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딸·자매’ 그 이름 뒤에 숨은 여성의 이야기
엄마와 딸, 자매, 그리고 대안적 관계까지. 가족이라는 틀 안팎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돌봄과 책임, 그리고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이랑
」이랑은 음악과 글을 넘나들며 작업해온 아티스트다. 최근 출간한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를 통해 가족의 시간을 정면으로 써 내려갔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서 출발한 감정과 경험을 언어로 옮겨 여러 형식으로 확장해간다.
이랑은 어떤 사람인가요?
텍스트를 기반으로 창작하는 사람이요.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책을 쓰기도 하지만 늘 출발점에는 언어가 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감독 등 멀티플레이어나 다름없어요. 마찬가지로 모두 출발점에 언어가 있네요.
언어는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믿음을 전파하고, 역사와 신화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예요.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고, 강력하기도 하죠.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그 힘과 위험을 충분히 알고 써야 하죠. 언어 하나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 수도 있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도 있고, 심지어 속일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음악에서 가난, 죽음, 사회구조 같은 다소 무거운 주제가 자주 등장한 배경은요?
저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해온 거죠. 다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사회가 ‘무겁다’, ‘부정적이다’ 같은 태그를 붙이는 거고요. 저와 멀리 있는 삶을 상상으로만 다루는 건 오히려 어렵고 부정확할 때가 많아요. 부자의 삶,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삶, 우울과 무관한 삶 같은 건 제게 재료가 적으니까요. 반대로 제가 잘 아는 감정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힘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필요 없기를 바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너무 흔해져서,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은 세상이 왔으면 해요. 사람들이 서로의 약함과 고통을 너무 잘 알아서 차별이나 혐오가 설 자리가 없는 상태요. 유토피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혐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되면 또 그 이후의 다른 이야기들이 생기겠죠. 우리는 계속 살아갈 테니까요. 저는 그때도 저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하겠죠.(웃음)
창작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이걸 왜 해야 하지?’와 ‘해야 한다’예요. 한 사람의 인생은 분명히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지?’라는 의심이 있어요. 모든 사람의 삶은 다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고, 또 사료가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주체가 내가 되면 갑자기 부끄러워져요.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요. 저는 그 의심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자기 검열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더 위험했을 것 같아요. 스스로 질문하고, 이 말이 맞는지 고민하고, 준비해서 내놓는 말이 더 책임 있는 말이라고 믿어요.
<코스모폴리탄>은 이번 5월호를 통해 가족, 성별 등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여성의 존재를 들여다보고자 해요. 이랑이 생각하는 동시대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죠. 예전에는 여성이 집안일을 책임지는 존재로만 여겨졌다면, 지금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일하고, 원하는 것을 찾고, 스스로 개척해나가잖아요. 동시에 아이러니하기도 해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는데도 아직 보이지 않는 벽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특히 어떤 분야에서는 그 벽이 더 견고하고요.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아도 여전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제약이 있다는 점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동시대 여성으로서 요즘 가장 자주 마주하는 감정이나 생각은요?
여성주의를 말할 때 ‘임파워링’, ‘여성은 강하다’ 같은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물론 중요한 말이지만 나약한 순간,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 대해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강해야 한다는 식으로만 말하면 결국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뒤처지거나 버려질 수 있어요. 그건 여성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될 수 있고요. 저는 스스로의 약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고 봐요.
가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 시대에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가족 형태 역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모델일 뿐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잖아요. 문명은 계속 변하고, 삶의 방식도 계속 변하니까요. 지금은 1인이나 동성 가족, 공동체적 돌봄을 실천하는 관계도 있고요. 문제는 법과 제도가 그 변화를 너무 늦게 따라온다는 거예요. 실제 삶은 훨씬 다양해졌는데, 제도는 여전히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죠. 결국 사람들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제도도 결국은 따라오게 될 거예요.
재킷, 팬츠 모두 Songzio. 부츠 Roger Vivier.
