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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미쓰홍, 검블유, 은중과 상연의 공통점은?

바야흐로 여돕여 서사의 시대.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며, 끝내 구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프로필 by 천일홍 2026.09.09

최근 새 시즌을 시작한 넷플릭스 일본 연애 예능 프로그램 <불량 연애 시즌2>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았다. 여성 출연자 마리린이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누구에게나 여지를 주는 이상한 여자’라는 소문에 휘말리자, 이를 전해 들은 다른 여성 출연자 하짱과 루루가 마리린을 옹호하며 남성들을 불러 추궁한 것이다. 그 장면은 한 여자가 남자들의 몇 마디로 ‘나쁜 여자’가 되고, 같은 여자들이 그것을 경계의 빌미로 삼는 전형적인 도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구도를 가장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연애 리얼리티의 문법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여적여’ 구도를 상품화하는 것은 미디어의 오랜 관습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드라마는 여성 간의 다양한 갈등 양상을 ‘질투’라는 단일한 감정으로 치환했다. 드라마 <신데렐라> <토마토> <진실> <이브의 모든 것>으로 대표되는 로맨스 드라마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악녀와 착한 여자의 대립을 갈등 축으로 삼았다.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흔히 ‘악녀’에게 주어졌다. 문제는 그 욕망이 독립적인 성취욕으로 끝까지 다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사는 야심 있는 여성을 다른 여성과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게 만들면서, 직업적 욕망과 상승 욕망을 다시 질투의 문제로 축소하곤 했다. 따라서 질투에 사로잡힌 악녀를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결말은, 당대의 서사가 선뜻 긍정하지 못했던 여성의 직업적 야심과 상승 욕망까지 함께 처벌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최근의 작품들은 ‘여적여’ 문법이 익숙하게 반복되던 바로 그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관계를 다시 쓰고 있다. 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과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0년대 직장에서 ‘미쓰 홍’, ‘김 양’으로 불리며 조직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성 직장인들을 서로의 경쟁자가 아닌 공모자로 세운다. 이들은 자신들을 중요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사내의 시선을 역이용해, 바로 그 조직이 감추고 있던 부패를 파헤치며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능력을 발견한다. 과거 드라마가 남성의 인정을 두고 여성들을 서로 경쟁시켰다면, 이 두 작품은 차별받는 여성들이 각자의 현실과 능력을 연결해 오히려 남성들이 만든 기득권과 맞서게 한다. 같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삼지만, 여성들의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여성 간의 관계를 적대로부터 시작하는 작품들도 ‘여적여’의 도식을 탈피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옹산의 여자들은 주점을 운영하는 미혼모인 ‘동백’(공효진)을 경계하며 배척하지만, 아이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동백’에게 자신들의 과거를 투영하고, 끝내는 ‘동백’이 겪는 소외와 폭력에 함께 맞선다. ‘진숙’(염정아)과 ‘춘자’(김혜수)의 파란만장한 삶에 얽힌 상처, 배신, 오해를 다루는 영화 <밀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회복되는 질곡의 과정을 그려낸다. 두 작품은 여성 간의 연대가 서로에 대한 무결하고도 완전한 신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흔들리고 깨지면서도 다음을 함께 말할 수 있는 ‘가능성’임을 깨닫게 한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여성 간의 긴장감 역시 연대의 중요한 감정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작품이다. 포털 사이트 업계의 라이벌인 ‘배타미’(임수정)와 ‘차현’(이다희)은 치열하게 맞붙는 과정에서 상대의 능력과 야심을 알아보고, 먼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동료의식을 만들어간다. 여기에서 ‘라이벌’이라는 위치는 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버려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같은 여성 서바이벌 리얼리티가 증명했듯, ‘적’이 된 상대는 나에게 가장 깊게 연루된 관계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정년이>의 ‘정년’(김태리)과 ‘영서’(신예은)는 서로에게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이면서도 서로의 재능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보는 동료다. 상대가 존재하기에 자신의 한계 또한 경신할 수 있는 그들은 그 경쟁심을 동력 삼아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까지 나아간다. 팀 전투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역시 이런 라이벌 관계의 모순을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낸다. 군인, 소방관, 운동선수, 스턴트우먼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강인함을 증명해온 여자들은 승리를 위해 상대를 제압하고 탈락시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체력과 판단력을 시험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동력을 경쟁 상대에게서 발견한다.


한편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여적여’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여성 간의 복잡한 감정을 생애 전체로 확장해 보여준다. 10대 때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대학 시절에는 한 남자를 둘러싼 감정과 오해로 멀어지기도 하고, 사회인이 된 뒤에는 같은 창작의 세계에서 부딪히며 라이벌 관계가 되기도 한다.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쉽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서로에게 품는 질투는 남자를 차지하려는 마음으로만 환원되지 않고, 상대가 가진 재능과 삶을 선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그 선망은 다시 열등감과 존경, 애정과 원망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상연’(박지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동행할 사람으로 일생의 적이면서도 유일한 친구였던 ‘은중’(김고은)을 다시 찾는 장면은, 평생 서로를 이기고 싶어 했던 마음은 평생 서로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뜻한다.


‘여적여’ 프레임이 가진 진정한 문제는 그것이 여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여자는 여자를 미워한다’는 도식으로 혼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서, 서로 다른 욕망을 좇으며 여자와 여자는 늘 팽팽히 맞선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여자들이 얼마나 서로를 위하고 돕고 있는지를 증명하기보다는, 여성과 여성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각각의 맥락을 가진 사건으로 대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하찮고 사소한 소동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을 특별히 부끄러워하거나 실패로 규정할 필요는 없으며, 불화까지 지워가며 아름다운 연대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 서로를 돕는 여자만큼 서로를 미워하고, 다투고, 끝내 화해하지 않는 이야기 역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적으로, 동료로, 친구로, 원수로 수많은 관계의 모양을 그리며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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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천일홍
  • 글 복길(자유기고가)
  • 아트 디자이너 장석영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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