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셔츠 드레스 1백33만원 오프화이트. 이너 톱 23만원 한킴. 미니 백 3백50만원대 미우미우.
정말요? 다행이네요. 지금 촬영 때문에 피곤해서 약간 다운된 상태거든요. 제가 텐션 좋은 상태였으면 살짝 피곤하셨을 수도 있어요. 하하.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배규리’ 역으로 화제가 되면서 매체 화보를 정말 많이 찍었더라고요.
화보 촬영이 재미있어요. 드라마 촬영은 제겐 일이고 너무 많은 것을 짊어져야 하는 작업인데, 화보는 약간 놀듯이 할 때 결과물이 더 잘 나오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웬만하면 화보 촬영은 참여해요. 저에게도 환기가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요즘처럼 어두운 작품을 할 때는 더더욱요.
종영을 목전에 둔 드라마 〈마우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때요?
선배 배우들 성격이 모두 다 너무 좋으셔서 화기애애하긴 한데, 촬영장 도착했을 때 딱 10분이고. 스몰 토크 끝나면 다들 자기 촬영 걱정하기 바빠요. 하하. 이희준 선배는 이어폰 꽂고 노래 듣고, 이승기 오빠는 구석에 가서 대본 보고, 저도 노래 들으면서 대본 봐요.
노래 들으면서 감정선을 다잡는 거군요.
승기 오빠는 자꾸 부르고요. 하하. 음… 저도 촬영장에서 노래 듣는 배우를 본 건 희준 선배가 처음이었어요. 대기 중에 항상 이어폰을 꽂고 있다가 슛 들어가기 직전에 딱 빼시거든요.
〈마우스〉 ‘오봉이’ 역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감독님께서 ‘정바름’, ‘고무치’, ‘오봉이’ 셋 중 누구 하나 밀리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 ‘오봉이’는 기가 센 동시에 어려 보여야 했죠. 그러던 중에 〈인간수업〉을 보시고, 저라면 균형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사실 〈인간수업〉 같은 경우 저랑 (김)동희가 작품을 끌고 가는 건데, 〈마우스〉는 ‘봉이’ 시점에서 전개되는 극이 아니어서 대본만 봤을 땐 빈틈이 많았어요. 사건이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과는 별개로요. 그 빈틈을 잘 채울 수 있다면 배우로서 제 성장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죠.
제가 딱히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잘 채웠기 때문이지 않나 싶은데, 정확히 어떤 빈틈이 있던가요?
장르물은 특성상 사건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인물 간의 관계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지죠. 복선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사건으로 터지는 과정에 90%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예를 들어 ‘봉이’가 ‘무치’나 ‘홍주’에게 느끼는 감정이 주된 관계성이 아니다 보니까 설명이 잘 안 돼 있었어요. 대사를 정말 많이 바꾸고 애드리브도 많이 하게 됐죠.
‘바름’과 ‘봉이’의 데이트 신에 시큰둥한 시청자들도 종종 있더라고요.
‘봉이’는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식적으로 ‘봉이’가 할머니를 그렇게 빨리 잊을 수 없잖아요? 더군다나 할머니의 죽음이 미스터리투성이인데 말이죠. 그래서 할머니 브로치 좀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 같은 걸 추가했어요. ‘바름’과 ‘봉이’의 데이트 신이 중간에 삽입된 건, 후반부에 둘이 대치하는 장면에서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한 거겠죠. 장르물은 사건 위주니까 배우가 직접 싸워서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이랑 얘기를 정말 많이 해요. 감독님이 절 피해 다니실 정도예요. 하하.
그만큼 ‘봉이’는 복잡한 캐릭터예요. 극 중 가장 두드러지게 성장하는 캐릭터기도 하고요. ‘봉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감독님이랑 ‘봉이’ 캐릭터 방향에 대해 의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 때문에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캐릭터로 유지할 건지, 아니면 이겨내는 캐릭터를 만들 건지에 대해서요. 사건이 실화랑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조심스러웠어요. 저는 ‘봉이’가 이겨내는 캐릭터였으면 하는데, 실제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저게 저렇게 쉽게 돼?’라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또 극 중에는 ‘봉이’가 주변의 도움을 동정심으로 치부하고 거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피해자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할 수도 있고요.
