

여러모로 90년대 음악이 화제다. 그에 대해선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 때문일 수도 있고, 21세기 음악 산업이 음원 데이터베이스를 적극적으로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당시 음악이 환기하는 특정한 정서가 보인다. 안정적이고 관습적인 화성이나 멜로디 라인, 노랫말의 서사 등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서사’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10~20대를 겨냥한 노래 중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감정을 다루는 곡이 많았는데, 지금으로 치면 ‘썸’을 다룬 노래라 할 만하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1992년에 발표된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가 있다. 이 노래의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이라는 구절은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와 비견될 만큼, 지금 들어도 새삼 감탄이 나온다. 

이 노래가 건드린 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남녀가 가질 수 있는 애매한 감정이다. 가깝게 지내는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애매한 감정. 그건 사랑이라 부르기도 뭣하고 우정이라 하기에도 석연치 않다. 그러니까, 90년대식으로 말하자면, 별거 아닌 사이라고 믿었는데 문득 삐삐를 치고 싶어진다거나,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진다거나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다. 

나는 여자들과 얘기하는 걸 더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러는 동안 애매한 감정도 생겼다. 드라마나 영화 혹은 만화에서는 그들이 특히 예쁘기 때문에 그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경험적으로 외모는 거들 뿐…. 유머러스하고, 관심사도 비슷하고, 같은 사안에 분노하는 동시에 서로의 의견에 대해 이견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친구와 복잡해지곤 했다. 그 속절 없는 감정의 틈에서 나는 ‘사랑과 우정 사이’를 흥얼거리곤 했던 것이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구절에선 특히 울컥했는데, 그때마다 되물었다. ‘이것은 사랑인가, 우정인가?’  

처음엔 남녀 사이에 우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게 속물 같아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흔쯤 되고 나니 그게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이건 좀 복잡한 얘기다. 단순하게 ‘남녀 사이에 우정은 불가능해!’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정은 가능하다. 실제로 내겐 그런 여자 친구들이 꽤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던 여자들도 꽤 있었다. 앞서 말했듯, 유머러스하고 관심사도 비슷하고 같은 사안에 분노하면서도 서로의 생각에 이견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여자 친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기 전에, 정말로 좋은 관계다. 

‘사랑’이란 여기에 성적인 관계가 개입한 결과라고 본다. 그런데 이 둘을 명확하게 나누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기준 없이 누구와든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성적인 관계나 욕망 혹은 스킨십 같은 건 부차적인 문제다. 핵심은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거기에 이런저런 난관들이 생길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비로소 관계를 규정한다. 다시 말해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감정은 사랑과 우정을 분리하기 때문에 생기지만, 나는 그걸 명확하게 나눌 순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어느 하나를 고르라면 기꺼이 ‘사랑’을 지지하겠다. 이성 친구와 나누는 속 깊은 우정 역시 사랑이다. 이때 그녀 혹은 그를 만지고 싶다(혹은 독점하고 싶다)는 욕망과 감정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늘 그렇듯 그 후의 일이다. 쉽지 않다. 진심으로, 애매한 감정과 관계로 고생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 - 차우진(<청춘의 사운드> 저자, 대중음악 평론가)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너 

친구와 썸 타느라 속이 타들어가는 독자들의 사연에 그린라이트 지수를 매겨봤다.



뒷북녀의 고백 그 아이와는 4년 전 알바를 하면서 만났어요. 같은 동네에 살아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지금은 연애는 물론이고 가정사, 주변인들에 대해서까지 모든 걸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예요. 제가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땐 늘 전화를 해주고, 어쩌다 술을 마신 날엔 저한테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해서 ‘이상한 사람 만나지 마!’라고 말하는 친구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아이가 남자로 느껴지는 거예요. 사실 예전에 이 친구가 저한테 고백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땐 제가 거절했어요. 이번엔 제가 고백해볼까 생각하다가도, 진짜 좋은 친구를 잃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헤어지고 나면 그땐 친구도 아닌 남남으로 살아야 하니까요. 이런 제 감정을 숨기고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게 나을까요? -이윤희(26세, 영화관 매니저)


그는 이 날만을 기다려왔을 거예요. 당장 고백해요!

차우진 제가 봤을 때, 당시 고백했다 거절당한 그 친구 분도 윤희 씨처럼 어딘가 사연을 보냈을 것 같네요. ‘이 마음을 숨기고 계속 친구로 지내야 할까요?’라고요. 그때 이런 조언을 들은 거죠. ‘그 마음을 숨기고 꾸준히 기다려라, 그럼 언젠가는 때가 온다.’