엄마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부여한 역할이 의무와 억압으로 돌아오기도 하죠. 실제로 이를 경험한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낸 책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에도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2021년에 세상을 떠난 제 언니는 장녀라는 이유로 짊어지지 않아도 됐던 의무까지 부담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장녀가 부모의 기대와 돌봄의 의무를 자연스럽게 떠안는 경우가 정말 많잖아요. 그게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무겁게 만들 수 있는지 가까이서 봤어요. 그건 엄마 세대도 마찬가지고요. 엄마의 상처 중 하나는 집안의 장남을 위해 자신이 차별받고, 교육의 기회를 덜 받았던 경험이거든요. 시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돌봄과 책임이 과도하게 배분되는 구조는 남아 있어요.
앞에서 이야기했던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목부터 강하게 다가와요. 제목을 어떤 방향으로 설정한 건지 궁금해요.
제 삶에서도‘미친년’이라는 말은 꽤 위험하고, 함부로 불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제 언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더 이상 혐오의 언어로만 작동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어요. ‘아줌마’, ‘김여사’처럼 비하의 맥락으로 소비되던 말도 당사자들이 일상어로 전유하면 힘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물론 여전히 그 단어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은 많아요. 책 제목 때문에 읽기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바로 그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어떤 효과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그 책을 들고 있는 장면만으로도 이미 사회 안에서 작은 운동이 시작되는 거죠.
내밀한 가족사를 세상에 내놓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있을까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과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충돌했어요. 이 책에는 저와 엄마, 그리고 세상을 떠난 언니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세 여성의 삶을 따라가면서 개인의 비극이 결국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역사가 이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많은 엄마와 딸들이 자신을 탓하며 살아가지만, 사실 한 사람이 아픈 이유는 개인의 병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병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런 구조 속에 놓여 있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어요.
‘미친년’이라는 단어를 스스로의 언어로 만들고, 엄마와 딸의 개인적 서사를 꺼내놓음으로써 이랑은 이랑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요?
기존의 시스템을 쉽게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웃음) 저도 예전엔 ‘이딴 건 필요 없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제도나 시스템은 그 나름의 효율과 단단함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다면 기존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는 일이 필요해요. 왜 많은 사람이 그 시스템을 따르는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더 설득력 있게 벗어날 수 있거든요. “모르겠고 싫다”는 방식의 저항은 오래가기 어렵죠. 제대로 저항하려면 오히려 그 구조를 더 치열하게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책을 통해,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잘 살아보세! 어차피 삶은 한 번뿐이고, 이미 태어났고, 되돌릴 수도 없잖아요. 그렇다면 그냥 끝까지 살아보는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몸은 더 약해질 거고, 나이는 들 거고, 할 수 없는 일도 늘어나겠죠. 그래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미 시작된 삶이라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잘 살아보세요.
(김지윤)재킷, 베스트 모두 Weekend Max Mara. (전은환)재킷, 베스트 모두 Max Mara.
김지윤, 전은환
」정치학자 김지윤과 삼성전자 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근무, 현재는 교수로 활동 중인 전은환. 30년 지기 친구이자, 유튜브 채널 <지윤 & 은환의 롱테이크>를 운영하는 파트너다. 고전문학, 경제,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남다른 인사이트를 아낌없이 쏟아낸다.
30년 전, 두 분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전은환(이하 ‘은환’) 지윤이 들고 있던 히틀러의 자서전이 가장 먼저 생각나요. ‘굉장히 예쁘고 가는 학생인데, 책은 되게 무서운 걸 읽네?’ 그게 제 첫인상인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이 친구 집에서 밥을 먹고 있더라고요?(웃음)
김지윤(이하 ‘지윤’) 제 전공이 정치외교학이고, 이 친구가 정치외교학 부전공이라 수업을 같이 들었어요. 당시 저희 과에 여학생이 10명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들은 이미 은환이와 친해져 있더라고요. 저도 그 친구 중 하나가 됐죠.
이후 두 분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기도 겹쳤다고요. 타지에서 유학 생활을 같이하는 것만큼 또 의지가 되는 게 없잖아요.
