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촉각을 곤두세우는 통역사의 모든 것, 박소운 인터뷰
그는 “언어만 옮기는 것이 통역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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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매일경제신문에서 3년간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EICC(구 영어통번역학과)를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에 동 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과에 입학했어요. 한 학기를 다니다가 공채 시험을 봤는데 덜컥 최종 합격하게 되었죠. 영자 매체의 기자가 되는 꿈이었던 터라 시험 삼아 공채에 지원했던 거였거든요. 흘려보내기엔 너무 큰 기회였던 터라 입사했어요. 통번역대학원 출신이기 때문에 국제부에서 들어갈 법도 했는데 사회부에 지원해서 3년간 일했어요. 국제부는 회사에 출근해 외신을 체크하고 기사화할 사안을 골라 보고하고 기사를 작성해요. 반면 사회부는 사건 현장을 발로 뛰어야 하죠. ‘영어 잘해서 뽑힌 애’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몇 년간 언론 고시를 준비해 입사한 동기 언니, 오빠를 사이에서 저를 증명하고 싶었죠. 덕분에 그 시절에 일에 대한 태도, 열정을 기를 수 있었고 좋은 기회, 경험도 많이 얻었어요. 되돌아보니 스티브 잡스가 “삶의 모든 여정, 궤적은 미래의 나와 연결된다”라고 말한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궁극의 꿈이었던 영자 매체에서 일하려면 제 영어 실력을 입증해야 했어요. 20대 전에 학위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죠. 또 언어는 조금만 소홀하면 빠르게 실력이 사라지니까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야 했죠. 다행히도 어린 나이에 대학원을 입학했던 터라 3년 휴학하고 돌아갔을 때도 대학원생 평균 연령보다 1살 어렸어요.
어려서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아니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영어를 잘하면 멋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겠구나’, ‘어떤 일, 공부를 하든 영어가 필요하구나’ 싶어서 매진했을 뿐이죠. 오히려 통역사가 되기로 결정하고 치열하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상한 데 공백이 있어요. 예를 들면 대통령 연설문에 나오는 정치적인 단어는 아는데, 과일 이름은 모르는 식이죠. “탄핵이 뭐야?”라고 물으면 impeachment라고 바로 답하지만 문고리가 뭐냐고 물으면 ‘아 그거 뭐였지?’라고 머리를 긁적였어요. 지금도 사실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요.
모두의 궁금증일 듯해요. 통역사는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나요?(웃음)
대학원 때는 어떤 콘텐츠든 영어로 소비하면 공부라고 우길 수 있으니까.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도 열심히 봤고(웃음). 제 두 번째 책 <나의 마지막 영어공부>에도 썼는데 미국 <코스모폴리탄>도 참 많이 읽었어요. 다른 잡지보다 글맛 나는 칼럼들이 많았거든요. 또 통역대학원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방법일 텐데 장르별로 엑셀 파일에다가 한국어와 영어 단어를 정리했어요. 지금까지도 계속 정리하고 있는 터라 제 가장 큰 자산이에요. 같은 분야에서도 더 이상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거든요. 예전에 ‘녹색 성장’이라 말했다면 지금은 ‘탄소 중립’으로 표현하죠. 이런 유행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통역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요건이 있을까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통역사 자격증은 없어요. 다만 한국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역대학원을 나와야 인정받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통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게 첫 단계일 듯싶어요. 입학 후에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자주 드는 예시문 중 하나가 ‘바다에서 시신 6구를 수습해서 인양했다’예요. ‘시신, 구, 수습, 인양’은 한 세트처럼 사용돼요. 언제든지 반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각 단어를 동그라미 치면서 묶어서 외웠어요. 어찌 보면 대학원 시기가 자신의 언어 실력을 마지막으로 갈고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해요. 성장기가 지나면 성장판이 닫히듯 언어도 마찬가지인 듯해요. 내일 당장 회의에서 사용할 단어는 외울 수 있지만, 문장 구조나 표현은 대학원 때 배운 것들이 지금까지 제 밑천이거든요. 현장에서의 유연한 태도나 스타일은 이후에 얼마든지 쌓을 수 있는 부분이에요.