현정 제 생각도 그래요. 그때가 지금 온 거고요. 밤 귀갓길을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걸 보면 이 분한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사연 주신 분의 마음은 분명하니까 그의 마음은 어떤지 직접 물어보시는 게 좋겠네요. 헤어지게 되면 좋은 친구를 잃을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우정이 영원할 거라 믿으시나요? 그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 아닐 것 같은데요? 

김가혜 저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챙김을 받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졌고, 그가 어느 날 사라질까 봐 두렵다면 잡아야죠.  



키스한 후에 ‘베프’까지는 아니지만, 이성 친구 중엔 가장 친한 10년 지기가 있어요. 요즘 애들과 달리 개념이 제대로 박힌 친구라 한때 마음을 두었던 적은 있지만, 길진 않았고요. 최근 제 자취방에 얘가 자주 놀러 오는데요. 예전에 다른 친구와 셋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다 차가 끊겨서 저희 집에서 자고 간 후부터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 같이 영화를 보다가 팔베개를 한 상태에서 제가 잠이 든 거예요. 잠깐 졸았다 눈을 떴는데 글쎄, 그 친구가 절 보고 있더라고요. 서로를 쳐다보다 진짜 뭐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키스를 하게 됐어요. 웃긴 건 그 후에 서로 민망해하지도 않고 그냥 평상시처럼 서로를 대했다는 거예요. 키스까지 해놓고 평소와 똑같이 지내는 우리, 비정상인가요? -고은혜(25세, 회사원)


혹시 지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진 않나요? 미안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요.  

현정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감정부터 객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엔 그 친구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거든요. ‘개념이 제대로 박힌 친구’ 하는 식으로 좋게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 편하게 팔베개를 하는 것도 그렇고요.   

차우진 이런 일이 있을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넘기는 게 가장 위험해요. 관계를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는 거죠. 남자들은 진화가 덜 된 동물이라 정말 가르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말해야 알아들어요.

윤다랑 제가 비슷한 계기로 6년간 친구로 지낸 남자랑 연인이 됐는데요. 그때 저흰 다음 날 만나서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에 대해 치열하게 대화를 나눴어요. 그런데 두 분이 이렇게 키스한 후에 평상시처럼 서로를 대했다는 건, ‘더 이상 우리 관계의 발전은 없다’란 암묵적인 신호 아닌가요? 좋은 친구지만, 연인으로의 발전은 조금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베프와 애인의 중간쯤  대학 동기인 남자 베프가 있는데요. 원래 매너가 좋은 애인 줄 알면서도 가끔 ‘혹시?’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친구들과 같이 술 마실 때 “여자가 술 많이 마시고 뻗으면 큰일 나!”라면서 제 잔을 뺏어가서 자기가 마시는가 하면, 집도 멀면서 굳이 택시를 같이 타고 저희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가거든요. 또 한번은 동기들끼리 1박 2일로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제가 베개가 없는 걸 보더니 자기 베개 한쪽을 내주면서 같이 쓰자고 하더라고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설거지를 하고 있는 제 옆을 한참 얼쩡거리더니 머리를 쓰윽 묶어주고 가는 거예요. 다음번에 둘이 만날 약속을 정하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행동은 매너 이상인 것 같은데, 평상시 행동을 보면 그냥 매너 좋은 친구예요. 이 친구가 종종 보이는 ‘과한’ 매너의 이유는 뭔지 자꾸만 헷갈려요. -임정아(27세, 대학원생)


인생은 길고, 남녀 간의 일은 모르는 것. 현재를 즐겨요.

차우진 남자분이 계속 관계의 여지를 남기는 분위기네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3년 후쯤 연애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어릴 땐 이성 친구한테 젠틀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런 강박 자체가 그들을 여자로 봤기 때문이더라고요.

현정 지금 이대로 그의 호의를 즐기는 것도 좋지 않나요? 사실 여자들은 이성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여러모로 든든해요. “오늘 예쁘다”라고 동성 친구가 말했을 때와 이성 친구가 말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만 봐도 그렇죠. 그러니까 그의 행동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의 친절을 기쁘게 생각하며 좋은 친구로 지내세요. 그러다 발전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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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가혜
  • 윤다랑<br />Photographer (러브
  • 로지)영화인
  • <br />(프렌드 위드 베네핏
  • 원 데이)중앙일보
  • (그린라이트)박진주 <br />Illustrator 우주로<br />Recording 팟빵스튜디오<br />Guest assistant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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