은환 제가 지윤이에게 엄청 의지했어요.(웃음) 전 도시에 최적화된 사람인데, 유학하던 곳은 시골이었거든요. 그걸 못 견뎌서 틈만 나면 도시에 사는 지윤이의 집에 가서 살았죠. 참 따뜻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윤이 살던 동네는 바닷가고, 전 내륙이었어요. 그래서 “그 동네엔 신선한 생선 많이 없지?” 하면서 해산물 레스토랑에도 데리고 가줬죠.
지윤 저한테 의지했다고 하는데, 저로선 제가 있는 곳까지 와준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위로가 되는 거거든요. 그것도 먼 타지에서요. 그게 참 고마워요. 그리고 은환이는 다니던 학교를 조기 졸업할 만큼 뛰어났는데, 제가 하고 있던 공부는 오래 걸리는 데다가 지루해서 중간에 몇 번씩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럴 때마다 은환이가 아주 잘 붙잡아줬죠.(웃음)
학교를 다니는 순간엔 가깝게 지낼 수 있지만, 그 인연이 졸업하고 나서도 이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두 분의 우정은 3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왔고요. 그 근원은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시나요?
은환 저희가 같은 시기에 유학을 가게 된 건 운이죠. 각자의 계획이 있었는데, 그게 우연찮게 시기가 맞았을 뿐이지. 생각해보면 저희도 늘 가깝게 지내고, 자주 연락을 한 건 아니었어요. 지윤이가 결혼하고 출산하는 시기에 전 계속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즈음에는 소통도 뜸했어요. 그러다 다시 저는 경제, 지윤이는 정치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서로 업무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며 네트워킹하는 시기도 있었죠. 전 그것이 주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옛날이야기만 할 순 없잖아요. 상사, 회사에 대한 고민부터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서로 간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필요한 거죠.
두 분의 세상이 커지는 만큼 대화의 주제도 확장됐군요. 30년이라는 시간만큼 두 분이 공유하는 유대감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은환 그렇죠. 그 시간만큼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 많으니까요. 지윤이가 아기를 낳았을 때, 그 아기가 자라는 모습도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요. 차곡차곡 쌓인 추억이 생각날 때가 많죠.
지윤 워낙 은환이가 곁의 사람들을 정말 잘 챙겨요. 때 되면 전화하고, 카톡도 잘 보내고요. 그래서 지금도 이런저런 모임으로 늘 바쁘죠.(웃음) 은환이가 삼성에 다닐 때 종종 했던 농담이 “내가 너랑 사귀는 사이였으면 진작에 끝났다!”라는 말이었어요. 왜냐하면 당시에 은환이랑 약속을 한 달 전에 잡곤 했는데, 약속 3일 전에 전화가 와요. “나 갑자기 출장 가야 돼. 우리 못 만날 것 같아”라고요. 이게 반복되면 연인 사이에선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죠.(웃음) 그런데 또 저희는 서로에게 무던하기도 해요. 어떤 면에선 기대치가 낮은 거죠. 그게 긴 시간 동안 저희가 함께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때는 죽고 못 살던 친구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남남이 되기도 하잖아요.
은환 지윤이 말대로 서로에게 너무 간섭한다거나, 가깝게 지내려고만 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계를 지속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봐요. 그리고 제가 아까 말한 것처럼 생산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죠. 각자의 자리에서 공유해줄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특히 도움이 될 때가 있잖아요. 그 모든 게 저희 안에서 유효하게 작용했죠.
친구이자 서로 업무적으로 도움을 얻고 네트워킹을 하는 동료에서 이제 유튜브 채널 <지윤 & 은환의 롱테이크>를 함께 운영하는 파트너가 됐죠. 함께 책 <우리가 사랑한 도시>를 집필하기도 하고요. 두 분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주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지금 하는 유튜브의 전신인 팟캐스트를 지윤 님이 먼저 제안했다고요.