누군가가 함부로 말이나 생각을 보탤 수 있는 소재가 아니긴 하죠.
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인간수업〉의 ‘배규리’는 그냥 범죄자니까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도 됐는데, ‘봉이’는 정말 어려웠어요.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위기에 처한 ‘유나’를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봉이’가 성장했다는 게 감정적으로 많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맞아요. 트라우마를 이겨냈지만 그 아픔을 잊은 건 아니에요. 정말 처절한 상황을 겪어내면서 극복했고요.
아마 대부분의 장면이 힘들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꼽는다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시체를 보고 우는 장면이 있어요. 비 오는 장면이기도 했고 촬영 당일 정말 추웠거든요. 사람이 추우면 몸이 굳고 감정도 무뎌지잖아요? 더군다나 감정 표현을 해도 빗물에 자꾸 묻혀서 맘처럼 안 되더라고요. 기억도 잘 안 나는데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봉이’랑 ‘바름’이 대치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그게 가장 힘든 신으로 등극할 것 같아요. 또 비를 맞거든요.
얘기하면서 왠지 분위기가 더 침체되는 것 같아 미안하네요. ‘박주현’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개인적으로 〈마우스〉 홍보차 〈놀라운 토요일〉에 출연했을 때 화면을 뚫고 나오는 인싸 기질에 감탄했어요.
원래 긴장을 잘 안 해요. 승기 오빠랑 같이 출연해서 든든했던 데다 저야 예능이 훨씬 마음 편하기도 하죠. 예능이 제 분야는 아니니까 그렇게 예민할 필요는 없잖아요.

셔츠 27만원, 팬츠 36만원 모두 한킴. 플립플롭 4만5천원 자라.
그때도 성격은 지금과 비슷했어요. 훨씬 덜 예민했죠. 연기를 하면서 사람 공부를 많이 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좀 더 차분해진 면도 있고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저는 겪어보지 못한 관계를 연구하다 보니 사람이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철이 없었어요?
그저 나가서 뛰어노는 것 좋아하고, 그러다 다쳐도 신경 안 쓰고. 다리에 흉터가 정말 많아요. 늘 큰 걱정이 없고 긍정적이고 사람을 좋아하고요. 예전에는 정말 누가 좋다 싶으면 “너무 좋아요!”라고 바로 표현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여차하면 나에게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배운 것 같아요. 지금도 겁이 없는 편에 속하지만 어릴 때는 더 없었어요.
약간 대형견 같은 느낌이 있네요. 남동생 둘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에요?
어릴 땐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친해요. 둘째가 어릴 때부터 저보다 훨씬 의젓했어요. 저는 철없이 뛰어다니고 동생은 저 챙기기 바빴던 것 같아요.
막내는 어때요?
저랑 11살 터울이니까 아직 고등학생이거든요? ‘앞날이 깜깜하구나’ 싶죠. 하하. 제가 재수를 했거든요. 입시 하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취업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쟤는 그걸 또 언제 다 겪나 걱정부터 돼요.
하하. 그것도 애정이죠. 동생들은 누나가 출연한 작품을 챙겨 보는 편인가요?
다 챙겨 보는데 얘기는 잘 안 해요. 둘째는 제가 바쁘고 피곤할까 봐 전화도 먼저 못 하는 성격이에요. 막내 동생은 뭐 반에서 신나게 떠들고 다니겠죠? 우리 누나 TV에 나온다고.
고등학생인 막내 동생은 누나가 고등학생으로 나온 작품들에 공감하던가요?
글쎄요, 걔는 좀 사차원이에요. 한번은 역사에 꽂힌 적이 있는데 역사책을 싹 다 외워서 줄줄 읊는 거예요. 근데 막상 꽂히는 게 없을 때는 자유로워요. 너무 자유로워.

터틀넥 톱, 스커트 모두 가격미정 유니와.
그러게요. 저는 어릴 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정말 없었거든요. 언제나 현재를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니까. 저랑 닮아서 더 걱정되는 걸지도 몰라요. 막내한테 “커서 뭐 하고 싶어?” 계속 물어봐요. 제가 어릴 때 진짜 싫어했던 질문인데. 하하.
