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정직한 노동이 하고 싶다면? 도배사 배윤슬 인터뷰

그에게 남의 시선에서 한 뼘 멀어져 진정 자신의 원하는 삶, 일을 찾은 방법에 대해 물었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4.04.02
배윤슬에게 도배사는 두 번째 직업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도배사가 되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직업, 일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 그에게 남의 시선에서 한 뼘 멀어져 진정 자신의 원하는 삶, 일을 찾은 방법에 관해 물었다.


사회복지사에서 도배사로 전향한 계기가 제일 궁금했어요. 우리 사회의 직업 통념상 쉬운 선택은 아닐 듯 싶었거든요.
대학 졸업 후 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2년간 일했어요. 어른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일 또한 무척 보람 있었어요. 하지만 회식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고 업무 평가 때문에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사실들이 버거웠습니다. 또한 프로그램이 끝날 때 어르신들께 만족도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요. 아무래도 정교하게 답변해주시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 건가? 이 프로그램이 잘 마무리된 건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고요.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도배사 이외에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일이 꽤 많잖아요.
맞아요. 앞선 이유로 ‘기술직이 되어야겠다’고 일차적으로 생각을 좁혔고 기술직 중에서도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해야 하는 일은 제외했어요. 영업과 서비스는 기술과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기술로만 승부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현장직으로 또 한차례 직업군을 좁혔죠. 목수, 페인트, 미장 모두 찾아보았는데 여자가 제일 많은 기술직이 도배사더라고요.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도전하게 되었어요.

제 예상과는 반대네요. 일이 좋아서 선택했을 줄 알았거든요. 그렇다면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분야로 취업했던 건 원해서 한 선택이었을까요?
도배사는 전적으로 현실과 타협한 선택이었어요. 사회복지사는 그 반대죠.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복지학과 지원을 희망했어요. 감사하게도 저는 학창 시절 내내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는데 그게 제 능력이나 노력으로 얻은 건 아니었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거나 동생을 돌봐야 하는 등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친구들도 세상에 많잖아요. 이 기회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꽤 오랜 시간 꾸었던 꿈이니까 접을 때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겠어요.
그럼요. 하지만 제가 사회복지사를 그만둔 두 번째 이유가 거기 있어요. 서비스를 100분에게 드릴 수 있을 때, 150명이 지원하게 되면 그 50명을 탈락시키는 것도 제 역할이었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만 끼칠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50명의 어르신에게 상처를 드리는 일도 해야 했어요. 또 그 50명을 가르는 소득, 자산 등의 기준이 아주 공정한 것도 아니었어요. 어르신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죠.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꼈던 것 같아요.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신 것도 보았어요. 퇴사를 앞두고 퇴사계획서를 써서 부모님께 보여드렸다고요.
부모님께 구체적으로 제 앞날에 대해 들려드리고 싶어서 쓴 것도 있지만, 저를 위해 쓴 면이 커요. 당장 지금 너무 힘들어서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도배나 할까? 생각하는 건 아닐지 스스로 의심하면서 생각을 적어보았죠. 왜 퇴사하고 도배하고 싶은지 정리하다 보니 결코 충동적인 생각이 아니더라고요. 모든 이유가 명확했어요. 추운 겨울에 도배하면 ‘아 이런 날씨에 사무실은 따뜻했지, 괜히 퇴사했나?’ 싶은 순간이 찾아와요. 그럴 때 퇴사계획서를 읽으면 ‘내가 편하게 일하려 퇴사하고 도배를 선택한 게 아니지’ 싶어요.

부모님 반응은 어떠셨어요?
사회복지사를 그만둘 수 있는데, 왜 갑자기 도배를 할까? 고민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워낙 구체적으로 이유, 과정, 목표를 작성한 터라 ‘진지하게 도전하고 싶은 거구나’ 생각하셨데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고 판단하시고 지지해주셨어요. 퇴사하고 바로 도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죠. 저는 뭐든 학원에서 시작하는 스타일이거든요. 하하. 무작정 일하면서 배우기엔 제 성격상 겁이 많기도 하고요. 학원에 다니면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도 하고 싶었죠. 주5일 평일 반을 4주 동안 다니고 바로 취업했어요.

처음 도배사로 일하던 날은 기억나세요?
생생하게 기억나요. 다들 일하고 계신 곳에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저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나 질문 없이 “저기 올라와서 이거 칼질하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회사처럼 인수인계나 지도, 지침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분위기였어요. 이후에 “손을 왜 이렇게 떠냐”고 하셨고요. 당시에 반장님들 사이에서 신규 도배사가 오면 얼마나 버틸지 내기를 하시곤 하셨는데, 저한테는 내기조차 안 하셨데요. 진짜 금방 그만둘 것 같아서요.