지윤 저희 둘이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식을 공유하는 교양 프로그램을 보면 보통 중년 남성들이 주로 나오잖아요. 여성은 게스트나 마치 토큰처럼 사이에 끼어 있고요. 50대 여성끼리도 이렇게 교양 넘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최적임자가 제 친구인 은환이었죠. 그렇게 팟캐스트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아무래도 이걸‘퀀텀 리프’를 하려면, 목소리만 나와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죠. 유튜브를 해야 하고, 얼굴이 나와야 하고. 이런 식으로 은환이를 자꾸 설득하면서 저변을 넓혀갔어요. 늘 제가 은환이에게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하하.
공감해요. 왜 그동안의 교양 프로그램은 남자들의 판이었나 싶어요. 채널을 운영하며 고무적으로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은환 제가 놀랐던 건, 저희 콘텐츠 중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네덜란드 이야기’였어요. 유럽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쉽게 네덜란드를 떠올리진 않잖아요. 그만큼 유럽 역사에 대해 많은 분이 생소함을 느끼고요. 그럼에도 이 콘텐츠는 조회 수도 너무 잘 나왔고, 반응도 무척 좋았어요. 덕분에 ‘아, 이런 이야기도 충분히 좋아하고 들어줄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느꼈죠.
지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요. ‘은퇴를 하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도 그렇고요. 어쩌면 이런 고민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보다 저희처럼 거리감이 있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할 수 있겠다 싶어 흥미로웠어요.
그런 점에서 두 분의 존재가 시니어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같은 세대로서 많은 용기를 얻는다”라는 구독자들의 댓글을 종종 보곤 했어요.
은환 저희가 어렸을 때 봤던 70대와 지금의 70대는 너무 다르잖아요. 이제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시죠. 그런데 과거의 관성 때문에 ‘노인들은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고, 교육을 해도 인지나 교양 정도의 프로그램에 그치고 말아요. 하지만 이제 저희는 긴 세월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세계를 좀 더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해요. 앞으로의 30년, 40년을 좀 더 활기차게 살아가기 위해 시니어분들도 더 큰 목표에 도전하실 수 있는 거죠.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노래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쉬자’가 아니라, ‘이제 이런 것에 도전해보겠어!’ 하는 태도를 가지실 수 있게 저희가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게 되고요.
<코스모폴리탄>은 이번 5월호를 통해 가족, 성별 등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여성의 존재를 들여다보고자 해요. 두 분이 생각하는 동시대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은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는 뭐든 할 수 있는 판이 펼쳐지고 있어요.
지윤 그만큼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헤매기도 쉬운 때죠. 기회가 많아 참 좋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할 테죠.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특히 일하는 엄마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엄마들은 늘 미안해요. 아이가 작으면 작아서, 아프면 아파서. 성적이 안 나와도 내가 다 잘못한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잘하고 있으니,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은환 덧붙이자면, 여성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물론 요즘 후배들을 보면 과거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위계 속에서 여성이 성장할 수 있는 범위엔 한계가 있거든요. 미디어를 봐도 ‘배 나온 남자 부장님’은 있지만, 그걸 여자로 치환해보면 본 적이 없죠. 지금까지 사회가 변화해온 것처럼, 그 변화는 계속되기를 바라요. 내가 재능이 있고, 원하는 분야에서는 누구나 그걸 펼쳐 보일 수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기를요. 분명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허휘수)데님 재킷, 티셔츠, 데님 팬츠 모두 Marni. 팔찌 & Other Stories. 스니커즈 Converse. 양말 에디터 소장품. (서솔)비스코스 재킷, 티셔츠, 비스코스 쇼츠 모두 Marni. 귀고리 Tom Wood. 워커 Dr. Martens. 양말 에디터 소장품.
서솔, 허휘수
」서솔과 허휘수는 각각 유튜브 <하말넘많>, <김은하와 허휘수>를 운영하는 유튜버다.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 지붕 아래 살며 진득한 가족애를 나누고 있으며, 에세이 <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 없지>와 <완전 (망)한 여행>을 함께 펴낸 동업자기도 하다.
동시대 여성들이 개척해가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눈에 띄는 요즘입니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동시대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허휘수(이하 ‘휘수’)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요즘에는 여자를 제일 멋있어하는 것도 여자고, 여자를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것도 여자인 것 같거든요. 서로 응원해주기도 하고요.
