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다린 옷은 종종 자기 관리와 정돈된 삶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매일같이 옷을 다려 입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옷장 맨 앞에 놓인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림질할 시간은커녕 생각할 여유도 없이 구겨진 바지를 그대로 입고 출근길에 나서며 문득 든 생각 하나. ‘꼬깃꼬깃 구겨진 옷이 패션 트렌드가 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1분 1초가 소중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패션계가 이런 간절한 마음을 읽은 걸까? 디자이너들은 2025 S/S 컬렉션에 의도적으로 주름 잡힌 옷을 대거 선보였다. 대표 주자인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그의 어린 시절을 되짚었다. 몰래 옷장을 열어 엄마, 아빠 옷을 입어보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당시의 호기심과 설렘을 표현했다. 엑스트라 오버사이즈, 좌우가 다른 비대칭 디자인 그리고 꼬깃한 주름 디테일은 장롱 안에서 오래 묵은 옷을 꺼내 입은 어린아이의 모습과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그런가 하면 프라다와 피터 도, 로샤스가 선보인 ‘크링클’ 룩은 자연스러운 주름의 편안한 느낌과 세련된 인상을 동시에 전했다. 예술혼을 더한 디자이너도 있다. 구겨지다 못해 뭉개진 주름 텍스처를 레더 재킷에 구현한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 그는 이번 시즌 익숙한 것을 왜곡하거나 상반된 요소를 융합하면서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시도했다. 아브라는 잔뜩 주름진 핑크빛 원숄더 드레스, 구겨진 종이 잡지 한 페이지를 찢어 입은 듯한 원피스 등으로 과감하고 재밌는 상상력을 펼쳤다. 쇼에 등장한 주름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이끄는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완벽하게 다려져야 할 의상이 되레 구겨지자 개성으로 인식되고 해방감을 안겨준 것이다. 패션 화보를 찍을 때 반드시 할 일은 다림질이었다.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옷이야말로 에디터의 기본 덕목이라고 믿었는데, 구겨진 주름을 마음껏 뽐내는 날이 오다니! 그런데 디자이너들은 왜 주름을 강조한 걸까? 자연스러운 주름이 ‘불완전한 아름다움’에 대한 영감이 된 건 아닐지. 단순히 물리적인 디테일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주름진 옷은 실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결 하나하나는 긴장과 자유 같은 경험과 서사를 나타낸다. 미완성이 보여주는 새로움을 깨달은 것이다. 문득 종이 기반 섬유를 사용해 구겨진 옷을 디자인했던 프라다 2023 S/S 컬렉션이 떠올랐다. 라프 시몬스는 당시 쇼 노트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몸짓은 표면을 생기 있게 만든다. 삶의 흔적이 의류의 형태를 만들고 의도적인 찢김, 비틀림, 주름과 구김이 옷감에 내재된 아름다운 기억처럼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는 컬렉션을 장식한 주름을 삶이라는 작품이 보여주는 ‘오류의 몸짓’이라고 비유했다. 구김이란 미흡한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명이다. 더 이상 주름은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옷이 말하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이제 바쁜 아침 주름 없이 깨끗한 옷을 찾느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옷장 앞에서 주름진 셔츠를 발견해도 걱정하지 말고 ‘이 주름이야말로 치열했던 어제의 나를 기록하는 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보자. 덜 완벽한 듯 보이는 이 존재는 어쩌면 진짜 우리 삶의 모습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에디터는 분명히 구겨지고 말 셔츠를 꺼내 ‘이건 주름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만의 작품’이라 여기기로 했다.
1 PETER DO 2 ACNE STUDIOS 3 MIU MIU 4 ABRA 5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