이제 사회복지사로 일한 시간보다 도배사로 일한 시간이 길어졌죠? 이렇게 오래 일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먼저 제 일에 대한 평가 기준이 꽤 객관적이고 명확해요. 그래서 팀 내에서 역할도 확실하죠. 조직에서 제가 중요한 사람으로 존중받는 느낌도 좋고요. 소장님이 좋은 상사라는 점도 한몫을 했어요. 제가 불만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했을 때 그걸 해결하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거든요. 한 가지 더 꼽자면 신축 아파트 현장을 처음 도배하러 갔을 때, 완공은 되었지만 시멘트벽이 그대로 있어서 집 같은 느낌이 없거든요. 벽지를 붙이고 며칠이 지나면 비로소 집이 완성된 느낌이 들어요. 화룡점정이랄까요? (웃음)

반대로 단점을 꼽자면요?
처음엔 근육도 요령도 없어서 힘든 순간이 많았어요. 하지만 일하다 보니 이런 건 어느 정도 적응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여성 근로자가 많지 않아 시설적으로 배려가 적은 건 아직도 어려워요. 제가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위주로 일하는데 여자 화장실이 한 칸도 없을 때도 있거든요. 또한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제도적으로 도움받을 방법이 많지 않은 점도요.

일과는 어떤가요?
지금은 현장이 용인이라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보통 7시까지 출근해야 해서 늦어도 5시 30분쯤 일어나 6시에는 현장으로 출발하죠. 일찍 출근하는 편이거든요. 7시에 모여서 국민 체조를 하고 다 같이 커피 타임을 하며 소장님께 하루 일정을 전달받아요. 12시부터 1시간 점심을 먹고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퇴근합니다.

규칙적이면서도 알찬 하루를 보낼 것 같아요. 바쁘고 피곤할 텐데 책 <청년 도배사 이야기>도 쓰셨어요.
처음 도배에 대해 궁금했을 때, 도배사들이 만든 카페, 블로그, 밴드 등을 참고했어요. 연장, 기술에 대한 정보나 초보자 구인, 구직 글은 많았는데, 초보자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 글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현장 사진도 올리고 그날 느낀 점이나 배운 점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이걸 출판사에서 관심 있게 봐주셔서 책을 쓰게 되었죠. 책을 보고 도배사가 되고 싶다고 직접 연락을 주신 분도 있고요. 도배 이외에 다른 기술 직종에서 저보다 훨씬 오래 근무하셨는데, 사회적인 편견, 시선을 깨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도 받았어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 사무직, 정규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니까요. 일하시면서 느낀 편견도 만만치 않으시죠?
고작 3년 전만 하더라도 작업복을 입고 편의점에 들어가면 “젊은 아가씨가 옷차림이 왜 그래?”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제 지인, 부모님의 지인 중에서 “윤슬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 일을 하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요. 또 기술직이 힘들지만 돈을 많이 번다는 편견도 만만치 않아요.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도배사분들도 있지만 저처럼 조직에 소속된 채 일급을 받는 도배사도 있거든요. 각자 근무조건, 환경에 따라 다른데 하나의 시선으로만 직업을 바라보죠.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일의 좋은 점, 힘든 점을 가감 없이 말씀드리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물질적인 것만 보고 선택하기엔 다양한 면면이 있으니까요.

이전에 도배사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더한다면요?
아무리 좋은 직업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결국엔 좋은 직업이 아니더라고요. 반대로 사회적 편견이 만연할지라도 자신이 세운 기준과 잘 맞으면 좋은 직업이겠죠. 물론 그 기준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요. 자신과 잘 맞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땀 흘려 일한 만큼 결과와 보상이 이어지는 ‘정직한 노동’을 추구해요. 도배는 제가 몸을 움직여 한 폭, 두 폭 벽지를 붙여야만 결과가 나오거든요. 아무리 재능 있고 베테랑이더라도 꾀를 부리면 결과가 전혀 없어요.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초보자라도 계속해서 벽지를 붙여 나가면 결과가 쌓이면서 성장하고요. 그게 저는 정직하다고 생각해요.


도배사 배윤슬 님에게 물었습니다!

🔍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현실에서 멀어져서 아름답고 귀여운 걸 보고자 해요. 뉴진스 무대를 보거나 뮤직비디오를 봅니다. 하하.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일하는 내내 핸드폰을 거의 볼 수 없는 환경이라 퇴근 후 1~2시간 정도 사용해요.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Credit

  • Freelance Editor 유승현
  • Photo 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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