서솔(이하‘솔’)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휘수 말을 듣고 생각이 났는데, 사랑이라는 가치를 가장 많이 실현하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동시대 여성으로서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뭔가요?
휘수 희망적인 감정을 많이 느껴요. ‘이제 정말 잘되겠다, 나 성공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거든요. 제 삶을 건강하게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태도인 것 같아요.
솔 저도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한편, 여전히 세상은 제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도 사실 많이 해요. 당장 오늘만 해도 어떤 여성분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저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가 확대되는 요즘입니다. 두 사람 역시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가족이죠. 이 시대의 가족은 어떤 모양인 것 같아요?
휘수 (김)은하가 했던 말인데 너무 공감돼서 빌려오고 싶어요. 상대가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면 흡족한 존재, 가족이 아니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존재라면 가족이 아닐까요? 저에게도 그런 존재들이 있습니다. 솔도 그렇고, 은하도 그렇고요. 이들에게는 자꾸 뭔가를 나눠주고 싶고, 명절에 보고 싶고 그래요.
솔 선택할 수 있는 것. 친구, 배우자, 반려동물, 하다못해 식물까지요. ‘가족’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집 가(家)’ 자에 ‘겨레 족(族)’ 자를 쓰더라고요. 그런데 ‘꼭 한집에서 무리를 이뤄야만 가족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휘수가 은하를 가족으로 생각하듯이 집 울타리를 벗어나도 가족은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여자라면 한 번쯤 꿈꿔본 일이기도 하잖아요.
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우리가 환상을 파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휘수 맞아요. ‘내가 현실 감각이 없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실 해보면 별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너무 많은 고민을 하는 것보다는 일단 해봐야 해요! 결혼도 너무 재고 따지면 하기 힘들잖아요. 솔 맞아요.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가 상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살아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내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는 일단 살아봐라! 어차피 전세 계약은 2년이니까요! 2년 정도는 화끈하게 살아보시는 것도 괜찮아요!
실제로 함께 살아보니 어떤가요?
휘수 누군가와 함께 잘 살려면 개인이 성숙해야 하는 것은 맞아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찾아내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저런 걸 싫어해’ 이렇게요.
솔 저희가 재미있게 사는 걸 계속 보여주니까 환상만 가지실 수도 있는데, 그 외 모습들은 영상에 내보내지 않았을 뿐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웃음)
휘수 그래도 경제적으로 이점이 있잖아요! 2명, 3명이 모여서 같이 산다는 것은 돈이 모이는 거니까요. 해보실 만합니다. 너무 큰 걱정도 하지 말고, 너무 큰 기대도 하지 말고요. 사람 생각은 무조건 다 다르고 대체로 안 맞잖아요?(웃음)
실제로 안 맞았던 게 있었나요?
솔 질문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몇 개 있는데요, 사실 초반에는 몇 번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게 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불편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휘수에게) 지금 흠잡는 거 아니에요.(웃음) 저는 밥을 다 먹으면 싱크대에 그릇을 넣은 다음에 물을 받아놔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휘수는 절대 하지 않더라고요?(웃음) 이제는 그냥 발견하면 제가 물에 담가놔요. 상대를 개조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서로 불편해지는 것 같아요.
휘수 (솔에게) 저도 진짜 흠잡는 거 아니에요~. 솔이가 양말을 꼭 이상한 데 벗어놔요. 책상 밑에 양말이 있고, 소파에 앉았는데 양말이 손에 집혀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
솔 (휘수에게) 있어요.
휘수 있어요? 아무튼 발견하면 그냥 빨래통에 갖다 놔요.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으니 좋네요. 집 안의 규칙 같은 것도 있나요?
휘수 침실에 휴대폰 안 들고 가기, 자기 전에 책 읽기! 이런 것들이요. 솔 깨지라고 있는 규칙이죠.(웃음) 휘수 서로의 건강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솔 유튜버로 살려면 인터넷 세상이랑 끊어지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휘수가 댓글을 너무 신경 쓰면“이제 그만 볼까~?” 하고 넌지시 말해요.