한창 바쁘게 활동하는 요즘 가장 경계하는 건 뭔지 궁금해요.
저는 항상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싶고, 인지도나 인기 같은 것도 연기를 잘하면 당연히 따라올 거라 생각하거든요. 한 신 한 신, 대사 하나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계속 의심하며 고민하고요. 그런데 〈마우스〉를 찍으면서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일정이 촉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부분이 생겨요. 조금씩 포기해도 결국 또 어떻게든 결과물은 나오거든요. 이게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촬영 한번 들어가면 친구들도 잘 못 만날 정도로 몰입해야 했는데, 이제는 촬영장 돌아가는 시스템이 눈에 보이니까 적당히 틈을 타서 여유를 부릴 줄도 알게 된 거예요.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죠. 저도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조금씩 여유가 생기다 나중에는 ‘대충’까지 가지 않을까 지레 겁먹는 거죠.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나요?
평소에는 진짜 느긋해요. 가족, 친구 등 인간관계도 그렇고 연애, 학교 생활 다 쿨하거든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스스로를 혹사시켜요. 희준 선배가 저랑 비슷한 스타일이거든요. 맨날 저보고 자기 어릴 적 보는 것 같다고, “괜찮아. 조금씩 숨 쉬어도 돼. 편하게 가도 돼” 하셔요. 그런데 본인도 스스로 편하지를 못 해요. 저한테는 좀 내려놓으라고 하시면서 막상 선배는 다 붙들고 있거든요. 하하.
주현 씨를 후배로서 아끼는가 봐요.
선배도 거기서 오는 고통을 너무 잘 아니까 그런 거겠죠. 어떤 선배는 힘 뺄 부분에서는 힘 빼고 내려놓을 줄 알면서도 여전히 멋있는데, 저는 아직 제게 맞는 방법을 찾는 중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지금은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인간수업〉으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어요. 배우로서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살면서 가장 단점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배우가 되면서 장점이 됐어요. 어릴 때부터 감정 컨트롤이 힘들었거든요. 갑자기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슬플 때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감정이 폭주할 때가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제가 어디로 튈지 잘 모르겠거든요. ‘죽음이라는 게 그렇게 슬픈 건가? 어차피 다 죽는 건데’ 하는 생각도 자주 하고, ‘내가 태어난 이유가 뭐지? 오늘은 내가 왜 살아야 하지?’ 같은 사색을 많이 했죠. 우울감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에서 나온 생각일 수 있죠. 호기심 많은 성격이니까.
맞아요. 근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갑자기 우울해질 때가 있잖아요. 지금은 연기하면서 감정을 크게 터뜨리는 경험을 많이 하니까 평소에 비교적 감정 조절이 잘되는 것 같아요. 촬영할 때 종종 대본에 적힌 대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나올 때도 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감정 신에선 리허설도 잘 안 시켜요. 감정을 크게 터뜨려야 할 때 그런 감정이 내게 오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다행히 그렇지 않아요.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도 별로 없고요.
그래 보여요. 털털한 매력이 있어요.
여성 배우라면 사실 울거나 웃을 때도 얼굴이 너무 일그러지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잖아요. 그런 생각 안 해서 맘 편해요.
뜬금없지만 마지막으로 꼭 묻고 싶었던 게 있어요. 음료수 중에 ‘솔의눈’을 좋아한다던데,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거예요?
커피나 술은 잘 못하고, 청량음료는 몸에 안 좋아서 안 마시니까 제가 기호 식품으로 즐길 수 있는 건 이온 음료 정도인데, 학교 자판기에 이프로랑 솔의눈이랑 파워에이드가 있었어요. 3개를 번갈아 마시다 보니까 솔의눈이 제일 괜찮던데요? 머리가 막 지끈거릴 때 있잖아요. 그럴 때 솔의눈을 마시면 개운해져요. 요즘엔 박스째로 사둬요. 언제 머리가 지끈거릴지 몰라서요. 하하. 참, 솔의눈은 차가울 때 빨리 마셔야 해요. 조금이라도 미지근해지면 맛없거든요.