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괜찮아!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Society

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괜찮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며 향유고래가 등장하는 명쾌한 ‘해결’의 순간은 없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뿐이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09.01
 
섣부르게 예측하자면, 올해의 드라마는 이미 나온 것 같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다. 소위 말하는 톱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요, ENA라는 듣도 보도 못한 채널의 드라마. 비록 시청률 0.9%에서 시작했지만, 방영 첫 주 만에 “이거 뭔가 있다!”는 반응이 곧 터질 용암처럼 들끓기 시작했다(넷플릭스 1위를 찍은 것도 2주가 채 안 걸렸다). 곧 마지막 회를 앞둔 시점의 본방 시청률이 무려 14%로, 최근 이보다 이슈몰이를 한 콘텐츠가 있었나 싶을 만큼 내내 회자되고 있다. 물론 인기 있는 창작물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게 당연지사다. 개중에서도 〈우영우〉는 첫째로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컸고, 둘째로 강도가 셌다. 열광적 팬덤과 날 선 비판이 맹렬하게 맞섰다는 말이다. 주인공 ‘우영우’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상황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장애를 지나치게 미화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오히려 키운다”는 비판과, “자폐를 이만큼 섬세하고 성숙하게 그린 작품은 없었다”는 정반대의 옹호론이 팽팽하게 부딪혔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어떤 논란이 과열된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정작 당사자는 없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 큰 제3자들이 서로를 향해 냅다 삿대질만 날리는 양상. 〈우영우〉를 두고도 딱 그렇다. 그렇다면 당사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실제로 자폐 등의 발달 장애를 가진 이들의 보호자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드라마 〈우영우〉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Q1. 우리는 어떤 시민으로 살 것인가?
“누가 뭐라고 해도 전 (〈우영우〉가) 좋아요. 남들이 ‘자폐가 다 우영우처럼 저래?’라고 물을 때 ‘아니, 우영우만 있는 게 아니에요’라고 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거잖아요. 전 ‘우영우’와 아들을 비교하지 않아요. 아들의 전과 지금을 비교하죠. 더 나아진 걸 보면 기쁜 거고요.”
(26살 자폐인의 엄마 조미영 씨)



이들은 말한다. 〈우영우〉가 자폐를 현실 그대로 담아내서 좋은 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이 여기에 있다’, ‘장애인도 일상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라는 걸 인식시켜준 데 의미가 있다고. 드라마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꼽힌 부분이 바로 자폐인과 비장애인의 로맨스다. “보기 불편하다”, “다 된 밥에 로맨스뿌리기냐?”라는 의견이 양쪽 모두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준호’는 ‘우영우’의 로맨스 상대 이전에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매우 좋은 표본이 될 한 시민으로서 존재한다. 자폐인의 일상적 어려움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고, 시혜하듯 베푸는 게 아니라 눈높이에 맞춰 관찰하고 배려하며 돕는다. 자폐인을 좋아하는 소위 ‘허우대 멀쩡한’ 남자를 향한 “네가 걱정이 돼서 그렇다”라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시선이 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일깨우고, 그에 어떻게 대응할지 그는 보여준다. 거리에서 마주친 후배가 ‘우영우’와 함께 있는 ‘이준호’를 보며 “(장애인) 봉사 활동 중이구나?”라고 했던 것에 대해 ‘우영우’에게 사과 문자를 보낼 때, “제 후배가 한 실수…”를 지우고 “잘못”이라는 말로 고쳐 쓰는 그의 섬세함을 보라. ‘이준호’ 외에도 편견 없이 ‘우영우’의 능력 그대로를 인정하고, 때로는 북돋고 때로는 방패막이 돼주는 직장 상사 ‘정명석’, ‘봄날의 햇살’ 같은 로스쿨 동기 ‘최수연’과 하나뿐인 친구 ‘동그라미’, 그리고 어쩌면 대중 일반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권모술수’로 불리는 ‘권민우’가 있다. “우영우보다 더 판타지다”, “저런 친구가 어디 있냐?”라는 반응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게 당신이 아닐 뿐). 다만 더 주목할 것은 ‘우영우’ 주변의 비장애인 캐릭터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다. ‘내가 우영우의 주변인이라면 저들 중 누구처럼 행동할까?’ 그 답이 무엇이든, 스스로 얼마나 착각(?)하든 간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이전에는 해본 적 없던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나는 장애인 곁에서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바탕에는 이런 깨달음이 있었을 거다. ‘그렇지, 이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곳이었지’라는, 당연한데 자주 잊었던 사실 말이다. 〈우영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계기이자, 기회다.
 
Q2. 어딘가 불편하다면, 그것은 왜일까?
“드라마가 장애를 미화한다는 말, 어떤 측면에서 이해해요. 실제 장애 당사자들과 부모들의 힘듦,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갑갑함, 이런 것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건 사실이니까. 근데 전 이걸 계기로 그런 분들 목소리도 들어보고, ‘우영우’라는 독특한 캐릭터도 경험해볼 수 있어서 긍정적인 요소가 훨씬 많다고 봐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다운증후군을 가진 캐리커처 작가 겸 배우 정은혜 씨의 어머니, 만화가 장차현실)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요. ‘장애’라는 주제는 너무 깊게 생각해서도, 너무 얕게 생각해서도 안 되는 문제라는 거. 장애인에게 과잉 친절해서도, 너무 매정해서도 안 되는 것처럼요.”
(자폐인 누나를 둔 19살 김사무엘 군)
 
〈우영우〉를 보며 “저건 비슷하네”, “에이, 저건 너무 판타지지”를 오가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통화 끝에 마지막으로 덧붙인 김사무엘 군의 말이 어쩌면 〈우영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현답이 아닐까?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비장애인의 외침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다 해도 그게 당사자의 현실보다 설득력 있지는 않다. 반대로 “드라마는 어차피 판타지인데 뭘 그렇게 정색하냐”라며 이야기 자체를 납작하게 만들 이유는 또 뭔가. 자폐라는 특정 상황에 처한 인물군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분석과 비평의 대상이 되는 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우리는 적어도 그걸 흑백논리 안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영우〉에는 묘사의 섬세함과 결국 묘사이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 둘 다 존재한다. 그걸 인정한 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이에서 더 많이 상상하는 것이다. ‘우영우’를 장애인의 유일한 대표자인 양 너무 깊게 연관 지을 필요도, 너무 얕게 퉁쳐서도 안 되는 것처럼. 드라마에 과잉 친절할 필요도, 너무 매정할 이유도 없다. 좋고 나쁨 사이에 존재하는 이토록 다양한 결을 발견하는 건 우리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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