휘수 그런 통제를 해주기가 사실 어렵잖아요. 부모님도 아니고! 그래서 솔이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여요.
콘텐츠 기획자로서 가족과 여성을 주제로 영상이나 책을 만든다면 어떤 화두를 다뤄보고 싶어요?
휘수 저는 작년부터 ‘가족 간의 화해’라는 주제에 굉장히 몰입해 있어요. 모든 가족 관계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있잖아요. 결국 가족 내에서 나의 결핍이 해결돼야 많은 것이 해결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딸, 형제 간의 관계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본다면 어떨까 막연히 생각해봤습니다.(웃음)
솔 저희 <하말넘많> 채널에서 책 리뷰를 종종 하는데 여성을 주제로 한 굵직굵직한 책을 모아서 큐레이션해보면 어떨까 해요. 제가 최근에 정말 유명한데 안 읽은 책을 몇 권 읽었어요. <자기만의 방><이갈리아의 딸들><여자에 관하여>도요. 솔직히 얘기하면 읽다가 잔 적도 많을 정도로 지금 보면 구태의연한 말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고전인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휘수 재밌다 벌써. 솔쌤이 강의해주면 되겠네요.
언젠가는 지금과 또 다른 가족의 형태로 살게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해본 적 있나요?
휘수 저희가 각각 독립하더라도 정말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차하면 솔네 집에서 저녁밥 먹을 수 있는 거리 정도로요.(웃음) 솔이뿐만 아니라 (강)민지, 잔니, 은하 모두 한 동네에 살고 싶죠. 제가 김장을 배운 이유도 그런 생각 때문이에요. 다들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 텐데, 정말 나중에는 김치 얻어먹을 데가 없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대표로 솔이네 어머니에게 가서 김장을 배웠어요. 우리는 우리끼리 살아야 하니까 미리 노후를 준비한 셈이죠.(웃음)
솔 최근에 세 할머니가 같이 사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두 분은 미혼이셨고, 한 분은 사별을 하셨죠. 세 분이 3층짜리 공동 주택을 마련해서 함께 사시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더라고요. 각자의 역할도 정해져 있어요. 아침밥 하시는 분, 회계 하시는 분, 마당 관리하시는 분, 이렇게요. 그래서 매일 아침을 모여서 드시고, 때 되면 기타 치시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함께 다녀오셨더라고요. 그게 제 미래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생활동반자법이 개정된다면 동거인이 법적으로 가족의 역할을 해주기까지 할 텐데요. 두 분도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 같아요.
솔 민지가 뇌 수술을 받은 후부터 저는 지금도 앞으로도 민지의 보호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민지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일거수일투족을 매일매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제가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잖아요. 만약 민지가 갑자기 병원에 가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제가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없으면 정말 어떡하지 싶었어요.
휘수 생사 관련해서는 조건부라도 보호자 역할을 해줄 사람을 지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분에게도 본보기가 되는 멋진 여성이 있나요?
휘수 멋지게 살아가는 모든 여성분들이요! 제 지도교수님부터 일하다 만난 선배님들, 김연경 언니…. 누군가를 콕 집어서 “이 사람 좋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주변에 멋진 여성분이 너무 많습니다!
솔 그럼 제가 콕 집어서 얘기해볼게요.(웃음) 이 지면에 함께 출연하시는 김지윤 박사님과 전은환 선생님 너무 좋아합니다.(웃음) 유튜브 <지윤 & 은환의 롱테이크>도 되게 좋아해요. 많은 여성에게 귀감이 되는 콘텐츠를 만드시는 것 같아요.
휘수 맞아요. 올라온 모든 영상을 다 봤을 거예요. 커뮤니티와 칼럼도 모두 읽었죠. 저도 언젠가는 저렇게 지적이게 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노력하게 되죠.
지금부터 노년까지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준비 중인 게 있다면요?
