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지금, 시대는 더 변했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10명 중 2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며 그중 만 10세~19세의 청소년은 무려 35%를 차지한다. 만 3세~9세의 아동 비중도 약 22%로 그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초, 중, 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에 달하는 이들이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부분은 온라인 게임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그중 45%는 가해 대상이 누군지 모른다고 답했다. 이건 비단 학생들만의 이슈로 단정 짓기엔 디지털 성범죄는 그 범위도, 방식도 심지어 타깃도 너무나 천차만별이다. 여전히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 속 성범죄가 디지털 세계로까지 퍼진 셈. 단순히 채팅방 혹은 웹캠, 리벤지 포르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종 가상현실에서 점점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그 현주소를 코스모가 알아봤다.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메타버스

최근 코로나 19를 포함해 일어난 현실 공간에서의 제한들을 이 메타버스를 통해 해소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제페토’의 경우 누적 가입자 약 2억 명 중 80% 이상이 10대다. 해당 서비스가 급성장을 이루면서 디지털 성범죄도 또다른 이슈로 떠올랐다. 가상 공간에서 남성 아바타가 여성 아바타를 향해 옷을 벗어보라고 요구를 한다거나,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각종 음담패설을 하고, 아바타에게 다가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위를 하는 등 성희롱, 스토킹 등의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한 것.
유저의 성별과 나이를 알 수 없으니 피해자의 성별과 연령대도 천차만별이다. 최근, ‘제페토’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던 ‘한지훈(34세)’ 씨가 성희롱을 당한 것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자친구의 아바타로 같이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맵을 구경하다가 여자친구가 잠깐 음료수를 가져온다길래 잠시 아바타를 멈추고 여자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렸죠. 그때 갑자기 남자 아바타가 다가와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친구의 아바타 앞에 섰어요. 마치 오럴 섹스를 하는 자세로요. 그리고는 채팅창을 통해 ‘빨아봐’라고 하는 거예요.” 여자친구가 볼까 봐 걱정이 되었던 그는 급하게 그 맵을 나왔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으면 여자친구가 그 상황을 겪었을 거잖아요”. 여자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녀는 이미 이곳에서 스토킹을 겪은 적이 있었다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자꾸 ‘셀카’를 찍으려고 했대요. 다른 맵으로 옮겨도 어떻게 알았는지 3, 4차례에 걸쳐 귀신같이 쫓아왔다더군요. 처음엔 짜증이 났는데 나중엔 무서워서 앱을 꺼버렸대요.” 그는 그간 디지털 성범죄는 뉴스에서만 마주했었는데, 여자 아바타라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또 순식간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타깃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네이버Z’는 ‘플랫폼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콘텐츠 삭제 및 계정 일시 정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비단 ‘제페토’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게임 ‘퀴브이아르’ 등 전 세계의 가상현실 플랫폼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해당 플랫폼 역시 피해 사례는 비슷하다. 뜬금없이 같은 팀인 아바타의 가슴을 주무르거나, 알몸인 아바타로 유사 성행위를 하는 선정적인 게임을 하는 식이다.
자유로운 만큼 위험한 이곳

앞서 말했듯이 코로나 19로 인한 ‘집콕’ 기간이 늘어났을뿐더러 특히나 미성년자들에겐 가상현실이 하나의 새로운 놀이이자 소통창구가 된 이 상황에서 더 교묘한 수법의 성범죄들이 등장할 수 있다. 심지어는 메세지를 통해 ‘나랑 만나볼래?’라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고 하니. 트위터나 랜덤채팅 앱 등 익명성을 토대로 한 플랫폼에서 발생했던 범죄가 가상현실까지 이어진 셈이다. 심지어 미국의 메타버스 ‘로블록스’에서는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들은 ‘온라인 데이터’의 줄임말인 ‘오더’라고 불리며 해당 플랫폼 안에서 금지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묘하게 이 규정을 피해 행위를 지속하는 이들이 있다고. 이때문에 ‘로블록스’에서는 성인 이용자가 성관계 상대를 찾으며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성인 남성이 7~12세 아동에게 접근을 시도해 구속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문제는 이런 아바타의 행위를 처벌할 만한 명확한 제도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이, 그거 뭐 내가 당한 것도 아니고 아바타잖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유저들의 입장에서 아바타는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이입한, 또 다른 ‘나’다.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더라도 아바타가 범죄를 당하면, 특히나 빠르게 가상현실에 적응하는 미성년자 유저들은 현실과 다름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을 것. 물론, 음란물을 올리거나 유통하는 등의 행위는 현실에서의 법에도 명백히 위배되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지만, 아바타를 실제 사람과 동일하게 간주해 처벌할 수 있는지가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주요 이용자가 10대라는 점, 언제든 현실 속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범죄의 타깃과 범위가 무한하다는 문제점 등이 속출하는 지금, 가상현실 속 규제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