통역사님의 첫 통역 데뷔가 기억나시나요?
대학원 1학년 때 자동차 회사 행사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족한 것 투성이었어요. 동료 통역사나 고객을 대하는 법,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대학원 다니면서 통역 알바를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역사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한번 일했던 고객들이 다시 연락을 주셨어요. 10여 년이 넘게 일하면서 지금은 프리랜서 통역가로서 영어만큼이나 제게 요구되는 덕목에 집중해요. 제가 고객에게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 또 고객이 저를 믿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가?를 많이 생각하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브랜딩보다 더 중요한 건 재구매율이라고 하더라고요. 통역사로서 저를 홍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 번이라도 함께 일했던 고객이 저를 다시 찾을 때 더 깊은 의미와 감사한 마음을 두고 있어요.
통역사마다 각기 전문으로 하는 분야도 있을까요?
저의 경우에는 부전공이 정치외교학이라 그런지 안보 분야 통역이 많아요. 그다음으로는 IT 분야고요. 통역의 전문성을 더 키우고자 올해 오라클에서 발급하는 데이터베이스 관련 국제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현재 시장에서 화두가 되는 분야의 통역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뉴스도 많이 살피고요. 얼마 전에는 난민 문제 관련 회의에 통역하러 갔는데,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터라 축구 이야기를 많이 통역하기도 했어요.
통역은 드러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과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럼에도 발표가 끝나고 Q&A 세션에서 질문이 쏟아져 나올 때면 청중들이 적절하게 이해하셨다는 뜻이니까 ‘오늘 통역이 원활했구나’ 짐작하죠. 어려울 때도 잦아요. 사전에 있는 그대로 통역을 하더라도 한국에서 일종의 밈, 유행어로 사용되는 단어의 경우 그 단어를 피해 가려고 노력하죠. Democratization(민주화), Feminism(페미니즘)과 같이 국내에서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여지는 단어들을 통역할 때도 그렇고요.
통역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매번 다른 사람, 상황, 언어에 놓이는 게 즐거워요. 어느 날은 초등학생 앞에서, 또 어느 날은 장관님을 모시면서 저는 매번 다른 언어를 구사해야 하거든요. 이 알록달록한 느낌이 참 좋아요. 또 제가 살면서 쉬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통역하면서 얻는 인사이트도 상당하고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통역사로 일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나요?
통역을 언어가 아닌 기술로 보았을 때 희소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할 줄 아는 영어를 통역하니까요. 그 속에서 저의 쓸모를 입증하는 데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제 장점도 명확히 있어요. 사회부 기자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덕분인지 자리, 인물의 무게감을 덜 느끼는 편이에요. 어떤 자리에서나 침착하게 일하는 편이죠. 한 번은 행사가 끝나고 나가는데 “여자 통역사가 와서 안 울고 나간 건 네가 처음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적도 있어요. 물론 통역사가 제 직업이지만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이 저의 제1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기자를 관두었지만 글쓰기를 관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책 <통역사의 일>, <나의 마지막 영어공부>도 썼고요. 여러 매체에 기고도 했어요. 본업, 부업의 관점보다 제가 하는 일의 큰 줄기에서 다양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물론 통역은 가능한 제가 가진 모든 걸 총동원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이고요.
「
🔍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통역사 박소운 님에게 물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Drone Snap을 봐요. 드론을 띄워서 도시의 경관을 보여주는 계정인데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켠이 시원해지죠. 또 거리의 불빛이 가득한 야경은 화려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2시간 내외.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알라딘, 당근마켓, Prana Breath, 네이버 메일. 알라딘은 신간 이름만 살펴보아도 트렌드를 읽는데 좋아요. 당근마켓 역시 사람들이 근래 어떤 물건을 샀으며 소장하고 싶지 않은 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죠.(웃음). Prana Breath는 유료 명상 앱인데 스트레스 받았을 때, 피로가 심할 때처럼 상황에 따라 명상할 수 있어서 좋아요.
Credit
- Freelance Editor 유승현
- Photo 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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