휘수 인생에도 임금 피크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정도는 열심히 돈을 벌어 제 자리를 잡아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체력 관리도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운동을 정말 많이 하는데 F45, 하이록스, 크로스핏 같은 근력 운동부터 러닝과 수영까지 해요. 운동을 잘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해보는 거예요! 제 노년 추구미가 있다면 철인 삼종을 나가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거든요.
솔 공감해요. 휘수가 임금 피크를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체력 피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근력 운동을 잘해놔야 나중에 놀다가 체력이 떨어지는 일이 없죠.(웃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주변에 있는, 혼자 사는 친구들을 잘 챙기는 것. 밥은 잘 먹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자주 들여다보려고요.
(이한결)니트 베스트, 레더 스커트 모두 Tod's. (오춘심)티셔츠 Arket. 스커트 Maison Margiela. Hair 장윤나 Makeup 김라희 Assistant 정주원
이한결, 오춘심
」고령자 친화 식기 브랜드를 운영하는 모녀이자 공동 대표. 남녀노소 가볍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리콘 수저가 시그너처 제품이다. 브랜드 이름 ‘봄마음’은 딸 한결이 엄마의 이름 ‘춘심’에서 착안해 지었다.
모녀가 함께 운영하는 회사라니, 너무 멋집니다! 어떤 계기로 합심하게 됐나요?
이한결(이하 ‘한결’) 회사 이름이 ‘세모녀’예요. 시작은 치매에 걸리신 저희 할머니가 쇠숟가락으로 밥을 드시다 치아가 깨지는 사고를 겪은 뒤였죠. 좀 더 안전한 수저를 사드리고 싶어 찾아봤지만 아동용 아니면 환자용뿐이더라고요. 그저 좀 더 가볍고 치아에 안전한 정도를 바란 것이지 거창한 의료기기를 바란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노인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식기를 엄마와 만들기로 했어요. 평소에 쓰던 그릇이나 숟가락이 나이가 들면서 무거워지고, 불편해지기 마련이잖아요. 내가 설 자리, 나에게 배려된 물건들이 없어져가는 걸 보며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엄마의 마음을 담아 생활용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브랜드 이름은 엄마의 이름‘춘심’을 따서 ‘봄마음’으로 지었습니다. 저는 주로 회사 경영을 담당하고요, 엄마는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담당하세요. 지금은 식기만 판매하지만 제품군도 점차 넓혀갈 예정이죠.
가족과 동업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한결 맞습니다.(웃음) 그래도 좋은 점은 가장 믿을 수 있고 나를 잘 아는 파트너와 함께한다는 것이에요. 의사결정 할 것이 많아지면 중압감에 외롭기도 한데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기댈 수 있다는 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고요. 반대로 힘든 점은 일과 라이프의 경계가 아예 없다는 것? 제가 아직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데 엄마가 아침에 저를 일 얘기로 깨워주세요.(웃음) “한결아, 오늘 어디에 전화해야 한다”라면서요. 사무실부터 집까지 발이 닿는 모든 곳이 일터인 셈이죠.
오춘심(이하‘춘심’) 성향도 굉장히 다릅니다. 저는 ENFJ고 이(한결) 대표는 ENTP예요. 의견이 안 맞으면 자주 충돌하죠. 또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저는 나무를 보고, 이 대표는 숲을 보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기도 해요.
가족이라서 더 조심하게 되는 부분도 있나요?
춘심 공동 대표긴 하지만 사실 딸이라서 가끔 말이 더 심하게 나갈 때가 있어요. 저도 그걸 느껴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말을 먼저 내뱉기보다 머리와 마음을 한 번 리셋시키고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로 하고 싶은 말을 남겨요. 그래야 상황도 더 잘 해결되는 것 같아요.
한결 재미있는 단점이 하나 있어요. 보통은 업무 시간대에 가족에게 연락이 오면 잘 안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 연락은 무조건 받게 돼요. 사소한 일인지 큰일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웃음)
서로에 대해 몰랐던 점도 많이 알게 됐을 것 같아요.
한결 솔직히 함께 일을 하기 전까지 제가 엄마를 과소평가했더라고요. 결혼 전엔 일을 하셨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주부로만 지내셨고, 함께 일을 하게 된다면 부족한 부분이 많을 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저보다 인생의 선배고,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셨을 텐데 제가 그 부분을 간과한 거죠.
춘심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며 12년 동안 경력이 단절됐었어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보니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더군요. 마케팅 팀장까지 지냈는데 그 경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 거죠.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독립했는데 저는 ‘경단녀’가 되어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50이었는데 그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갔죠. 인생에서 가장 혹독하게 공부하던 시기였어요.
30년 전 이야기를 하셨지만, 사실 지금도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사회는 출산이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무심하죠.
춘심 맞아요. 한국 여성들, 너무 억울합니다.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면 ‘돌봄’이 해결돼야 해요. 요즘에는 남성분들이 육아휴직도 많이 쓴다곤 하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그것도 쉽지 않죠. 북유럽처럼 국가 차원에서 강력하게 지원해야 처우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경력이 단절된 채 다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4060세대가 정말 많을 텐데, 60대 대표로서 조언을 해준다면요?
춘심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지그 지글러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했죠. 늦은 나이라는 건 없습니다. 꼭 돈 버는 일이 아니라도 작은 목표를 설정해 하나씩 배우고 시도하다 보면 그것들이 모두 인생의 소중한 단초가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젊게 살 수 있어요.
춘심 대표님께서는 자녀가 비혼이나 딩크를 선언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춘심 딸 둘인 엄마로서, 오케이예요! 저는 이 대표한테도 결혼을 최대한 늦게 하라고 했어요.
한결 엄마 덕분에 장기 연애 중입니다.(웃음) 엄마가 저희를 키우면서 “여자는 이래야 해” 혹은 “딸이니까 어떻게 해줘”라는 식의 말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할머니 댁에서 남자인 사촌들과 차별을 받으면 대놓고 목소리를 내주셨죠.
춘심 주체적으로 자기 일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가는 여성이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늘 했던 말이 “결혼? 아기? 없어도 돼. 네 삶이 더 소중해”였죠.
맞습니다. 결혼해서 전통적인 가족을 꾸릴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났어요. 두 분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한결 정신과 마음이 연결될 수 있는 상대와 함께하는 것? 상대는 정말 다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아닌 친구, 자매,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겠죠.
춘심 저는 로망이 있어요. 나이가 더 많이 들면 지금껏 몸담아왔던 가족 울타리를 벗어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과 조그마한 실버 타운을 이루고 살고 싶어요.
요즘 여성들은 비혼이나 딩크거나, 결혼을 아예 늦게 하기도 합니다. 독신으로 노년을 맞는 여성들에게 뭐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결 건강, 돈, 파트너! 필연적으로 나이가 들면 서로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상생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춘심 제 주변에 독신 여성, 굉장히 많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과 보험이에요. 혼자 아프면 서럽습니다. 그러니 간병인보험을 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것도 젊을 때 미리 들어놔야 보험료가 적어요.(웃음) 그리고 나이 들면 외로워요. 그러니 사회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취미나 공통의 관심사로 사람들과 모일 수 있다면 좋겠죠. 그리고 형제자매가 있다면 친하게 지내시고요. 그래야 우리가 길게, 오래갈 수 있습니다.(웃음)
두 대표님처럼 이렇게 사이좋게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는 모녀 관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못한 딸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넨다면요?
춘심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조금은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디 있겠어요? 사과할 것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보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보면 자식도 분명 마음을 열고 다가올 거예요.
한결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나아야 한다, 나을 것이다’라는 기대를 조금은 거두는 게 필요해요. 저도 아직 30대지만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럼 엄마, 아빠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한 발짝 양보하고,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일이 될 거예요. 춘심 부모라고 어떻게 다 완벽하겠어요~. 우리도 다 단점 많은 인간들인데요.(웃음)
Credit
- 에디터 천일홍 / 김미나 / 김성재
- 사진 김민주
- 헤어 장윤나
- 메이크업 김라희
- 어시스턴트 정주원
- 아트 디자이너 김지은
- 디지털 디자이너 이연우
스타들의 다이어트 비법 대공개
#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